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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창 시인 |
ⓒ N군위신문 |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가 깨어난다는 경칩도 지났다. 바야흐로 꽃피는 봄이 왔다.
만물이 생동하고 생명의 기운을 틔우는 봄이다. 귓가를 스치는 바람 소리에 봄의 소리가 묻어온다. 봄꽃은 단 한 번 가장 빛날 그 순간을 피우기 위해 찬바람 시샘에도 애서 꽃을 피운다.
꽃샘추위가 아직은 꺾이지 않았지만 내가 사는 아파트 정원에는 목련이 솜털에 가득 쌓인 꽃눈에서 금방이라도 꽃망울을 틔울 기세다. 봄소식에 지쳐 꽃소식이 먼저 오는 것 같다.
봄의 여왕처럼 고고하고 눈부신 순백의 목련은 어느 화신의 자손일까. 그늘 하나 없는 그 맑은 빛은 세상의 온갖 비루함을 잊게 한다.
봄 길라잡이 목련꽃이 피기까지 유난히도 추웠던 지나간 겨울이 얼마나 시렸을까. 그 추위를 머금고 견뎠기에 목련은 더욱 아름답다. 겨울의 시련을 이겨내고 봄을 알리는 목련의 꽃말은 “고귀함”이다. 괴이하게도 목련은 활짝 핀 꽃봉오리들이 남쪽에 뜬 태양을 보지 않고 북쪽으로 고개를 숙인다 해서 북향화라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임금에 대한 충절을 나타내는 꽃으로 목련을 꼽는다.
며칠 전 내린 봄비가 대지를 촉촉이 적셨다. 들꽃들이 다투어 돋아나고 꽃을 피게 하는 봄비다. 3월인데도 언제나 추울 것만 같아 봄인 듯 봄이 아닌 봄 같은 날들이다. 봄은 살기 위해 발버둥 쳤던 모든 생명체들이 자신이 살아 있음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살아 움직이기 때문에 꽃피는 봄날,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눈부신 세상을 볼 수 있는 게 아닌가.
봄이 되면 포장된 도로 틈새를 비집고 올라와 숨을 쉬는 여리고 앙증맞은 풀꽃들이 흔하게 눈에 띈다. 언제 누구의 발에 밟혀 무참하게 죽을지 모르는데도 그것들은 온힘을 다해 연두색 잎을 하늘거리고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발길 하나 딛는데도 무척 조심스러워 진다.
고귀한 생명이니까. 긴 겨울을 버티고 틈새에 끼어 살아 숨 쉬고 있는 것들이 대견스럽고 고마울 뿐이다. 이제 햇살도 더 따뜻해지고 바람도 점점 훈훈해 질 것이니 세상 살맛나는 일들로 가득 찬 언제나 봄날이었으면 좋겠다.
봄이 오면 펀뜻 떠오르는 노래가 있다. 가장 많이 부르는 대중가요 “봄날은 간다”를 꼽을 것 같다.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덧없이 휘날릴 때 어느 누가 그 마음의 갈피를 잡을 수 있겠나. “옷고름 씹어 가며”누군가를 믿고 기다린다지만 기다리는 사람, 이 봄에도 아니 올 것 같은 예감이다. “알뜰한 그 명세”에도 봄은 언제나 실없는 기약처럼 봄에 새긴 언약은 부질없어 가슴 속은 먹빛이 된다. 봄은 소문처럼 왔다 봄 아지랑이처럼 사라진다. “봄날은 간다” 이 한 곡 안에는 봄과 인생의 “실없는 기약”의 애잔한 비밀들이 다 들어 있는 것 같다.
우리나라 시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노랫말 1위에 뽑힌 “봄날은 간다”는 한국 대중 가요사에 기록될 최고의 절창이다.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당신” 아직도 못 다한 아쉬움이 우리들 마음에 남아 있으려나.
꽃이 피는 봄이 오면 꿀벌들이 꽃을 찾아 분주하고 노랑나비도 꽃을 찾아 마냥 즐거워 나풀거린다. 문인들도 봄 문학행사가 봄철 내내 벌어진다. 봄꽃 축제 시화전에 작품을 전시하고, 시낭송회를 열기도 하고, 내 고향 삼국유사의 고장 인각사에서 일연스님의 행적을 찾기도 한다.
또 유명 문학관을 순례하며 고인이 된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는 문학기행에서 봄의 단상을 그리며 시상을 떠올리기도 한다. 시인은 봄날 풍경을 황홀한 언어로 투사해 왔다. 어떤 시인은 “봄이 온통 달다”고 했고, 봄의 한낮을 “창백한 학살”이라고 탄식한 시인이 있는가 하면, 봄의 환희와 절정을 “찬란한 슬픔”이라고 읊은 시인도 있다. 문화 예술의 꽃이라 불리는 시는 언어를 응축한 문자 예술이다. 가슴에 별 하나 품고 시의 향기와 빛을 찾아 남들 다 잠든 밤, 영혼을 태우는 고난의 춤사위다.
순환하는 봄은 부활의 상징이다. 꽃 소식을 접하는 봄, 시 한 편을 읽으며 화려한 봄날을 즐기는 것도 감성에 좋을 성싶다. 창밖에선 꽃망울이 맺히고 마음속에선 언어의 꽃 한 송이를 피워 보길 가까운 사람에게 아부하면서까지 권유하고 싶은 봄이다. 생의 화려한 날은 너무 짧아 아쉽기 때문이다.
일찍이 인간은 꽃이 피고 짐을 인생의 생로병사에 비유하여 문학을 통해 겨울 속 동백꽃에서 목련꽃, 가을 코스모스에서 국화꽃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꽃의 종류만큼이나 사연 많은 인간의 삶을 꽃으로 형상화하기도 했다.
꽃을 바라보는 사람의 시선을 통해 새로운 생명의 가치를 부여하고 꽃을 비교해 보기도 한다. 칼 추위에 얼어 죽을 만큼 모진 환경에도 들꽃들이 악착 같이 버텨 살아 있다는 게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일생을 제자리 붙박이로 버둥대며 삶을 포기 하지 않은 들꽃들의 의연한 심지를 새롭게 새겨 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역경에 헤매는 게 어디 들꽃뿐이랴. 나도 휘지고 흔들리면서도 꽃을 사랑하며 들꽃처럼 오늘을 살고 있다.
부산연제문인협회
회장 황성창(시인/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