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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

admin 기자 입력 2020.04.05 21:46 수정 2020.04.05 09:46

↑↑ 황성창 시인
ⓒ N군위신문
세상은 이처럼 어려운데 어김없이 봄은 오고 있다. 꽃구경은 커녕 봄철 나들이도 남들에 폐가 될까 자중하고 눈치까지 본다. 국내는 물론이고 이탈리아, 미국, 스페인, 독일, 이란, 프랑스 등 선진국을 포함해 온 지구촌이 ‘코로나19’와의 전쟁으로 북새통이다. 코로나 때문에 두어 달 나는 ‘집콕’ 중에도 삼시세끼는 잘 챙긴다.

마스크 5부제다, 경기 침체다 해서 마음 둘 데 없는 사람들의 가슴에 미스터트롯의 한(恨)서린 노랫말이 화살처럼 날아들어 우리들 가슴 과녁의 정곡에 꽂혔다. 트로트의 가사는 시(詩)이고, 잠언(箴言)이고, 촌부가 탄식하는 가슴앓이다. 마음을 휘어잡는 열창에 코끝이 찡해져 나도 모르는 사이 고인 눈물을 훔쳐야 했다. 트로트는 아무리 밝게 불러도 맺힌 한과 오랜 설움이 함축된 노래다. 음악가 중에는 유행가를 촌스러운 신파라고 무시했지만, 가장 한국적이고 대중적인 노래임에는 분명하다.

근간에 ‘TV조선’에서 기획한 미스터트롯에서 숨은 가수를 발굴하는 오디션이 태풍 급 바람을 일으키며 히트를 치고 대성공을 거뒀다. 무엇보다 힘들게 살아왔다는 수많은 트롯가수들의 도전을 응원하며 코로나 사태의 고통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던 것 같다. 트로트는 과거로 회귀하는 복고풍 노래다. 현재가 답답하고 미래가 밝지 않은 까닭에 지난날이 좋았다고 생각하는 대중심리의 반응이 아니었을까 한다.

예선을 통과하고 준결승에 진출한 행운아끼리 자웅을 겨뤄 천신만고 끝에 결승까지 오른 7명 중에 진·선·미 타이틀을 거머쥔 영광의 주인공들, 그들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아낌없이 보냈다.

그들의 꿈, 그들이 목 놓아 부른 트로트는 바로 인생이다. 설움이 밴 털털이들, 여러 번의 도전에도 실패를 거듭했던 서러움이 가슴 밑바닥에서 웅크리고 참았던 한을 용암을 분출하듯 뿜어 낸 것 같다. 쓰린 가슴 움켜잡고 밤무대를 전전하며 불면의 밤을 지새웠던 무명가수들의 트로트는 고단한 삶 그 자체다. 어떤 도전자는 가수 데뷔 십년에도 빛을 보지 못해 친구 집을 전전하며 인생의 밑바닥까지 가봤다고 실토했다.

또 다른 데뷔 23년차 도전자는 트로트의 길을 포기할 수 없어 이번 오디션에 죽느냐 사느냐 운명을 걸었다고 한다.

심지어 경연에 영혼마저 불태워 최선을 다 했기에 이젠 죽어도 후회 없을 것 같다고 했다.
도전자 모두가 버티고 견뎌 살아남기 위해서 시작한 트로트란 도박에 마치 인생을 몽땅 걸고 대든 오디션이구나 싶었다. 진심이 묻어나온 도전자들의 사자후(獅子吼)같은 절규가 아직도 내 귓전을 맴돈다.

삶의 굽이굽이를 헤쳐 나온 자의 가쁜 숨소리가 진정한 트로트인 것 같다.
영광의 트로트왕관을 쓴 챔피언의 뒷이야기를 들으면서 돌연히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는 한 장의 사진이 갑작이 떠오른다. 현재 국립발레단 예술 감독 겸 단장을 맡고 있는 세계적인 발레리나 강수진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 사진이다.

가녀린 몸매에 미모를 겸한 여인의 발인데, 두 발 열 개의 발톱 발톱마다 뭉그러지고 흉측하게 일그러져 보기도 끔찍했다. 과히 충격적이었다.

발끝으로 담기는 몸무게를 받혀야하는 고통스런 중량감을 감내하느라 상처로 얼룩진 그 발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이라고 찬사까지 써 놓은 사진이었다.

그는 스위스 로잔발레콩쿠르 동양인 최초 우승자, 독일 슈투가르트발레단 동양인 최초, 최연소로 입단한 천재 발레리나 강수진의 화려한 이력서다. 화려함 뒤에는 얼마나 많은 눈물과 땀방울을 흘렸을까.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만큼의 노력 끝에 씌워 진 눈물 젖은 월계관이다. 노력 없이 단지 재능과 천재성으로 세계적인 발레리나가 되었다면 감동이 크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월드 급 축구선수로 대성한 박지성의 평발을 극복한 신화도 그랬었고, 피겨 스타 김연아의 끝없는 엉덩방아 찢기 수만 번에 피멍으로 단단해진 체력과 끊임없는 노력의 결실이 그 분야의 최고가 될 수 있는 힘의 원천이 아니었을까.

인생의 삶도, 소망하는 꿈도 끈기 있게 물고 늘어지면 최고의 경지에 다다를 수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했고 챔피언들의 성공을 목도했다.

트로트의 열풍을 보면서 부끄럽지만 내 자신에게 지금 무엇을 위해서 사느냐고 되물었다.
그토록 소망하던 문인 명찰을 단지 어언 십년 세월도 어영부영 지나쳐 버렸다. 신춘문예란 문학인의 꿈, 나도 욕망이라는 이름의 ‘꿈’무대에 오르고 싶다는 마음의 다짐을 메시지로 저장해 두기로 했다.

나 같은 만년(晩年) 문인에게는 고무적인 일이다. 100년의 역사를 지닌 신춘문예는 문학판 고시(考試)이자 문인들 최고의 오디션이다. 도전은 스스로, 혼자의 힘으로 깊고 물살 쌘 강을 건너가야 한다.

그게 문학의 이정표를 향해 정진해야 할 징검다리다. 독일의 시인 괴테는 “작가는 여든의 나이에도 소년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고 했다. 여든 나이에 뭘 따질 일 있으랴. 꿈이 이루어질 때까지 문을 두드려 볼 것이다. 어디 첫술에 배부르랴.

황성창 시인
(재부군위군향우회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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