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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춘수 원장 |
ⓒ N군위신문 |
세상은 요지경이다. 속고 속이면서 누구 하나 믿을 수 없는 세상이다. 비록 삶이란 이런 것이라 할지라도 너무 비참하다. 살아가기 위해서는 치졸하고 가증스럽다 해도 하는 수 없다. 사람이기 때문에 알면서도 모르는 척하며 살아가는 지도 모른다. 법칙은 아니지만.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농경시대 때에는 벼 보리 감자 등 씨앗을 잘 갈무리해 두였다가 그 이듬해 농사를 짓곤 했다. 봄이 시작되면 제일 먼저 구석진 곳에 쳐 박아 두었던 괭이, 삽, 쟁기, 서리 등 농기구를 손질했다. 논밭 갈고 거름 넣고 파종시기를 기다렸다. 감자 씨눈이 붙어있는 부위를 칼로 잘라서 재에 무쳐 골 따라 한 눈씩 심었다. 감자를 심을 때마다 웃음꽃이 만발하였다. 감자를 주물럭거리며 소불알보다 더 큰 감자 많이 달려달라고 합장할 때, 행복스런 웃음이 온 들판으로 퍼져나갔다. 봄 농사준비 중 제일 힘 드는 일은 못자리를 장만하는 것이다. 온 식구가 매달려야 했기 때문이다.
기막힌 일이었다. 도둑은 정말 양심이 없을까, 이른 봄 파종준비 하느라 곡간에 두었던 씻나락을 아무리 뒤져봐도 오간 데 없었다. 누군가가 귀중한 보물인줄 알고 통째로 훔쳐갔을 지도 모른다. ‘잃어버린 사람이 죄인’이란 말도 있지만, 도둑이 아니고서야 가져갈 사람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 식구가 일 년 내내 먹을 양식 밑천 이였다. 씻나락 한번 뿌려보지 못하고 텅 빈 못자리만 지켜보고 있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했다.
도둑은 한번 들렸다 하면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는다지만 해도 해도 너무 했다. 장길산 같은 의적도 있다하던데 하필이면 씻나락까지….
만여 평 넘는 땅을 그냥 놀릴 수 없었다. 이웃집에 모내기 끝나고 논둑에 버려둔 모를 얻어 심었다. 햇볕에 말라비틀어져 되살아날는지도 모르면서 그냥 심었다. 그마져도 부족해 지정이며 밀 조 콩 옥수수 등 밭작물 등을 심었다. 어린모가 탈 없이 잘 자라야 할 텐데 신경 쓰였다.
다른 집에는 벌써 어린모가 자라서 논바닥이 검푸르게 되었다. 모가 한 뼘 남짓 자란 들판에는 김매기가 한창이었다. 이웃들은 콧노래로 흥얼거리며 김매기에 여념 없었다. 내 것은 아직도 꼼짝하지 않고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어 애간장 타들어 갔다. 하는 수 없이 하얀 맨살을 드러낸 논바닥에 무성히 자란 잡초와 씨름해야만 했다. 너무나도 어처구니없었다. 허전함과 북받쳐 오르는 서러움을 달래며 새로운 한해를 기약했다.
엎친 데 겹친 꼴 되다 시피 극심한 가뭄이 닥쳤다. 논바닥은 운동장처럼 딱딱했다. 끝내 땅은 물 한 모금 못 마시고 쩍쩍 갈라지고 말았다. 내 마음까지 갈라지는 것 같아 괴롭고 고통스러웠다. 못물은 한정되어 있고 논에 들어가야 할 물은 태부족했다. 못 관리자가 수문을 열고 물을 흘러 보냈다. 제일 위에 있는 논부터 차례대로 댔다. 아직 반도 대지 못했는데 벌써 바닥이 났다. 물을 자기 논부터 넣으려고 아우성이 오가고 심지어 큰 사고까지도 났다. 가뭄이 심할 때는 형제, 이웃도 없고 양심도 없다. 오직 벼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이외는 아무것도 없었다.
시끌시끌하던 들판을 둘러보았다. 푸르던 들판이 온통 가을 단풍이 되다 시피 불그스레하게 변했다. 논밭에서 분주히 다니던 사람들은 하나 없고, 말라비틀어진 벼는 불을 붙이면 금방이라도 활활 타오르는 듯 했다. 얼굴을 찌푸리며 질러댔던 고성도 사라지고 허허한 벌판은 적막감마저 들었다. 싸울 기력도 없어졌고 싸워봤자 하나 얻을 것 없었다. 하늘에서 비만 오기를 기다렸다. 왜 아우성 쳤던가? 인간의 기본적인 양심까지 버려가면서 달려온 것이 기껏 ‘이것’ 인가 생각하니 씁쓸한 생각이 든다.
수확기가 되었다. 벼에 오다가다 매달린 낱알 일망정 영글었으면 했는데 하나같이 빈 쭉정이 같아 보였다. 소로 실어 날랐던 볏단을 지게에 지고 올 정도 밖에 안 되었다. 여느 때는 일거리가 많아 농사가 적은 집 또래들을 보고 부러워했다. 매일 같이 놀려 다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흉년 아닌 흉년을 당하고 보니 괜스레 마음이 편하질 않았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다. 허전한마음으로 한 해를 보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시련을 극복하고 새 마음으로 다시 출발할 수 있게 되어 퍽이나 다행스러웠다. 내 모든 것 하늘에 맡기고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아가고자 다짐했다.
양심은 인간이 가져할 기본적인 도덕적 가치이다. 이를 행하지 못하면 진정한 삶이란 허구 일뿐, 인간이 가져할 욕망의 한계를 뛰어 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도덕적 관례를 만들어 놓고 스스로 그 틀 속에서 매여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매여 사는 것이 진정한 삶의 본질이 아닐까 한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수의학박사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