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황성창 시인/수필가 |
| ⓒ N군위신문 |
오늘이 한여름의 더위가 끝나감을 상징하는 말복이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폭염이 불볕을 토하며 기승을 부렸다.
폭염은 태풍이나 폭우처럼 요란한 소리를 내지 않지만, 어떤 기상재해보다도 많은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다. 폭염은 누군가에게는 생명을 걸고 맞서 싸워야 하는 끔찍한 위협이다.
올여름 폭염은 단순한 계절 현상을 넘어 새로운 기후 변화가 현실로 자리 잡았다. 미국 기후 경제학자인 게르노트 바그너 컬럼비아대 교수는 “폭염은 생명을 앗아갈 뿐만 아니라 세계도 무너뜨린다”고 했다.
‘삼복더위에는 쇠뿔도 꼬부라든다’는 속담이 있다. 불가마처럼 펄펄 끓은 더위에는 굳은 쇠뿔조차도 금방 녹아 꼬부라진다는 극한 비유다. 폭염은 단순한 자연재해가 아니라 사회적 재난이다.
햇볕은 누구에게나 평등해 보이지만 삶의 무게는 공평해 보이지 않는다. 각종 TV 매체가 방영하는 뉴스를 보면 같은 폭염이라도 고령자와 독거노인, 노후화된 주거환경 등 특히 저소득층에 취약한 조건이 중첩될수록 폭염에 더 취약한 것으로 보여 몹시 안타까웠다.
지난달 중순부터 팔월 초까지 근 20여 일 넘도록 39~42.5도의 폭염은 모두에게 견디기 어려운 시련이었다.
폭염으로 옛적에 없던 폭염중대경보를 곳곳에 내렸다.
특히 영남권이 제철소 용광로처럼 벌겋게 달궈졌다. 올여름 더위를 기상청은 “생명을 위협할 수준의 더위”라고 했다. 지난 10일 기준 질병관리청 공식 통계상 “누적 온열 질환자는 3351명, 추정 사망자는 31명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보건업계에서는 폭염의 영향으로 기저 질환이 악화돼 사망한 사람은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기후 변화에서 비롯된 위기는 한반도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유럽에도 45도를 넘나드는 살인적인 더위는 과거와는 차원이 다른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불안한 생존에 직면하게 됐다.
게다가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에는 산불마저 번져 30여만 명이 대피하는 등 최악의 기후위기를 겪고 있다.
특히 스페인의 경우는 산불로 인한 국가비상사태까지 내려졌다. 남의 일 같지 않은 불안한 소식이다. 지구촌 곳곳이 강진으로, 산불로, 폭염으로 아우성들이다.
필자도 더위에 묻혀 책을 본다거나, 글쓰기에 한동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혹여 피서에 도움이 될 만한 자료가 있을까 뒤적이다 한시(漢詩)한 편을 찾았다. 옛 중국 금나라 때의 사람 원호문(元好問)이 지은 ‘소낙비 연잎을 때리고(驟雨打新荷)’라는 한시를 보았다. 7~8월 무더위를 뚫고 절정에 피어오른 큰 연꽃잎에 사정없이 때리는 굵은 소낙비를 시각적으로 연상하면서 읽으니 더위도 잠시 잊게 되고 마음도 조금은 정화되는 것 같아 아래에 옮겨본다.
“초록빛 나뭇잎 우거진 연못 가 정자/ 모두들 시원한 곳 찾아 모여드네/ 이제 막 꽃봉오리를 터트린 석류는 송이송이 우거진 붉은 비단 꽃 같아라/ 새끼 제비와 꾀꼬리 지저귀고 높은 버드나무 가지 위에서는 매미가 화답하네/ 퍼붓는 소낙비는 진주 구슬을 마구 쏟아내는 것처럼 갓 피어난 연꽃 봉오리를 사정없이 때리네”
-유산(遺山) 원호문(元好問)의 시 ’소낙비 연잎을 때리고‘
진흙 속에서 자란 신성하고 고귀한 연꽃은 밤에는 꽃잎을 오므렸다가 아침에 새롭게 꽃을 피운다. 연꽃의 이런 생리는 태양과 함께 피고 진다고 하여 태양 숭배 사상과 연결하여 소중하게 여긴다.
고대 이집트에서도 태양이 뜨면 꽃이 피고 태양이 지면 꽃잎을 접는 연꽃을 태양으로 보았다. 즉 만물의 생장과 휴식을 부활과 영생으로 본 것이다.
우리나라에 연꽃을 처음 들여온 사람은 조선시대의 문신 강희맹(姜希孟)이다.
그는 1464년 세조 때 진헌부사로 명나라에 다녀오면서 남경 전당지(錢塘池)에서 연꽃 씨앗을 채취하여 지금의 경기도 시흥 관곡지(官谷池)에 심었다.
그때의 종자 씨앗이 전국 곳곳에 연꽃단지로 가꿔져 관광객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그중 연꽃 축제로 이름난 곳은, 경남 산청 수선사, 주남저수지, 경기도 양평 세미원, 청도 유등연지, 충남 부여 궁남지 등이 연꽃 군락지로 유명하다.
올여름은 무척 덥다. 폭념은 내년에도, 후년에도 찾아올 것이다. 다산 정약용이 지은 한시(漢詩) ’소서팔사(消暑八事)‘에서 더위를 물리치는 여덟 가지 방법으로 연꽃 감상을 꼽고 있다.
다산은 “세상의 온갖 꽃들이 어찌 이 고운 연꽃을 질투하지 않겠느냐”며 연꽃 보기를 거듭 권했다. 필자도 연꽃밭을 찾아 우아한 연꽃을 감상해 볼 요량이다. 더위도 잊고 쌓였던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마음도 정화되지 않을까 싶다. 순결한 연꽃을 찾아보면서 요즘같이 덥고 열불 나는 세상에 얼음물 마신 듯 시원한 맛에 정신이라도 번쩍 들지 않을까 싶다.
황성창 시인/수필가
재부군위군향우회 자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