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
ⓒ N군위신문 |
생명을 살리는 직업은 위대하다. 사람을 살리는 의사, 약사뿐만 아니라 과수원에서 가지치기하는 전지사(剪枝師), 정원이나 수목을 가꾸는 정원사(庭園師) 등 생명을 살리는 모든 직업은 위대하다.
세간에 명함도 없는 내 직업도 거론되고 있다는 소식에 한편으로 좋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씁쓸한 느낌이 든다.
지금과 같이 세계 경제 흐름에 사료값 인상과 소값 하락으로 축산인들의 심각한 기로에서 내 직업의 존재가 불투명해서다.
무더운 여름 어느 날 개를 차에 싣고 급히 병원으로 들어온다.
견주(犬主)가 하는 말, 다른 병원에 갔더니 개는 죽어가는 데 몇 시에 오라고 하기에 열받아 여기에 왔다고 한다.
개를 살펴보니 왼쪽 앞다리 상단부에 10센티미터 정도 길게 찢어져 있었다.
일찍이 크고 작은 어떠한 수술도 안 하기로 했었는데 내 생애 마지막으로 수술을 해주기로 결심했다. 정성을 다해 수술을 깨끗이 끝냈다. 8일 만에 실밥을 제거하러 왔다. 상처가 튼튼하게 아물어 붙은 것 같아 실밥을 제거하고 후 처치를 말끔하게 했다.
며칠 후 수술했던 부위가 또 벌어졌다며 견주가 시큰둥해서 찾아왔다.
수술 부위가 잘 아물어 붙은 것 같은데 왜 터졌는지 알 수 없어 궁금했다. 절친한테 전화로 물어보았다. 운동할 때 그 부위가 늘어났다 줄었다 하는 곳이라면 실밥이 터질 우려가 있다는 말을 듣고 보조 봉합하면 될 것 같은 생각이 얼른 들었다.
봉합을 완벽하게 하고 돌려보냈다. 마음 놓고 잊어버리고 있는데 며칠 후 또 벌어졌다며 찾아왔다. 기가 차고 맥이 풀렸다. 아무리 설명해도 견주는 막무가내다.
수술하기 전에 수술했던 부위를 유심히 살펴보았다. 수술 부위가 잘 아물어 붙어 있었다. 보조로 봉합한 부위에 봉합한 실밥이 살을 뚫고 밖으로 밀려 나왔다.
실밥을 제거하고 상처 부위를 치료하고 상세히 설명한 후 돌려보냈다, 그 후 아무런 소식이 없어 수술이 잘된 것으로 생각하고 안심하였다.
연일 후덥지근하던 날씨가 계속되더니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창밖을 내다보면서 며칠 전 개를 수술했던 일이 떠오른다. 주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
마취는 개의 무게에 따라 마취 용량이 다르기 때문에 언제나 신경이 쓰인다. 수술하면서 용량을 정확히 알게 된 것은 큰 다행이었다. 그리고 봉합할 때도 반드시 보조 봉합을 해야 한다.
소독을 철저히 하고 기초적인 지식은 잊지 말아야 한다. 걸음 걸을 때 환부 피부가 늘었다 줄었다 하는 부위인지 꼼꼼히 확인하고 수술해야 한다는 것 등을 새삼 알게 되어 얽히고설킨 복잡한 생각이 말끔히 씻겼다.
미련을 떨칠 수 없었다. 산수를 넘은 지 벌써 4년이 훌쩍 넘었다. 그동안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히며 살아왔다.
그럼에도 농촌에는 산업동물을 취급하고 도시에는 반려동물을 취급하기 때문에 때로는 치료 분야가 서로 달라 낯설 기도 하였다.
도시에서 개원하고 있었더라면 수술을 좀 더 잘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부족한 부분은 주위에 물어볼 수 있고 도움을 청할 수도 있어 심리적으로 마음의 안정이 되어 차분히 수술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럼에도 수술이 잘 되어 만족함을 느낀다.
아마도 수술에 관한 이 글이 마지막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착잡하고 허전한 마음 이룰 때 없다. 며칠 전 수술받은 개에게 진정으로 부탁한다. 편안하고 좋은 환경에서 수술해 주지 못하고 고생스럽게 해주어 미안하게 생각한다. 죽는 날까지 건강히 잘 살아 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뉴욕 타임스지에 어느 기자가 쓴 ‘한국은 외롭다’에서 한국은 세계에서 출산율이 제일 낮다. 어디 가나 돌아서면 산부인과 병원은 보이지 않고 동물병원 간판만 보인다.
길거리에는 유모차보다 개모차가 더 많다. 솔직히 보는 것대로 써 놓은 것으로 보이지만, 흡사 비아냥거리며 쓴 것 같아 기분이 썩 좋지 않다. 유심히 들여다보면 기자가 쓴 글이 맞은 거 같기도 하다.
결혼하지 않고 개를 키우면서 혼자 사는 젊은이들을 볼 때 그런 생각이 든다. 하루 종일 누구와 대화할 사람 없어 외로이 사는 독거노인들에게 반려견은 더없는 좋은 친구가 되어 주기 때문에 개를 키우는 인구가 급속도로 많아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러한 여건으로 도시 동물병원은 세간에 이름이 오르내리는 건 당연하지만, 하루 종일 사람 하나 구경할 수 없는 농촌 병원은 빛 좋은 개살구처럼 겉만 번지르르하고 속은 텅 빈 강정과 같아 이름이 오르내리기는커녕 이름 마저 날려 버렸다. 전화가 걸려오면 오늘 가게 문 열어 놓았습니까? 한다.
가축병원이라는 이름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병원이라는 이름을 부르면 입이 삐뚤어 지는지 나의 존재감을 여지없이 짓밟아 버린다.
가게라고 이름을 부를 때 자신이 너무 처량해 보였다. 스스로 한탄하며 타는 속을 가라앉힌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이것밖에 안 되는가 비참하고 서럽기도 했다.
거기에 나이가 많고 수입도 없어 노령 연금을 신청해도 ‘사업자등록증’ 있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기가 차고 같잖은 세상을 원망하기도 했다.
농경 시대 때는 집집마다 소를 기르고 있어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보기가 힘들다. 돼지도 여러 마리 먹이고 개, 닭도 먹이고 했지만 역시나 힘들다.
소 없이는 농사를 지을 수 없을 만큼 소는 절대적으로 소중했다. 병아리에 예방주사하고 소 돼지 개 등에도 예방주사 놓으며 농촌 동물병원은 연일 바쁜 시간을 보냈다.
때로는 남은 시간을 이용하여 젊음을 불태우며 축산을 발전시켜 살기 좋은 농촌을 만들어 보자며 푸른 꿈을 꾸며 땀을 흘리기도 했다. 모든 것이 한바탕 꿈이었다. 이젠 농촌에는 소 한 마리도 없는 동네가 수두룩하다.
이에 따라 동물병원도 한 시대를 마감하고 폐업하는 경우가 점차 늘어가고 있는 형편이다.
분주했던 농촌에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고 썰렁한 집만 우두커니 동네를 지키고 있다.
적막 같은 조용한 길목에 땅거미 내려앉으면 무서움이 서서히 찾아든다.
석양이 산마루에 걸터앉아 온 산의 노을을 불태우고 있다. 불타는 노을이 꺼지면 내 마음의 희망이 사라진다. 희망이 사라지면 내 모든 흔적마저 잃어버린다. 살아봤자 기껏 몇 년 남은 인생 못다 한 거 다 이루어 놓고 남은 삶 풍요롭고 살기 좋은 세상 노랫가락에 맞춰 시조창 부르며 멋있게 살아보고 싶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