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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국수

admin 기자 입력 2023.04.17 00:22 수정 2023.04.17 12:22

↑↑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여름 음식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때와 장소에 따라 맛이 시시각각인 것도 특이하다.

삼십도 오르내리는 더위에도 이열치열이라며 땀 흘리며 먹는 국수 맛과 일상에서 점심때 먹는 맛 그리고 비 올 때 춥고 서글퍼 꼼짝하기도 싫을 때 아랫목에 펑퍼짐하게 앉아 먹는 뜨끈뜨끈한 국수 맛은 맛 중의 맛이다. 국수에 대한 아련한 추억거리가 스멀스멀 떠오른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어느 날. 밀짚모자에 보릿짚 도리를 걸쳐 입고 논매기한다. 무논에서 하는 일은 밭에서 하는 일보다 힘이 배 든다.

그래서 배도 더 빨리 고파진다. 나는 일하다 말다 집에서 먹을거리 들고 오는가 싶어 목이 빠지라 사방을 두리번거린다. 누나가 커다란 버지기를 머리에 이고 바쁜 걸음으로 걸어온다.
우리는 논두렁에 빙 둘러앉아 누나가 놋대접에 국수를 담아 준 거를 받아먹는다.

뜨거운 국수에 양념간장 넣고 매운 고추를 생된장에 찍어 먹는 맛은 꿀맛이다.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 놋대접 한 그릇 금방 뚝딱이다. 온몸이 얼음 녹듯 확~ 풀리면서 쑥 들어갔던 눈이 두꺼비눈처럼 툭 불거진다.

초복이 다가온다. 찌는 듯한 무더운 날씨에 가만히 앉아있어도 숨이 턱턱 막힌다. 선풍기란 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다.

더위를 식혀 주는 유일한 것이 부채다. 부채질 아무리 해 봐도 소용없다.
애꿎은 팔만 아프다. 이런데도 엄마는 점심 준비를 위해 살평상에 앉아 우리 식구들이 먹을 만큼 밀가루 반죽하느라 이마에 진땀이 흐른다.

돗자리 깔고 안반 위에 축구공만 반죽을 얹어 놓고 홍두깨로 차근차근 밀어낸다. 얇게 된 반죽을 홍두깨에 둘둘 감아 안반 위에 얹어 놓고서 양손으로 밀고 당기면서 반죽을 얇게 편다.
처음 책 보자기만 하든 반죽이 밀고 당기고 하는 바람에 작은 마당만 하게 넓혀졌다.

넓혀진 반죽을 여러 겹으로 접어 안반 위에 놓고 칼로 썰면 된다. 나는 국수 꼬랑댕이 얻어먹으려고 엄마 옆에 바짝 붙어 있다. 반죽을 썬 솜씨가 얼마나 빠른지 하나둘 헤아릴 수 없다.
양팔 정도의 기다란 반죽이 눈 깜짝할 사이 우아한 꽃 모양으로 변해 버렸다. 국수 꼬랑댕이 얻어먹으려고 벼렸던 마음이 산산조각 나버렸다.

자질구레한 심부름을 쉽게 시킬 수 있는 것은 막내인 나밖에 없다. 엄마는 동 솥에 물 한 버지기 들이붓고 불을 지피라 한다.

불을 지피고 있는데 갑자기 불어닥치는 바람에 연기가 얼굴을 확 덮친다.
눈물 콧물 닦으며 불이 꺼질까 봐 열심히 피운다.

얼마인지 물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너른 솥을 빙글빙글 돌기 시작한다.
불이 점점 뜨겁게 달아오르자 물은 왕방울만 한 방울을 일으키며 부글부글 끓어오른다.

엄마는 펄펄 끓는 물에 배추와 잘게 썬 호박과 감자를 넣는다. 긴 주걱으로 휘휘 젓고 난 뒤 촘촘하게 썬 국수를 한 줌씩 쥐고 비료 뿌리듯 넣는다.
솥뚜껑을 닫고 한참 동안 기다린다.

뚜껑을 열자 김이 확 피어오른다. 긴 주걱으로 국수를 빙빙 돌리며 휘젓는다.
큰 버지기(자배기)에 국수와 국수물을 조리로 퍼 담는다. 그리고 양념간장, 매운 고추, 생된장 등을 가지고 온다.

온 식구가 빙 둘러앉아 매운 고추 맛에 호호거리며 남김없이 다 먹는다. 엄마는 식구들이 땀 흘리며 맛있게 먹는 거를 보고 만족해하시며 얼굴에 만면의 미소가 가득하다.

별 반찬 없이 맛있게 먹을 수 있는 국수는 언제부터 먹기 시작했을까. 국수란 면麵을 뜻하는 순우리말로 삶은 면을 물로 헹구어 건져 올린다고 하여 국수 水라 불렀다고 한다.

국수의 유래는 기원전 육천 년 전경 메소포타미아지역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중국 송나라 사신 ‘서긍’이가 쓴 『고려도경』기행문에 “고려 사람들은 제사 지낼 때 국수를 먹고, 절에서 국수를 만들어 판다”는 기록이 되어 있다.

이를 보면 고려 시대 이전부터 국수를 먹은 것으로 추정한다.
또한 『고려도경』에 고려에는 밀 농사가 많지 않아 밀가루가 비싸 결혼식 때나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국수에 관한 기록이 많다. 1400년 중반 세종 때 어의御醫 전술의가 쓴 산가요록山家 綠은 대표적이다. 조리법까지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국수는 지금도 남달리 좋아한다. 빵, 국수, 라면 등 가루로 만든 음식은 가릴 것 없이 다 좋아한다. 자주 가는 중국요릿집에 가면 으레 좋아하는 음식이 자장면인 걸 알고 물어보지도 않고 자장면을 들고나온다.

가끔 우스갯소리로 가루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은 싫어하는 사람보다 키가 더 크다.라는 말을 듣는다.

그래서인지 이 나이가 다 되어도 아직도 키가 작다는 소리를 들어 본 적 없어 가끔은 그런가 하는 생각을 한다.

지금에 와서 국수는 요리하는 과정에 따라 칡국수, 쟁반국수 등 맛과 모양이 다양하다. 지역 특색에 맞춰 춘천 막국수, 경기 메밀국수, 전주 콩국수, 제주 고기국수, 경상 건진국수 등 맛과 향과 이름도 각양각색이다.

어릴 때 먹었던 국수 맛이 오늘의 국수 맛과 비교할 수 없다. 지금 세대는 배고픔을 느끼지 못하고 지내온 세대다. 허리띠 졸라매고 6.25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들은 국수의 향수에서 벗어날 수 없다. 국수는 예나 지금이나 국민들의 변함없는 음식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마다 생각난다.
국수는 여름 음식 중에 빼놓을 수 없는 별미다.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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