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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눈 빼먹는 촌닭

admin 기자 입력 2018.03.12 16:03 수정 2018.03.12 04:03

난과 돌의 美學… 이성보 작가 에세이 연재

↑↑ 이성보 작가
ⓒ N군위신문
아무리 좋은 명품이라 할지라도 턱없이 비싼 가격에 입수하였다면 정감이 덜 간다.
수집 취미에 있어 제 값을 다 치룬 수집품 보다는 그 진가를 자기만 알아 싼 값에 입수하였다면, 그 수집품은 보면 볼수록 신바람이 나고 즐거움이 새록새록 솟는 법이다.

세상 사람들의 심리 밑바닥엔 그런 고약한(?) 심보가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는데, 이런 심리를 역이용하여 그럴싸한 미끼를 던지는 사람들도 많다.

남의 것을 거저먹으려고 하면 언제나 그 대가를 치루기 마련이며, 이런 것이 좀 지나치어 상습적이 되면 사기꾼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은 흔히 보아온 일이다.

공장도 가격이나 소비자 가격이 정해진 공산품 등은 몰라도, 취미분야에 있어서는 각자의 안목에 따라 상대방이 부르는 값에 나름대로의 계산을 하고 구입하게 되나, 턱없이 싸다고 생각되면 자기의 필요유무에 관계없이 구입하는 경우도 있다.

주한 독일 피혁회사에 근무하는 모씨가 어떤 좌석에서, 사내 직원을 대상으로 하는 할인판매 시 독일 여성들은 자기에게 소용없는 물건은 아무리 싸다해도 거들떠보지 않으나, 우리나라 여성들은 십중팔구 일단은 구입해 놓고 본다는 얘기를 했다.

자기에겐 당장 필요가 없으나 되팔아서 상당한 이득을 취하겠다는 마음에서 이겠지만, 이럴 경우 독일 여성 눈엔 어떻게 비칠런 지 상당히 염려스런 마음이 되곤 했다고 여담으로 들려주었다.

자기에게 필요 없는 물건도 그럴진데 하물며 난이나 수석, 그림, 골동품 등, 그런 방면에 빠진 꾼들은 혹시나 눈먼 게 없나하고 호시탐탐 눈독을 들이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런 눈독은 잘 들여야지 잘 못했다간 거꾸로 당하기 십상이다.
‘성석(聲石) 코너’라고 하는 칼럼 란에 돌의 일화를 연재하여 『월간 수석』지의 독자를 매료시킨 고(故) 성석(聲石) 이대식(李大植) 선생의 ‘고양이 밥그릇’이란 얘기는 수석 하는 분들에겐 널리 알려진 얘기다.

그 내용인 즉, 남한강에서 탐석 붐이 대단할 때 강변에 좋은 돌이 나오지 아니하자, 인근 마을에 쌓아둔 돌무더기를 뒤지는 열성파도 많이 생겨났는데, 한번은 두 탐석꾼이 마을 으슥한 곳에서 지게로 져다놓은 돌을 뒤적이다 별것이 없어 마을의 가게 앞을 지나던 중 고양이 밥그릇에 재빨리 시선이 갔다.

그 옆에는 꾸벅꾸벅 졸고 있는 쑥대머리처럼 헙수룩한 몰골의 촌로 한 분이 앉아 있었다. 고양이 밥그릇에 침을 살짝 발라보니 수석인들이 껌뻑 죽는 ‘진오석 물고임돌’인지라 속으로 쾌재를 부른 이 두 사람은 옆에 매놓은 고양이를 팔라며, 졸고 있던 촌노인에게 온갖 너름새를 떨었다.

“아주 예쁘고 이처럼 종자 좋은 고양이를 처음 보는 걸요.”하는 사탕발림에 촌로는 억지로 팔려는 척 했고, 그들은 결국 부르는 값보다 만원을 더 얹어 주고 고양이를 샀다.

그리고 자리에서 일어서며,
“5천 원을 줄 테니 고양이 밥그릇도 주쇼.”
하자, 그 촌로는 눈을 크게 뜨고 일어나면서,
“여보슈, 그래도 이것이 내 장사 밑천인데…. 이것 때문에 벌써 사흘 동안 여덟 마리나 배로 팔았소!”

하고 뜨물 먹은 당나귀처럼 컬컬한 목소리로 투덜거렸다는 얘기다.
이와 비슷한 얘기가 난 쪽에도 있었으니 조심할 일이다.

Y교수는 목포대학 국문과 교수로 애란가이며, MBC-TV의 장수 프로인,『전원 일기』의 작가 K여사의 부군이기도 하다. 내외분 다 애란가로 알려져 있다. 1989년 5월에는,『난과 생활』사에서 실시하는 한국란 지상 명명전에 애장란 ‘묵옥(墨玉)’을 명명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묵옥 명명 때문에 필자의 놀림(?)을 받은 적이 있다. 놀림을 받은 사유는 이러했다.
Y교수의 근무처인 목포대학 뒤편이 바로 난의 자생지이기 때문인지라 동료들 중에는 애란인이 여러분 계셨다.

몇 년 전 3월에 동료교수 몇 분이 학교 뒷산으로 산채를 갔다.

일행 중에는 나이가 많은 선배교수 한 분이 계셨는데, 산에 오르기가 힘겨워서 앞서 오르는 일행들에게 천천히 가기를 사정했으나, 서로들 얼굴을 쳐다보면서 귀찮은(?) 분을 떨쳐 버리기로 하고서는, ‘야호!’ 소리도 못들은 체 하면서 산중턱으로 내뺐다는 것이다.

일행을 놓친 노(老) 선배교수께선 야속키도 하고 괘씸하기도 하였으나, 그것은 나중에 만나서 따질 일이고 우선 뒤가 마려워 일행들이 올라간 길 바로 위 잡목을 헤치고 뒤를 보게 되었다.

뒤를 보면서 군데군데 피어 있는 난들을 살피다 입이 딱 벌어지는 완전 보랏빛의 자주색 꽃을 발견했다. 그리곤 멀리 가지 않고 주위를 서성이고 있다가 하산하는 일행들에게 분득(糞得)이인 자주색 꽃을 보여주면서,

“이런 것 쓸 만한 것이요?”
하고 건네는 말에 허탕을 치고 파김치가 된 일행들은 전부가 할 말을 잃었다고 한다.
어제 홍안이 오늘 백발이라 했는데 선배를 공경하지 아니하고 골탕을 먹이려 했으니, 허탕은 불문가지였다고 Y교수는 피어오른 웃음을 터트리며 술회한다.

그 자주색 꽃은 아직까지 꽃을 피워보지 못했다는데, 분득이인 자주색 꽃이 피어 먼저 명명전에 나서기라도 한다면 묵옥은 찬밥이 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서 서둘러 명명전에 나간 게 아니냐는 것이 놀림의 사유였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서울 종로 5가는 알만한 사람은 다 아는 자생란의 가두 판매처이다.
Y교수가 우연히 종로 5가를 지나면서 팔려고 내놓은 자생란들을 여기저기, 이것저것 구경하던 중 난 한 무더기에 눈길이 머물렀다.

그곳엔 소심(素心) 여남은 촉과 호(縞) 1촉이 무더기를 이루고 있었는데, 대개 소심은 무더기로 팔고 있어 호를 잘 몰라서 소심의 무더기에 포함시켰으리란 짐작이 갔다.

그래서 소심 무더기의 값을 물으니 2만원이라 하는지라 속으로 ‘이 멍청한 친구야!’ 하는 기분으로 얼른 2만원을 치루고 싸 달라고 했다.

그런데 그 아주머니께서 소심은 비닐봉지에 싸면서 뒤에 있던 호는 빼는 것이 아닌가.
“아주머니 그건 왜 뺍니까?”

“아니, 이 양반이, 호 1촉에 돈이 얼만데….”
하면서 올려다보는 눈초리가 ‘이 날강도 같은 것아’ 하는 것 같더란 것이다.
점잖은 체면에 무르자고 할 수도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소심이 든 비닐봉지를 들고 돌아 섰다는 것이다.

아서라 말아라, 촌닭이 눈 빼어 먹는다고 했다. 이제는 촌닭이 어디서고 도사리고 있을진저, 턱없이 싼 것은 낚시 바늘이 감추어져 있는지 조심조심 살펴 볼 일이다.
덥석 물었다간, ‘에구에구 그날 난 크게 당했다’란 말이 나오기 십상일 테니 말이다.

▶글쓴이: 이성보
-저서 : 「난향이 머무는 곳에도」, 「석향에 취한 오후」, 「난에게 길을 물어」, 「세상인심과 사람의 향기」 등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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