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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한해를 매듭지으면서

admin 기자 입력 2024.12.22 23:35 수정 2024.12.22 11:35

↑↑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 N군위신문
새해가 시작되면 사람들은 저마다 새로운 각오와 희망과 포부를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한다.

수험생, 취업 준비생, 사업가,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의 희망과 포부가 이루어지길 간절히 염원한다.

한해를 마감할 때쯤 되면 결과의 과정에서 혼선이 빚어진다. 희비가 엇갈리며 아쉬움과 후회와 미련이 남는다. 우리는 이를 거울삼아 또 시작하고 한다.

갑진년 새해 아침 동녘 하늘에 용트림하며 힘차게 솟아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청년 못지않게 희망찬 푸른 꿈을 꾸었다. 2024년 7월 11일 제2회 군위문화원 주최 전국 마라톤 대회가 있다.

우리 군에는 60대 70대 80대 네 사람이 대표로 출전하였다. 체력이 바닥인 제가 80대 대표로 출전하였다. 그럼에도 시상대 위에서 영광의 동메달을 목에 걸고 금의환향하였다는 사실은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내 인생 최고의 극적인 한 편의 드라마였다.

기자가 몰려든다. 노령에 어떠한 운동을 하셨기에 오늘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까? 비결이 무엇입니까? 소감을 한 말씀 부탁합니다. 뜻밖의 영광을 생전 처음 받아서 생각이 나질 않습니다. 후일에 차 한 잔 나누면서 이야기할 기회를 주신다면 그때 모든 것 말씀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초가을 선선한 바람이 옷깃을 스치는 어느 오후 자리를 마련하였다. 차 한 잔 나누면서 그날 일어났던 기쁨의 순간을 소환하면서 이야기를 더듬었다.

우리 네 사람은 각자 훌륭한 지도 선생님 모시고 열심히 훈련하였다. 태양이 이글거리는 더위를 무릅쓰고 지혜와 체력을 단련하면서 맹훈련에 돌입하였다.

나는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라는 슬로건을 걸고 구두에 땀이 흥건한 것도 모르고 열심히 달렸다.

『정보는 경기의 승패를 좌지우지한다』 정보에 어두운 나는 다른 사람들에 비해 늘 한발 늦을 수밖에 없었다. 세 사람은 자기가 마라톤에 출전한다고 명함을 나누며 얼굴을 알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허겁지겁 따라 했다.

그런데 누구한테 명함을 돌려야 내 얼굴을 알릴 수 있는지 몰랐다. 문화원 회원 명단이 없어 더욱 난감했다. 하는 수 없어 비행기에서 전단 뿌리는 듯했다. 안면도 없는 사람한테 명함을 쑥 내밀기가 여간 쑥스럽지 않았다. 얼굴 알리기 위해 나름대로 생각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단체가 제일이라고 생각했다. 가입을 서둘렀다.
노래교실 동아리를 처음으로 찾았다.

회원들 모두 쳐다보면서 한 마디씩 날린다. 키는 삐쭉하고 머리는 오다가다 몇 개 붙어 있는 볼 품 없는 사람이 불쑥 나타났다. 환영 비슷한 말인 것 같은데 왠지 비아냥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여기에서 물러서면 안 된다.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아는 사람 한둘 있다. 그럭저럭 며칠 지나고 나니 모두 알게 되어 스스럼없게 지낼 수 있게 되었다.

첫 관문을 무난히 통과하였다. 그 후 다른 단체에 수월하게 가입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서서히 안면 없는 사람들과 부딪히면서 알게 되었다. 가입한 단체를 기억해 보았다.

기타 교실, 시조창 교실, 사군자 교실, 노래방 교실, 한글 붓글씨 교실, 시 교실 등 여섯 단체에 가입했다. 한꺼 번에 많은 사람들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마라톤 42.195km 거리를 달리는데 약간의 힘이 되었다.

마라톤은 42.195km 달리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훌륭한 스포츠다. 끈기와 인내가 필요한 운동이지만 재미있는 운동의 하나인 것 같기도 하다.

세상 돌아가는 일, 땀 흘리면서 왜 달려야 하나 등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만든다.
달리면서 만난 사람들을 떠올리면서 그 사람의 심성을 하나하나 헤아려 볼 수 있게 한다. 좋은 사람 그렇지 않은 사람, 겉으로 잘 뛰어라고 열심히 응원해 주는 사람이 속으로 비안냥 거리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한 눈으로 다 읽을 수 있다.

때로는 이를 악물고 달리기도 했다. “속 상해” 보란 듯이 달렸던 것뿐이다. 결코 그 사람 응원에 힘입어 달린 것은 아니다. 겉은 번지르르하고 텅 빈 속에 거짓 선동과 사기로 가득 찬 그 사람을 볼 때 토하고 싶다.

그것도 먼 곳에서 하면 좋겠는데 바로 옆에서 열심히 뛰어라 하며 열렬히 응원하는 꼬락서니를 보며 가슴이 터지는 것 같았다.

당시는 몰랐다. 영광의 시상대에서 내려온 후에 알게 되었다. 믿음과 신의가 없는 우두 컴컴한 세상에서 무엇을 더 바랄 것이 있겠나! 어쩌다 생각이 한 번씩 떠오른다.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던 것이 너무나 다행이었다. 눈으로 볼 수 없는, 들어볼 수 없는 사람들의 생각과 감정을 두 눈으로 똑똑히 들여다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참으로 좋은 기회였다.
손뼉 치고 함성 지르고 손짓 몸짓하면서 열렬히 응원하는 것이 마치 무당이 굿하는 것 같아 보였다. 내가 멋있게 달리는 것이 못 마땅하게 여겨 악을 쓰고 함성 지르는 것 같았다. 이런 사람을 내 바로 옆에 두고 자문을 구했다는 것이 어무나 억울하다.

속이 텅 빈 아무것도 모르는 허수아비 같은 것에 매달리다시피 행동을 했다는 것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

한 번 변한 마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나에게 돌아온다는 법칙은 없다. 흠 없이 살아온 내 인생에 티끌만 한 흠이라도 생길까 오염될까 만나게 될까 두렵고 겁이 난다.

세상모르고 살아온 것이 죄라 달게 받겠다. 하지만 말할 수 있는 자격 있는 사람이 말하면 받겠지만 허수아비 같이 것이 말하면 받지 않을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달리다 지치지 않고 결승 테프를 끊었다.

시상대에 올라 영광의 동메달 받았다. 비록 태극기는 올라가지 못했지만, 너무 좋았다. 매달을 껴안고 울음을 참지 못했다.

내 나이에 과분한 매달을 받은 것 같아 마음이 차분했다. 가보(家寶)로 대대로 물려줄 생각을 했다. 응원해 주신 모든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늘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일곱 동아리에 가입한 것은 영원히 나의 무덤까지 가져갈 것』이라고 가슴에 새겨 두었다.

한 해를 매듭지으면서 2024년 7월 11일 군위문화원 제2회 전국 마라톤 대회가 성황리에 마치게 되었음을 감사히 생각한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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