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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춘수 원장 |
ⓒ N군위신문 |
이른 새벽 라이브 콘서트가 시작된다. 삼경이 지나 수탉이 홰를 치며 목청을 까짓것 돋우어 우는 소리에 어둑새벽이 눈 비비며 일어난다.
샘가 늙수그레한 감나무 가지에서 온갖 잡새들이 청아한 목소리로 한 곡씩 뽑는다. 배고파 어미 배를 주둥이로 들이박는 송아지 성화에 어미가 일어나면서 뀌는 방귀 소리가 요란하다. 소프라노, 테너, 베이스 등 다양한 목소리가 어울려 희망 가득한 새 아침을 연다.
동녘 하늘에 오색 찬란한 햇빛이 빙그레 웃으며 얼굴을 내민다. 일꾼이 사립문을 비시시 열고 들어오면서 헛기침한다. 지난밤에 무엇을 했는지 피곤기가 역력해 보인다.
아버지께서 한 눈으로 읽어보시고 “어젯밤에 뭐 했나?” 하시며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보신다. 일꾼은 아무렇지 않은 듯 여물을 소 버지기에 꾹꾹 눌러 담아 소 죽통에 갔다 나른다.
우리 집은 동네에서 제일 먼저 일어난다고 소문난 집이다. 이른 아침 다른 집 굴뚝에서 우리 집 보다 먼저 연기가 나면 어머니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진다. 밤잠을 설치시면서 다음 날 아침 그 집보다 먼저 굴뚝에서 연기를 내어야 직성이 풀리신다.
시기 질투라기보다 남에게 뒤지기를 싫어하시는 편이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 따라 일찍 자고 일어나고 했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지금도 새벽 4시경이면 일어나고 한다. 좋은 습관인지 아닌지, 지금까지 건강히 사는 거를 보면 좋은 것 같다.
여느 때와 같이 아침을 일찍 먹고 들에 나갈 준비 한다. 일꾼이 황소를 몰고 들에 가려고 마구간에 들어가서 말뚝에 매어 둔 고삐를 풀자 소는 갑자기 꼬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황급히 집 밖으로 뛰쳐나간다.
일꾼이 지게를 벗어 던지고 따라간다. 황소는 입에서 하얀 거품을 북적거리며 이 골목 저 골목을 정신없이 헤맨다. 일꾼은 숨을 헐떡이며 간신히 소를 붙잡아 집으로 돌아온다. 동네를 몇 바퀴 돌았는지 구슬 같은 땀이 얼굴을 타고 땅에 뚝뚝 떨어진다. 해가 중천에 떠올랐다. 시원할 때 일하려고 했는데 하시며 아버지는 발칵 역정을 내신다.
아버지는 성질이 급하시면서도 마음은 여리신 편이다. 이내 역정을 멈추시고 굳은 얼굴을 펴시고 착잡한 분위기를 환기시키신다.
집안에 크고 작은 일이 일어나면 지혜롭게 일을 잘 처리하시고 한다.
우리 집은 담당 부서가 있다. 나는 소 풀을 뜯어주고 먹이러 가는 것이 담당이다.
따가운 햇볕이 조금 누그러질 무렵 소 먹이러 갔다가 해가 서산과 입맞춤할 때면 돌아오곤 한다. 나는 소 배가 부른지 안 부른지 모른다.
그냥 소를 몰고 산에 가서 풀을 뜯어 먹이려 갔다 오면 되는 줄로만 안다. 그런데 아버지 눈은 속일 수 없다. 소가 풀을 많이 뜯어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한 눈으로 알아보신다. 한 날은 저보고 어제 “소 먹이러 가서 뭐 했냐? 소 배가 그렇게 홀쭉했냐?” 은근슬쩍 물어보신다.
전날 일어났던 일을 소상히 말씀드렸다. 평소와 다름없이 소를 몰고 산으로 갔다. 소들은 산을 오르내리면서 풀을 한가로이 뜯고 있었다.
우리들은 산기슭에서 구슬 따먹기 땅 빼먹기를 하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재밌게 놀고 있었다. 나는 놀면서도 눈은 항상 소에 가 있다. 해가 서산으로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 암소 한 마리가 옆에 있는 암소 등에 올라타고 내리고 한다. 두 마리는 번갈아 타고 내리고 한다.
이상하게 여겨 또래한테 “저 소가 암소 냈냐?”(발정이 왔냐?) 하며 물어보았다. 너는 그것도 모르냐? 놀려대며 “맞다”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먼 데 있든 우리 집 황소가 먼지를 일으키며 그 소 곁으로 달려간다. 뒤를 이어 난데없던 황소 한 마리가 쌕쌕거리며 따라붙는다.
여유만만했던 우리 집 황소가 깜짝 놀라며 머리를 획 돌리며 그 소의 머리를 힘차게 들이박는다. 순간 불꽃 튀는 싸움이 벌어진다.
우리 집 황소가 덩치가 더 크고 힘이 세 보였다. 이놈 어디 맛 좀 봐라. 어딜 감히 달려드냐? 마음을 푹~ 놓고 물끄러미 쳐다보고 서 있다. 그런데 덩치가 작아 보여도 생각 의외로 만만치 않다. 물러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금방 끝날 것으로 알았는데 슬며시 걱정된다. 밀고 밀리면서 혈투가 계속된다. 시간이 차츰 흘러가자 힘에 밀린 작은 소가 가쁜 호흡을 몰아쉬면서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에 우리 소가 작은 황소 옆구리를 들이박으면서 언덕 아래로 밀어붙였다. 작은 황소는 괴함을 지르면서 언덕 아래로 떨어졌다.
의기양양한 황소는 하얀 이빨을 드러내 보이면서 암소를 차지한 기쁨을 만끽한다. 피가 낭자한 얼굴로 암소의 귀와 머리를 핥아준다. 암소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고개를 들고 목을 쭉 뺀다. 황소는 뿔로 암소 엉덩이를 쿡쿡 들이박으며 찝쩍인다.
그런데도 곁에 얼씬도 못 하게 하든 암소가 웬일인지 꼼짝하지 않고 버텨 서 있다. 황소는 입에 하얀 거품을 물고 암소 등에 올랐다 내렸다 한다. 얼마 후 두 마리는 꿈속으로 빠져들었다. 엉금엉금 기어가던 해가 황소와 암소의 앞날에 축복을 빌어주며 서산해 마루에 걸터앉아 하루를 마감할 준비를 한다.
아버지께서는 이야기를 다 들으시고 알 듯 모를 듯 고개를 끄떡이신다. 하룻밤을 꼬박 새워도 아쉬운데 잠시 만나고 헤어졌으니 아무리 무뚝뚝한 황소일지라도 얼마나 애달팠을까? 삼경이 지난 지 오래되었는데 수탉이 홰치며 우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투덜댄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