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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기광 전 법워장 |
ⓒ N군위신문 |
이기광 울산지방법원장(63·사법연수원 15기)이 지난 12일 퇴임했다.
그는 농약중독으로 인한 장애를 이겨내고 판사가 된 뒤 사회적 약자의 편의증진과 보호에 앞장섰다.
■ 뇌병변장애 2급 이겨내고 사법시험 합격
이기광 법원장은 1955년 경북 군위 출신으로 대구고와 영남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특히 대구고등학교 2년 때 벌레를 잡는 농업용 약제에 중독(농약중독)돼 두 다리가 불편한 장애(뇌병변장애 2급)로 휠체어를 타게 됐다.
그는 “마음을 모아 힘을 쓴다면 극복 못할 장애나 난관은 없다”는 불굴의 신념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시련을 극복했다.
이기광 법원장은 “공부는 앉아서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당시 ‘천마장학금’을 받고서 영남대학교 법대에 입학했다. 그는 훗날 법학을 공부하기로 결심한 것이 중요한 터닝포인터가 되었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23회, 24회 사법고시 최종에 2번이나 떨어졌지만 포기하기 않고 법관의 꿈에 도전해 25회 합격(사법연수원 15기)했다.
이후 배석판사, 단독판사, 지방법원 부장판사, 고등법원 부장판사, 법원장을 두루 거쳐 32여년 넘게 재판을 해왔다.
■ 배려·겸손함을 잃지 않는 판사
사법연수원 수료 후 1986년 3월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를 시작으로 대구지방법원 부장판사, 대구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를 거쳐 지난 2016년 2월 울산지방법원 법원장으로 부임했다.
대구고법 수석부장판사를 3년 동안 역임하는 등 사법행정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항상 겸손한 자세로 타인을 우선 배려하면서도 열정적이고 부드러운 리더십과 추진력을 지니고 있다는 게 법조계의 시각이다.
그는 민사, 형사, 행정사건 등 다양한 분야의 재판업무를 수행해온 정통법관으로 평가 받고 있다. 해박한 법이론과 탁월한 재판실무능력을 겸비해 당사자의 주장을 충분히 들어주는 따뜻하고 부드러운 재판진행으로 명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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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중 발암물질에 노출됐던 군인에게 백혈병이 발생했다면 국가유공자로 볼 수 있다’는 판결 △‘아파트분양사업자가 출입문 입구의 공용면적(복도)을 전용공간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과장광고를 했다면 손해배상책임이 있다’는 판결 △‘사회통념상 여성에서 남성으로의 성전환환자에 해당함이 명백한 사안에 있어서 호적상 성별기재의 정정을 허용한다’는 판결 △대구지역 신협의 부실대출 등과 관련, 당시 실무관행과 달리 ‘감사에게도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판결을 내리는 등 사회지도층의 불법행위에 엄정한 자세를 견지하고 사회에 경종을 울리는 판결을 선고했다.
대구판례연구회의 회장직을 3년간 역임하면서 회원들의 발표문은 모은 연구논문집 ‘재판과 판례’를 발간하는 등 대구·경북지역 법조의 법률문화발전에도 크게 기여했다는 평이다.
■ 법 앞에 모든 萬人은 평등하다
울산지방법원장 취임 후에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편의와 보호에 앞장섰다.
이기광 법원장은 “법원장으로서 건강한 사회를 위한 책무가 있다. 사회적 약자라는 이유로 차별받아서는 안 된다. 편의시설부터 재판까지, 법 안에서 보호받고 다 같이 건강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울산지방법원은 전국 최초로 외국인을 위한 통역서비스 봉사단을 모집하고 점자블럭, 경사로, 장애인주차구역, 장애인 화장실, 안내판 등 편의시설과 보조공학기기(화상전화기)를 구비해 장애인과 외국인의 법률서비스를 돕고 있다.
사회적 약자가 사회로부터 외면 받는 일이 없도록 노력하는 이기광 법원장의 행보에 법원직원들도 동참, 재능기부 활동으로 모은 수익금을 발달장애인학교에 장학금으로 전달하는 등 그동안 딱딱하고 경직되어 있던 법원의 이미지를 소통과 배려, 신뢰의 이미지로 변화하게 했다.
■ 좌절을 딛고 더욱 노력
이기광 법원장이 처음부터 탄탄대로를 걸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장애로 인한 불편함과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기 위해 남들보다 더욱 노력했다.
특히 ‘장애인 판사여서 미흡한 판결을 받았다’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해 개발지역 산소 소유권자 판결 때는 휠체어를 타고 산에 올라 현장검증을 했다.
그는 “직무수행의 불편함은 수고를 감수하면 다양한 방법들로 극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장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는 것은 정말 힘들다”고 밝혔다.
형사단독재판 당시 다른 판사들에 비해 유난히 무죄판결 선고가 많았다. 이에 “편협한 시각으로 숲이 아닌 나무만 보고 재판하게 하는 것은 아닌지 살피라”는 충고를 받기도 했다.
그래서 당시 법관직을 그만 두어야 하는 게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한 그는 “장애인라서 재판이 부족할 수 있다는 편견은 개인적인 억울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재판을 받은 당사자에게 우연히 장애인 판사를 만났기 때문에 부족한 판결을 받았다는 불만과 허탈감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일로 엄청난 좌절감을 겪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편견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장애인 판사로서 보다 더 신중하고 신뢰 가는 재판을 하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 진실 편에서 약자의 입장을 살피다
이기광 법원장은 지난해 8월 31일 울산대 제6회 프레지덴셜 포럼(Presidential Forum)에서 “약자의 편에 선다고 해서 정의로운 판사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고, 진실 편에서 약자의 입장을 살피는 판사가 되고자”했다고 밝혔다.
이 말처럼 그는 30년 넘는 법관생활동안 이러한 자신의 신념을 지키고자 치열하게 싸우며 겸허한 자세로 책임을 다했다.
이제 법복을 벗은 그는 끝으로 “판결과정도 치유의 기회이지만 혹시라도 상처 입은 사람을 위해 참회하고, 또 법관으로 일하기까지 도움을 준 가족과 스승, 선후배 및 동료 법관들에게 늘 감사하다”고 전했다.
이기광 법원장의 퇴임을 통해 “훌륭한 법관은 하나의 법률지식과 아흔아홉 가지의 사려 깊은 현실인식을 갖춰야 한다”는 법언이 문득 떠오르며 그의 인생 2막을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