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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지금, 선비가 보이지 않는다

admin 기자 입력 2024.07.18 16:24 수정 2024.07.18 04:24

↑↑ 황성창 수필가
ⓒ N군위신문
선비는 단순한 지식인이 아니다. 선비란 자신이 닦은 학문과 수양으로 이념을 구현하는 인격체를 통틀어 말한다.

선비(지성인)는 지각을 바탕으로 인식의 세계를 정립한 정신적 능력을 갖춘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비판을 겸비하지 않으면 선비라 할 수 없다.

장 폴 사르트르는 “지성인이란 자기 일이 아닌 남의 일에 기꺼이 뛰어드는 자”라 했다. 부정과 불의에 분연히 항거하고 참견하라는 뜻이다.

시대의 불의에 맞선 저항 시인 김지하는 60~70년대 민주화운동에 앞장서다가 옥살이도 했고, 사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1970년에 재벌과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과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대서 부정부패와 비리를 질타하는 저항시 ‘오적(五賊)으로 필화(筆禍)를 겪었다. 당시 풍자적 의미로 썼던 오적을 지금도 사회적 병폐를 풍자하는 상징적 언어가 되고 있다.

894년 신라 진성여왕 8년 고운(孤雲) 최치원은 신라 말엽의 국정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정치개혁안으로 ‘시무십여조(始務十餘條)’를 여왕에게 올렸다.

그러나 기득권 세력들의 저항에 부딪혀 40세 나이에 모든 관직을 버리고 은거했다.
신라 왕실에 실망과 좌절감을 느낀 최치원은 세상과 인연을 끊고 구름처럼 떠돌다 가야산 홍류동 계곡에 ‘일입청산갱불환(一入靑山更不還)’ ‘이번에 청산에 들어가면 다시는 세상에 나오지 않으리라’는 시를 남기고 신선처럼 사라졌다.

우리나라 중세기에 좌절한 지식인의 지성을 보여준 최초의 인물이 최치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옳다고 확신하는데 선비가 신념을 버릴 순 없었을 것이다.

보백당(寶白堂) 김계행(金係行)은 조선의 문신이다. 1498년 연산군 4년에 대사간에 올랐으나 훈구파에 제지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 안동으로 낙향했다.

그는 후손들에게 “오가무보물(吾家無寶物) 보물유청백(寶物惟淸白)”이라는 유훈을 남겼다. “우리 집에 보물이 없는데, 보물은 오로지 청백(淸白)뿐”이다는 뜻이다.

양반은 주변 공동체를 배려하는 사람이다.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 선비이고 양반인 것이다.
사람은 빈부를 떠나 예의(禮儀)의 바탕을 지녀야 한다. 요즘은 까탈스럽게 투덜대기만 하고 부끄러움을 모르는 세상 같다.

1555년 을묘년에 남명(南冥) 조식은 명종 임금에게 “전하 죽음을 무릅쓰고 아뢰옵니다”라고 쓴 ‘단성소(丹城疏)’를 올렸다.

남명은 “지금 전하의 나랏일은 매우 잘못돼 고 있습니다. 나라의 근본인 백성의 삶은 엉망진창이며. 백성의 마음은 천지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권력을 쥔 자들에게도 일갈했다.

‘지금은 아첨하는 소인배들이 추악한 돼지와도 같이 올바르지 못한 마음으로 군자를 헤치고 있다’라고. 나라를 위해 거침없이 질타한 것이다. 이런 게 바로 선비정신이 아닐까 싶다. 남명은 명실상부한 조선 최고의 유학자다.

매천(梅泉) 황현은 전남 광양 출신이다. 나이 30전에 장원 급제했지만, 시골 출신이라는 이유로 2등으로 강등되자 “미치광이들이 들끓는 도깨비 나라에서 벼슬할 마음이 없다”라는 말을 남기고 구례로 내려가 평생을 후학에 전념하며 은거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죽기 전까지 47년간의 역사 기록인 ‘매천야록’을 집필한 것으로도 유명한 대쪽 같은 선비다.

1910년 한일합방 소식을 들은 매천은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자결하였다.
그중에 널리 알려진 한 수를 인용해 본다. “새와 짐승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네/무궁화 이 나라가 이젠 망해 버렸네/가을 등불 아래 책 덮고 지난 역사 생각하니/인간 세상에 글 아는 사람 노릇 하기 어렵기만 하누나(鳥獸哀鳴海嶽嚬/槿花世界已沈淪/秋燈掩卷懷千古/難作人間識字人). 매천은 “벼슬을 한 적은 한 번도 없지만, 지식인으로 살면서 나라 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죽는 사람 하나 없으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하며 탄식을 했다.

매천 황현의 순국에 감동한 만해(萬海) 한용운은 1914년 추모시(追慕詩) ‘매천 선생’을 친필로 써서 유족에게 전달했다. “의리로써 조용히 나라의 은혜를 영원히 갚으시니/한 번 죽음은 역사의 영원한 꽃으로 피어나시네/이승의 끝나지 않은 한(恨) 저승에는 남기고 가소서/괴로웠던 충성 크게 위로하는 사람 절로 있으리”라는--

선비정신은 바른길을 걷는 올곧음과 따뜻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 건강한 사회가 되려면 건강한 정신이 필요한데, 박기후인(薄己厚人)이 체질화되어 있어야 한다. 자기에게는 엄격하고 타인에겐 관대한 태도가 선비 철학이다. ‘내로남불’의 반대말이라 하겠다. 내로남불은 수신(修身)이 안 된 소인배의 정형으로 생각한다.

‘이게 뭡니까?’ 한평생 권력을 향해 직언했던 김동길 교수 같은, 김지하 같은 지성인이 그리워진다. 지금 나라 꼴이 여야, 세대, 지역으로 나뉘어 진흙탕 싸움으로 만신창이, 풍비박산 직전이다.

이 혼탁한 사회를 청정한 사회로 이끌어 줄 진정한 선비(지성인)는 지금 없는 걸까.
선비들이여! 지성인들이여! 선비의 철학으로 나라의 중심에 서서 어려운 역할을 해주길 제발 바란다. 각자도생, 약육강식으로 가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지 않던가.

황성창 시인/수필가
(재부의흥면향우회 상임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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