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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도리깨 양 꼴 매질

admin 기자 입력 2025.07.22 15:10 수정 2025.07.22 03:10

↑↑ 대구가축병원 권춘수 원장
ⓒ N군위신문
초등 4학년 때였다. 피난 후 생활이 안정되지 않아 어렵게 지내고 있었다. 기상관상대가 있었지만, 기상관상대란 말을 쉽게 들을 수 없었던 농경시대 때 사람들은 절기(節氣)에 따라 농사를 지었을 것으로 생각한다.

자연은 변함없이 언제나 완벽하다. 절기가 다가오면 자기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내밀고 새로운 풍경을 펼쳐낸다.

입춘(立春)하면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왔구나, 입하(立夏)하면 덥고 싱싱한 여름이 왔구나, 자연의 변화를 인정하면서 그대로 믿고 따라간다.

오늘이 망종이다. 이십사절기 중 아홉 번째 절기다. 가을에 파종했던 보리 마늘 등을 추수하는 날이다. 기후 변화의 영향으로 시절도 조금씩 변하는 것 같다.

망종이 지난 지 일주일이 지났음에도 고추, 가지, 오이 등 모종 파는 거리는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인다.

하지(夏至)가 다가오면 농촌은 일 철이 시작된다. 우리 집은 보리를 베고 말려서 마당에 쌓아 놓는다.

들에서 제일 끝에 우리 논이 있기 때문에 모를 일찍 심으려 해도 다른 집에 보리가 있어 못(가두리)에서 물을 내려 주지 않기 때문에 기다릴 수밖에 없다.

보리를 쌓아 놓지 말고, 타작부터 하면 좋을 텐데 아버지는 정해놓은 일처럼 꼭 그렇게 일을 처리하고 있어 더 이상 물어볼 수 없었다.

음력 오월과 유월은 「죽음의 달이다.」라고 한다. 누렇게 익은 보리를 베고 잘개타작한다. 잘개타작이 끝나면 보릿짚에 붙어있는 오다가다 붙어있는 낱알을 도리깨로 떨어내야 한다.

보리타작 끝나기 전에 모심기해야 한다. 모심기는 오일 아니면 일주일 걸린다. 모심기 끝나면 마늘 뽑고 밭에 무성하게 자란 김을 매야 한다. 땀이 비 오듯 한 더위에 모든 일을 한꺼번에 해야 한다고 생각해 본다. 앞이 캄캄하고 살아남을 힘이라곤 하나도 없다.

세월아 가거라 하고 천천히 하면 되겠지만 김매는 시기를 놓치면 김이 빨리 자라 곡식이 성장할 수 없어 죽게 된다. 죽을힘 다해 김을 매야 한다.

보리타작할 때면 보리타작에 얽힌 두 가지 사연이 있다. 하나는 『도리깨 양 꼴 매질』 다른 하나는 『잘개타작』이다. 『잘개타작』은 넓적한 돌을 비스듬히 세워놓고 베개만 한 보릿단을 새끼로 묶어서 들고 어깨너머로 돌을 힘껏 때려 낱알을 떨어지게 해서 거두는 방식이다.

『도리깨 양 꼴 매질』은 도리깨 열을 하늘 높이 올려서 공중에서 한 바퀴 회전하고 땅으로 내려치는 방법으로, 보통 도리깨질하는 것보다 힘이 서너 배 더 강하게 내리칠 수 있어 보릿단에 붙은 낱알을 한 참에 더 많이 떨어낼 수 있다. 이 기술을 배우고 싶어 도리깨 꼴매기 배우려고 도리깨 열 개 이상 부러뜨렸다.

도리깨 부러뜨릴 때마다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아버지는 가만히 계시지 않는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걸 가르쳐 줄 생각은 안 하시고 일하기 싫거든 하지 말라 벌럭 화만 내신다.

가만히 계셔도 기가 죽을 텐데 거기에 부아까지 내시니 죽을 맛이다. 그럼에도 배우고 싶은 열정을 꺾을 수 없었다. 올해 배우지 못하면 내년에 배울 수 없게 된다는 각오로 열심히 돌리고 때리고 했다. 고생 끝에 낙이라 하듯 결국 뜻을 이루고 화려하게 도리깨질을 잘했다.

일 철에 일꾼의 밥상은 보통 때와 달리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 일꾼 밥상에는 하얀 쌀밥 한 그릇 수북이, 내 밥그릇에는 보리밥이 더 많았다. 현대는 건강을 위해 보리밥을 쌀밥과 섞어서 먹는다고 하지만 어릴 때는 보리밥을 주식으로 해서 먹었다.

이날 이때까지 무병 무탈로 지내왔다는 것을 보고 보리쌀이 건강에 좋은 효과가 있다는 것으로 믿게 되었다. 나에게 이러한 밥을 먹여 놓고 일 시킨다고 투덜댈 수도 없었다.

군대 훈련소에서 훈련받을 때다. 군대는 잘살든 못살든 먹고 입고 잠자는 것은 모두 똑같다.
한 소대원이 자기는 보리밥이 깔끄러워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면서 피 엑스(PX)에 가서 빵을 사서 먹고 한다.

잘 사는 집 아들이구나! 소대원들은 부러워했다. 얼마나 버틸지 지켜보고 있다. 어느 날 돈 떨어졌던지 배고파 견딜 수 없었던지 보리밥 한 숟갈씩 떠먹기 시작한다.

소대원들은 이를 보고 한 마디씩 한다. 죽기는 싫은가 봐!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던 보리밥이 어찌 잘도 넘어간다. 훈련을 마칠 때쯤 눈을 부릅뜨고 정신없이 먹는 것을 보고 어려운 환경에 닥치면 못 먹는 거 없다.라는 사실을 새삼 알게 되었다.

천여 평 되는 보리밭을 다 베고 나면 하루이틀 쉴 수 있다는 희망이 한껏 부풀었다.
보리를 다 베고 논바닥에 깔아 놓았다. 싱싱하던 보릿대가 강렬한 햇볕에 훌렁훌렁해진다. 해가 서산으로 넘어갈 때쯤 시커먼 구름이 모여들기 시작한다.

갑자기 사방이 어두컴컴해진다. 아버지는 밤에 비가 올 것 같다. 하시면서 걱정하신다. 아니나 다를까? 한밤중 번갯불이 번쩍 치더니 캄캄한 밤이 대낮같이 환해졌다. 곧이어 따따따 거리는 소리가 천지를 울린다. 하늘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진다.

비는 잠시도 멈추지 않고 물 흐르듯 계속 쏟아붓는다. 날이 뿌옇게 밝아진다. 아버지는 걱정되어 삽 들고 들로 나가신다. 애써 깔아놓은 보리가 물 위에 배처럼 둥둥 떠다닌다.

물이 빠져나갈 곳이 없어, 보리가 한데 뒤엉켜 있다. 낫으로 한 가닥 두 가닥 뜯어낸다. 물에 빠져있는 보리를 건져서 방천에 얹어 놓았다. 다 옮기고 나니 온몸이 가려워 살펴보았다. 보리 옴에 올랐다. 국수 꼬랑댕이 불에 구워 놓은 것같이 울퉁불퉁했다.

어머니는 물에 불린 쌀을 맷돌에 갈아 온몸에 발라준다. 어머님의 정성으로 하룻밤 사이에 좋아졌다.

물에 잠긴 보리를 방천에서 며칠간 말렸다. 바싹 마른 보릿단을 집으로 가져와서 잘개타작한다. 나는 잘개타작으로 떨어져 나온 보리를 깔꾸리로 끌어내어 한곳으로 모아 도리깨로 두드린다. 잘개타작을 알뜰히 해도 보리 낱알이 다 떨어지지 않고 보릿짚에 붙어 있는 것도 있다. 한 톨도 남김없이 다 떨어내어야 한다.

잘개타작한 보릿짚을 한 마당 가득 깔아 놓았다. 점심 먹고 햇볕이 한 창 강할 때 내가 앞장서고 큰 일꾼 작은 일꾼은 내가 밀어준 보릿대를 두드리면서 따라오게 했다.

나는 도리깨를 양 꼴 매질 하면서 한 번은 왼쪽 다른 한 번은 오른쪽 번갈아 가면서 밀어주고 했다. 두 마당을 가뿐하게 했더니 칭찬에 인색한 아버지께서 웬일로 오늘 도리깨질하는 걸 보니 제법이구나 하고 칭찬해 주셨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한다.

『아부지요, 오늘 제가 도리깨질하는 것 잘 보셨죠? 잘하지요? 양 꼴 매질 하는 것도 보셨죠. 이제 제보고 도리깨질 못 한다고 머러 카지 마이소.』 아버지한테 의기양양하게 말씀드렸다. 아버지는 같잖기도 하고 기특해서인지 웃지 않으신 껄껄 웃음으로 오냐. 하시며 힘을 실어주신다.

어린 내 나이에 큰 일을 맡아 처리하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동네에서 제일 잘 한다는 소문이 날개를 달았다. 보리타작할 때가 되면 걱정하시던 아버지가 그 많은 보리를 일꾼과 거뜬히 처리해 내는 거를 보시고 나에게 맡기시고 자질구레한 일을 거더러 주셨다.

보리타작 끝내고 마늘 뽑을 준비 한다. 이때쯤 되면 대체로 장마가 시작된다. 구름 한 점 없는 하늘에 갑자기 집중 호우처럼 비가 쏟아지는 경우도 있다.

뽑아놓은 마늘이 비 맞으면 물렁물렁해서 버리게 된다. 그 때문에 비를 맞기 전에 뽑아서 보관을 잘해야 한다. 때론 봄 가뭄에 마늘이 굵지 않아 상품 가치가 없어 겨우내 지은 농사 헛지었다고 날씨를 탓하며 푸념을 쏟아 내기도 한다. 그렇다고 날씨에 원망을 쏟아낼 수 없다.

「농사가 잘되고 못되고 하는 것은 제 잘못도 있지만 하늘의 뜻」이라며 마음을 편안하게 가지기도 한다.

비도 맞지 않고 동글동글한 마늘이 헛간 천장에 꽉 매달려 있는 것을 보면 일할 맛이 난다.
보기 좋고 마음이 풍요롭지만, 먼지를 뒤덮어 쓰면서 일했던 것을 생각하면 농사짓는 사람들의 생활이 너무나 힘들고 비참하다.

희뿌연 먼지가 바람을 타고 온 사방으로 날아간다. 바람이 내게로 불어올 때면 땀 흘러내린 얼굴에 먼지가 덕지덕지 들어붙어 내 모습을 알아볼 수 없다.

뜨거운 햇볕 아래 흘린 농부들의 피땀은 노동의 대가다.라고 생각하면서 자위한다
노동은 체력이다. 체력이 없으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특히 손가락은 더하다. 산더미 같은 마늘을 하나하나 다듬어 가면서 작은 거 굵은 거를 가려낸다. 굵은 거는 굵은 대로 작은 것은 작은 대로 헛간에 매달아 놓는다.

마늘을 다 치우고 나면 손가락이 멍멍하고 허리가 활처럼 구부정해진다. 농사일이란 괴롭고 고단하지만, 일을 마쳤을 때 희열을 느끼며 보람된 하루를 보냈다는 것보다 더 좋을 수 없다.

이런 재미도 있다는 거를 알면서도 흙과 더불어 산다는 것이 고달프고 힘들다는 것이 안타깝다.

남들이 잘하고 있는 것을 보고 참지 못했던 나였다. 어떻게 하더라도 따라 해야 한다. 나의 성취욕은 누구도 말리지 못했다.

아버지가 도리깨질할 때 양 꼴
매질 하는 걸 보고 얼마나 하고 싶은 줄 몰랐다. 밤에 잠잘 때 꿈에도 보였다. 도리깨 부러뜨릴 때마다 아버지의 부화는 하늘을 찔렀다.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이 눈치 저 눈치 살펴보면서 억척같이 혼자 힘으로 해 냈다. 저의 근면성과 성취욕을 보시고 여태까지 화내시던 아버지가 오늘따라 나를 조용히 부르신다. 부드러운 음성으로 너를 나무랐던 것은 네가 좀 더 빨리 큰 일을 해낼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하시며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셨다.

울컥 울음이 솟아난다. 아버지의 깊은 뜻을 헤아리지 못하고 속상했던 것이 후회스러웠다.
아버지 방에서 걸어 나오면서 살아계시는 동안 잘 모시겠다고 다짐했다.

모심기하는 일이 마른논에서 일하는 것보다 수월한 줄 알았다. 어리다고 무논에서 일하는 것을 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힘든 줄 모르고 달려 들렸다.

온 힘이 다 빠져 지칠 대로 지쳤다. 그럼에도 아버지께서 도리깨질할 때 양 꼴 매질하는 것을 보시고 인정해 주셨을 때 힘이 솟아올라 처졌던 어깨가 절로 으쓱해진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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