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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성보 작가 |
ⓒ N군위신문 |
무엇이든지 잘 알지 못하면 남에게 당하기 마련이다. 앞의 얘기와는 조금 다른 얘기가 있다.
재작년 여름철이었다.
J시의 교사들로 구성된 난회에서 방학을 맞아 7명의 회원이 구례군 일대를 4박 5일 예정으로 산채 길을 나섰다. 마지막 날 점심때까지 7명이 전부 허탕이었다.
곡성 근처의 야산에서 점심 식사 후, 처음 산채 길에 나선 L씨가 앞에 조금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행여나 하고는 ‘이상한 것’을 마침 곁에 있던 회장님께 보였더니 별 볼일 없다면서 근방에 있는 큰 소나무 밑에 곱게 묻어 두라고 하여 시키는 대로 했다.
그런 후 한 열흘 정도 지난 뒤 회장님 댁에 들린 L씨는 난대에서 지난 번 산채 시에 도로 묻어 둔 그 이상한 것과 비슷한 것을 보았다. 어디서 한 번 본 것 같았다. 아무래도 안면이 많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니, 틀림없는 그 ‘이상한 것’이었다.
궁금증을 이기지 못하여 회장님께 그 난의 출처를 물어보니, 며칠 전에 난 중간상에게서 구입한 것이라 했다.
그 ‘이상한 것’은 알고 보니 다들 껌뻑 죽는 호(縞)라는 것이었다.
L씨는 다음날, 차를 내어 난을 묻어 둔 소나무 아래로 가 보았더니, 예상했던 대로 석양의 잔광만이 남아 있을 뿐 난은 간 곳이 없었다.
텅 빈 자국을 바라보는 L씨는 마음 한 구석이 아릿하게 저려들었다.
난이 무엇이길래 초보자에게 도로 심어라 해 두고, 그것을 찾기 쉽도록 큰 소나무 아래 묻어 두도록 하고 몰래 다시 와서 그것을 파 갔단 말인가. 나잇살이나 자신 분이 그런 파렴치한 짓을 하다니….
평소 존경해 마지않던 회장의 얼굴이 그의 눈앞에 희뜩 낙엽처럼 달려들어 착잡한 심정을 가눌 길이 없었다.
한편으로는 L씨는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기에 앞서 명품을 캐고서도 몰라 본 자신을 한심하게 느껴졌다.
‘아는 것이 힘이다’ 심훈 선생의『상록수』에서만 나오는 말이 아니다. 그렇다. 아는 것이 힘이고말고. 그 길로 서점으로 달려가서는 난에 관한 서적을 모조리 구입하여 방학기간 동안 몇 번이고 독파하기에 이르렀다.
덕분에 L씨는 짧은 기간 동안 자생란에 관한 상당한 지식을 쌓게 되었다.
그런 일로 난과 인연을 끓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는 사람도 있으니, 묘한 일이 많은 것이 세상일인가 보다.
맹목적으로 난을 할 것이 아니라, 난을 제대로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할 것이다.
부단한 노력을 하는 사람만이 개안을 빨리 할 수 있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글쓴이: 이성보
-저서 :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 「석향에 취한 오후」, 「난에게 길을 물어」, 「세상인심과 사람의 향기」 등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