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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 |
ⓒ N군위신문 |
옛날에는 아들 선호 사상이 뿌리 깊게 내려져 있었다.
오랜 세월 동안 유교 사상이 전해 내려오면서 아들은 족보에 올렸지만, 딸은 올리지 못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자기 대를 잇기 위해 아들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을 것으로 보인다.
풍습은 어느 나라에도 있다.
우리나라에도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있었다.
아들 낳으면 금기 새끼줄을 왼쪽으로 길게 꼬아서 고추와 숯덩이를 꽂아 삽작문 위에 걸어 놓았다. 딸이면 솔가지와 숯덩이 몇 개만 꽂아 삽짝 위에 걸어 놓았다. 이레 동안 외부 사람들의 출입을 금했다.
아들이면 시아버지의 발걸음은 가볍고 힘 있어 보였다. 시아버지가 시장에 가서 대장각 미역을 사서 오른쪽 어깨에 걸치고 들어온다. 며느리 사랑은 시아버지라는 속담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딸이면 시어머니가 왼쪽 어깨에 걸치고 들어왔다.
시어머니는 남에게 딸 낳았음을 보여준 것 대하여 스스로 모욕감에 기가 죽어 마음이 위축되었다. 시어머니는 딸을 무사히 낳았음에 감사해야 함에도 입을 부루퉁해서 힘없이 들어온다.
시어머니는 이를 며느리에게 화풀이하다시피 했다. 아무 잘못도 없었던 며느리는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며느리는 아들을 낳지 못했다는 것뿐인데 시어머니의 섭섭한 행동을 보고 할 말을 잃었다.
그럼에도 순간적으로 자신의 행위에 대하여 잘못을 인정하며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 아들이라 해서 별것 있겠느냐? 아들이면 『든든하다』. 이것이 전체인 것을 가지고 사람들은 밤을 새운다.
피난 후 이듬해 누나가 시집을 갔다. 시집이란 걸 모르고 떠나보낸 나는 누나가 왜 시집을 갔는지 모른다. 그런 나이에 아들이 있어야 가문에 대를 잇는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없었다.
유교 사상에서 살아온 나는 첫아들은 아버지 소유 전 재산을 물려받는다. 남동생들은 쥐꼬리만 한 밭뙈기 하나씩 받아서 가지고 부모 집을 떠난다. 딸자식은 숟가락도 하나 주지 않고 시집보낸다 것만 들어왔다.
무지와 편견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며 삶의 허무함을 느꼈다. 인간의 존엄과 존재 가치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그럼에도 아직도 나는 여기를 벗어나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병원 앞을 지날 때면 산모들의 고통을 호소하는 소리가 병원 밖까지 들린다.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고, 온몸이 오그라 들었다. 산모가 고통스럽게 아들을 낳으면 걱정이 사라지고 마음이 편할 것이다. 딸이면 괜스레 멋쩍고 미안함을 감추지 못한다.
아들이라고 해서 별다른 것 없지만, 내 삶 전부를 대신 살아 주는 것도 아닌데도 아들 낳기를 바란다.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우리 집안에는 아들이 귀하다. 아들에 대한 갈증은 어느 집보다도 심하다. 나에게도 아들 하나뿐이라서 빨리 손주를 보고 싶었다.
겨울 날씨는 변동이 심하다. 오다가다 내리던 눈발이 갑자기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쏟아진다.
점심나절 대구 아들한테서 며느리가 태동이 있다며 병원에 간다고 전화가 왔다. 떨리는 가슴 진정해서 병원에 도착했다.
산모들 방 앞에는 울긋불긋 아름다운 꽃들이 놓여있다. 아들 방 앞에는 가랑잎 하나 보이지 않는다. 딸을 낳았구나!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방에 들어간다. 며느리 눈가에 이슬이 맺혔다. “아버님! 섭섭하시죠?” 딸이면 어때? 건강하게 순산했으니 다행이다. 고생했다. 어깨를 토닥여 주며 마음을 달랬다.
그 후, 몇 해가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명절이면 하는 수 없이 인사차 다녀갔다.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마음을 진정시키려 했건만 내 눈치만 보는 것 같아 더 물어볼 수 없었다.
무슨 말 하려나 며느리 눈치만 보고 있었다.
끝내 말 한마디 없었다. 며느리의 답답한 심정은 시아버지가 해결해 주어야 한다.
빨리 돌려보낸 것이 상책이었다. 인사는 하는 둥 만 둥 정신 잃은 사람처럼 고개만 끄떡이고 내달아간다. 뒤 모습을 보면서 웃음이 절로 나온다.
며칠 전부터 아버지가 꿈에서 보인다. 조상 꿈은 좋은 꿈이라 하던데 무슨 좋은 꿈일까? 궁금하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낸다.
깊은 겨울, 어느 오후, 전화벨 소리가 요란스럽게 울린다. 한양에서 날아온 아들 전화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다급하게 전화한다. 아들 녀석이 전화하는 톤 소리만 들어도 행색을 금방 알 수 있다. 서둘지 않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들 녀석이 지난밤에 똥 단지 낳았다며 싱글벙글한다. 주님은 저의 간곡한 기도를 버리지 않으셨다. 내일 밤차로 올라가겠다 하고 전화를 끊었다.
새벽녘에 병원문을 살며시 열고 들어선다. 아들의 모습이 어느 때보다도 당당해 보였다. 지난날 수심에 차 있던 며느리도 어느새 눈가에 맺혔던 이슬이 사라지고 눈에서 광채가 빛났다.
나의 대를 잇어주는 첫 순간이었다. 어깨를 도닥여 주면서 참으로 고생이 많았다며 따뜻한 위로로 감싸주었다.
우리에게 “아름다운 이 순간은 영원할 것이다.” 팔을 뒷짐하고 팔자 걸음으로 어스렁거리며 동네 길목에서 왔다 갔다하면서 손주 녀석 보고픈 마음 간절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 온 집안 식구가 일치되는 순간이다. 동녘이 대낮같이 밝아도 이야기는 끊어질 줄 모른다.
아들이 있어야 대를 잇는다는 말이 예사로 들리지 않았다. 힘들게 족보를 새로이 만들었다. 그 속에 여자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이러다 누나 고모 모두 잃어버릴까? 걱정이다. 살아가면서 부족한 부분을 고쳐 가면서 살아가는 현대가 좋은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세상은 변한다. 한 식구이면서도 딸이라고 족보에 올리지 못했던 것을 생각하면 가슴 미어진다. 인구 소멸로 걱정되는데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이 내 곁에 있어 주면 좋겠다.
대구가축병원 원장 권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