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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군대 빼치카

admin 기자 입력 2018.02.11 18:22 수정 2018.02.11 06:22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겨울이면 가끔 군 생활에 얽힌 이모저모 이야깃거리가 생각났다. 그토록 바랐던 일병 계급장을 달고 103 보충대에서 305 병기대대 의무대로 배치 명을 받았다. 내무반 한구석에 흙으로 만든 작은 굴 하나가 덩그러니 있었다. 내무반 난방을 위한 ‘페치카’(벽난로)였다. 군대에서 ‘빼치카’로 불러 지금까지 그 이름 그대로 부르고 있었다.

나는 강원도 인제에서 일병 의무병으로 305 병기대대 의무대에서 군 복무를 시작하였다. 어느 때보다 날씨에 민감했다. 졸병은 선임병들의 일거수일투족이 되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강원도 여름 날씨는 더위에 못 견딜 정도로 덥지는 않았다.

첫 겨울을 만났다. 영하 20도를 오르내리며 칼바람 부는 쌀쌀한 날씨가 이어졌다. 추위에 겁이 질려 걱정이 되었다. 날이 새면 허겁지겁 오늘은 기온이 조금 올라갔을까 하는 기대감 속에 수은주를 쳐다보고 했다. 사람은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어디에든 기대어 보고 싶고 위안을 받고 싶어 한다는데 이것이 인간의 본능인 것 같았다.

군대의 일상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남쪽에서 건너온 개나리꽃이 피고 지고 동쪽에서 건너온 오동잎이 포도 위에 떨어져 뒹굴고 했다. 북쪽에서 건너온 눈꽃이 활짝 피었다. 그런 사이에 나는 군 생활에 조금씩 적응되고 익숙해져 갔다.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이 휘몰아치는 캄캄한 어떤 밤중 난데없던 워커 발소리가 우두둑거리며 요란하게 들렸다. 내무반 생활을 따로 한 나는 긴장된 잠에서 깨어나 어둠을 헤치고 창밖을 내다보았다. 대대 내무반에 비상이 걸렸던 것 같았다. 삼십여 명의 부대원들이 팬티만 입고 연병장에 모여 삼열 횡대로 나무기둥처럼 꼼짝도 아니하고 서 있었다.

내무반 선임하사가 분을 못 이겨 일렬 한 발 앞으로 하며 고성을 지렸다. 뒤이어 엎드려뻗쳐 하는 칼날같이 날카로운 괴성이 조용한 밤하늘을 가로질렀다. 곡괭이 자루를 힘껏 움켜쥐고 금방이라도 터질 것만 같은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치면서 한사람 한시람 건너갔다. 아픔을 이겨내지 못한 한 부대원이 소리 지르며 땅바닥에 쓰러졌다. 가슴이 쿵덕거리고 무서워 눈을 감아버렸다. 얼차려는 계속되었다.

곡괭이 자루가 하늘로 올라갔다 내려오는 소리에 기가 죽은 부대원들은 옴짝달싹하지 않고 긴장된 상태로 서 있다. 얼차려가 끝내고 선임 하사가 부대원을 일으켜 세웠다. 부대원들에게 물었다. 오늘 밤 왜 얼차려를 받았는지 알겠나? 병사들은 눈물 어린 목소리로 ‘예’하고 힘없이 대답했다. 아니나 다를까 대답을 듣고 난 선임하사는 또다시 화가 치밀었다.

고작 엉덩이 한 대 얻어맞고 눈물 콧물 섞인 힘 대가리 하나 없는 목소리로 대답하다니 하며 부대원들을 일렬종대로 세워 연병장을 두 바퀴 돌렸다. 그

러고 나서 또 물었다. 알겠나?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예’하는 소리를 듣고 내무반으로 들어가게 했다. 정신을 차리고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펴보았다. 두려움과 긴장과 공포가 지나간 그 자리에는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매서운 칼바람만 쌩쌩 불고 있었다.

졸병인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좌불안석이 되었다. 이유야 어쨌든 차라리 팬티만 입고 한 대 얻어걸리는 것이 마음이 훨씬 더 편했다. 내가 받은 긴장의 연속은 끝이 없었다. 불안·초조뿐만 아니라 괴로움과 정신적 고통까지 안겨 주었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한 일병이 고개를 푹 숙이고 걸음을 절뚝거리며 의무대에 왔다. 지난밤 무슨 일 있었나 하고 능청스럽게 물어보았다. 페치카 당번이 불을 꺼트려 내무반이 난리가 났다. 부대원들은 추위에 떨고 있었으며 기침 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선임하사가 가만히 있을 리가 있겠느냐 하며 악몽을 되새겼다.

군대는 상명하복이다. 페치카 불을 인계할 적에는 화력을 좋게 해서 인계해야 했다. 그런데도 선임병이 바람이 불면 금방이라도 꺼질 듯이 해서 인계했다. 졸병은 말 한마디 못 하고 주는 대로 받아 불을 피우다 꺼져버렸다. 이렇듯 저렇듯 이유야 어쨌든 한밤중 난리가 났다는 이야기에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내무반 생활은 따로 했어도 불침번과 페치카 당번은 부대원들과 같이했었다.

페치카 불을 관리하는 당번이었다. 며칠 전 선임하사가 곡괭이 자루를 들고 부대원들의 엉덩이를 사정없이 내리치는 모습을 똑똑히 보았다. 생각만 해도 가슴이 아찔하고 섬뜩했다. 아무 생각 없었다. 오직 다음 날 아침까지 땔 연료를 만들고 밤새 페치카에 불을 잘 지피어야 하겠다는 것뿐이었다. 스스로 해내어야 한다는 비상한 각오가 내 정신무장을 더욱 강하게 했다.

고작 하룻밤 동안 땔 것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도 생각보다 수월하지 않았다. 매서운 칼바람이 부는 한밤중 손이 실어 얼어 빠질 것 같았다. 쓰라린 아픔을 참고 이겨내어야 했다. 꽁꽁 언 땅을 곡괭이로 파서 딴딴한 황토를 부드럽게 한다. 눈을 녹여 물을 만든 다음 탄가루에 황토와 물을 적당히 섞어 골고루 버무린 다음 야구공보다 크게 만들었다. 후유~ 하고 허리를 고쳐 폈다.

그동안 고통스러웠고 괴로웠던 일 잊고 스스로 대단한 일을 해냈던 것처럼 마음이 우쭐했다. 그 순간도 잠시 고독하고 외로움이 내 마음을 파고드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한 치의 앞도 보이지 않은 캄캄한 밤 페치카아궁이 앞에서 불과 씨름하면서 홀로 쓸쓸히 밤을 지내야 했다. 여명이 밝아오는 새벽 동녘 하늘이 어스름하게 밝아오기 시작했다. 얼어붙었던 내 마음이 얼음처럼 녹여 내렸다.

페치카는 내 생애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헤쳐 나갈 강인한 힘과 용기를 주었다. 그리고 체험과 경험도 주었다. 페치카 불 소동으로 일어났던 공포의 시간은 내 곁을 떠난 지가 오래였다. 이제 젊은이들만 가질 수 있는 유일한 특권이다. 군 생활에 얽힌 이야깃거리는 밤이 새도 모자랐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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