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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성창 시인·수필가 |
ⓒ N군위신문 |
한 해의 종착점이 다가온다. 혼란스러운 가운데도 희소식들이 들이닥친다.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한국인 최초로 소설가 ‘한강’이 선정되었다는 톱뉴스에 위안을 받는다. 한강은 수상 예정자 명단에 애초에 보이지 않았기에 모두가 놀랄 수밖에 없었던 결과다.
한국은 왜 노벨문학상을 못 타나 매년 노벨문학상이 발표되고 나면 연례행사처럼 허탈해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2000년대부터 고은 시인, 황석영 소설가 등이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긴 했지만, 수상에는 번번이 실패하며 실망을 안겼다.
한강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의 높은 수준을 세계 최고의 문학상을 통해 인정받았다는 점에서 작가 개인의 영광을 넘어 국가적 쾌거이기도 하다.
이로써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했던 한국의 오랜 숙원이 풀렸다. 노벨문학상 수상은 한국문학의 세계적 성취 앞에 문화 강국으로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한강의 수상은 아시아 여성으로는 최초 수상이라는 기록도 세웠다.
뉴욕타임즈는 “한국에서 획기적이고 도발적인 현대 문학의 대부분은 여성 작가에 의해 쓰이고 있다.
그럼에도 한국 미디어와 문학계는 나이든 남성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대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성 작가인 한강이 한국문학의 노벨상 가뭄을 끝내게 된 것은 즐거운 놀라움이자 지적 정의”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국내 문학계도 연말 결실의 계절을 맞이하여 권위 있는 문학상 수상자에게 박수갈채로 문학인들이 한마당 축하의 잔치를 벌이고 있다.
한강의 노벨상 수상 소식 못잖게 필자를 마냥 기쁘게 했던 소식이 있다. 2024년 제32회 부산 시인협회 주관 공모에서 우수 작품으로 선정, 우수상을 받은 고향 사람 보우 스님의 시 ‘우보역(友保驛)에서’를 접한 순간 마른 가슴에 단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듯했다.
우보역은 내 어릴 적 부산 외갓집을 철마다 드나들 때 숨 가쁘게 달려오는 괴물 같은 기관차를 타고 내린 아련한 추억들이 서려 있는 역이다.
부산 문단에서 시로 소환되어 내 눈앞에 고즈넉한 환상으로 얼른거리니 그 감회를 어찌 다 표현하랴.
“선암산 그늘 아래/위천 맑은 거울삼아/
초록 물든 들녘 민들레/키를 재며 자라던 아이야/
별이 된 엄마 고향 땅 언덕에 묻고/어린 가슴 그리운 눈망울/
아버지의 커다란 손을 잡고 쫄랑대며/처음 보는 큰 집으로 갔다/
함께 놀던 고추 친구 뒤로하고/
아버지 여기가 어디인가요?/음 기차가 서는 역이란다.
너 기차 타보고 싶다고 하였잖니/그래서 그래서/
오늘 멀리 기차를 타고 소풍을 가는 거야!/
지금 겨울이잖아요?/겨울에 소풍 가는 게 아닌데/
하얀 증기를 뿜으며 기관차가 달려왔다./
처음 타본 완행열차 역마다 정차하며 사람을 태우고/
내리며 긴 철길 먼 시간 달려 종착역에 내린다/
멀미가 나 초죽음이 된 나를 아버지가 가슴에 안고/
별이 빛나는 어둠 속으로 걸어가셨다.
창문에 타향살이 시작의 아침이 밝아오고/
그렇게 새로운 시작이었다 아이는”
-보우 스님의 시‘우보역에서’ 전문이다.
보우 스님이 어린 시절 고향에서 어머니를 여읜 후 아버지의 손을 잡고 나오는 과정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이야기를 담은 시다.
오래전에 폐역된 ‘우보역에서’의 시가 부산 최대의 시인협회 공모에 우수 작품으로 선정되었다는 소식에 얼마나 기뻤는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비록 철마는 멈추지 않더라도 상·하행선 기찻길에 얽힌 애환들을 반추할 수 있는 ‘시비(詩碑)’라도 건립해 호젓한 ‘우보역’ 입구에 세워두면 보는 이들의 마음은 어떨까? 정든 옛것들이 하나하나 소멸해가는 안타까움에 대한 출향인의 애틋한 하소연이다. 부질없는 생각인가.
시 ‘우보역에서’로 수상한 시인 보우 스님의 속명은 이상화다. 군위군 고로에서 태어나 의흥 읍내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오래전 불가에 귀의하여 지금은 부산 감천문화마을 ‘관음정사’ 주지이다. 원로시인이요 소설가로 문학의 열정도 대단하다.
1992년에 등단하여 시집 ‘목어는 새벽을 깨우네’ ‘눈 없는 목동이 소를 몰다’‘화살이 꽃이 되어’ 외에도 2편의 시집과 한(漢)시집 ‘감천에서 매창을 만나다’를 펴내고, 장편소설 ‘영혼의 바람’을 출간할 만큼 빼어난 문장가다.
필자 역시 문인으로서 붓을 통해 군위를 알릴 방도를 궁리는 하나 역부족이다. 부산의 유수한 문학단체들이 문학기행 목적지로 군위를 선택하도록 권유하기도 하고 때론 가이드로 함께 고향 문화유적지를 찾긴 하나 항상 아쉬움만 가득히 남는다.
그래도 혹여 어느 작가가 군위를 소재로 한 작품이 베스트셀러가 된다면 오죽 좋으랴 하는 간절함의 미련은 간직할 셈이다. 이런 기대는 효령 출신 김성일 시인이나, 산성 출신 정은영 소설가, 소보 출신 구옥순 동시인 등 군위 출신으로 활동하는 훌륭한 중견 작가들 마음 역시 필자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어수선한 시절 탓인지 초겨울인데 세상은 왜 이리 매섭고 추운지 모르겠다.
참담하고 답답한 세월 속에서도 위안을 주는, 어두운 곳에 불을 밝히는 등불처럼 소외된 계층을 알뜰살뜰 보살피는 자비심으로 언제나 묵묵히 봉사하는 보우 스님이 우리 곁에 있어 으쓱하고 자랑스럽다.
더욱이 재부의흥면향우회 자문위원으로 스스럼없이 연을 나누어 뿌듯하다. 이렇듯 자랑스러운 고향 사람들과 늘 동고동락할 수 있어 필자로서는 큰 복이 아닐 수 없다.
황성창 시인·수필가
재부군위군향우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