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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면안계1리(安溪里)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4.21 20:35 수정 0000.00.00 00:00

마을 중심부 안계댐에 수몰되고

마을 중심부 안계댐에 수몰되고
사골(절골) ‘안계사’ 터로 밝혀져

ⓒ 경주신문사

안계는 경주시 강동면 지역으로 우리나라 대표적인 전통민속마을인 양동마을의 안쪽(동북)에 위치한 마을이다. 북쪽은 다산리, 서쪽은 안강읍 노당리, 동쪽은 유금리와 포항시 연일읍 자명리에 맞닿아 있다.

마을의 중심을 이루었던 ‘심방골(승방골, 심동)’과 ‘구경’, ‘삽실’ 등 사실상 마을의 노른자위는 대부분 안계댐에 내어 주고, 그 상류에 있는 ‘사골’이 안계1리, 마을 대부분이 수몰되고 호숫가에 집 몇 채만 남은 ‘삽실’과 댐 서쪽 언저리 산기슭에 자리한 ‘초감’, ‘현풍’, ‘신안’이 안계2리를 이루고 있다.

안계는 마을 옆으로 흐르는 안락천(安樂川)을 따서 ‘안계(安溪)’라고 했다고 한다. 지난 1999년 사곡(절골)의 석조여래좌상이 있는 일대의 발굴에서 ‘안계사(安溪寺)’라는 명문이 새겨진 기와가 발견되어 이곳에 안계사라는 절이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신라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안계사로 미루어 볼 때 오래전부터 이미 ‘안계’라는 땅이름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안락천의 뜻을 따서 ‘안계’

ⓒ 경주신문사

안계1리를 가기위해 양동민속마을에 이르렀을 때 양동마을은 전기통신선로를 땅속으로 묻는 지중화공사로 마을길이 파헤쳐 졌다가 되 메운 채 울퉁불퉁한 흙길이었다. 양동마을에 올 때마다 전신주와 이리저리 어지럽게 허공을 가로지른 전기통신선로들이 마을풍광을 다 망친다고 생각했는데 말끔하게 지중화공사를 한다니 반가운 일이다.

양동마을을 가로질러 동쪽 고개를 오르면 안계마을을 다 삼키고도 배가 고픈 듯 입을 벌리고 있는 호수가 눈앞에 펼쳐진다. 포항제철을 비롯한 철강공단과 포항시에 안정적인 물 공급을 위해 지난 1971년에 건설한 안계댐이다. 이 댐을 오른쪽에 끼고 계속 들어가면 삽실마을이 있고, 더 들어가면 안계1리인 사골마을에 이른다. 마을 어귀에는 안계사 석조여래좌상이 마을의 수문장처럼 인자한 눈길로 길손을 반긴다. 사골은 안계댐 상류지역으로 나지막한 산들로 둘러싸인 높은 분지마을이다. 마을 곳곳에 피어난 청매홍매의 하얀 꽃과 산수유, 생강나무의 노란 꽃의 한껏 드러낸 자태가 곱다.

차라리 이주 했으면

이 마을은 25가구의 작은 마을이다. 주민수도 86명으로 남자 28명, 여자 58명이다. (온정마을 27명 포함)
ⓒ 경주신문사


벼농사와 고추, 콩을 재배하고 있고, 올해부터 마을 공동사업으로 미나리를 시범재배하고 있다. 가축은 상수원보호구역이라 제재를 받고 있어 한우 20두 정도 기르고 있다. 지대가 높다보니 논은 적고 밭이 많은 편이다. 상수원보호구역으로 가축사육이 어렵다보니 거름도 부족하고 따라서 각종 병충해 피해가 심해 농약을 더 많이 쳐야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나마 산돼지, 노루, 너구리, 비둘기 등 짐승들로 농작물 피해가 극심해 더 어렵다고 한다. 이에 주민들은 규제만 하지 말고 차라리 이주시켜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하늘에서 떨어진 천도복숭아
 
ⓒ 경주신문사 


사골 이곳에 절이 있었다고 하여 ‘절골’이라고 부르다가 한자로 표기하면서 ‘사곡(寺谷)’, ‘사골’이라 불렀다. 1999년 발굴로 이곳이 ‘안계사’였음이 확인되었다. 또 마을 앞 개천에 모래가 많아 ‘사곡(沙谷)’이라고 불렀다고 하는 이야기가 있으나 이것은 잘못된 표기로 보인다. 옛날에는 여주이씨 집성촌이었으나 지금은 8집 정도에 불과하다.

당목은 200여 년 된 소나무로 매봉산에서 흘러내리는 거랑 하류에 있다. 동제는 매년 입춘에 지낸다. (18가구)
ⓒ 경주신문사


청도밭골 옛날에 하늘에서 천도복숭아가 떨어져서 생긴 마을이라고 해서 ‘천도밭골’이라고도 한다. 절골과 사실상 한 마을을 이루고 있으나 동북쪽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다. (7가구)

구경(九卿) 진사가 9명 난 마을이라 ‘구경’이라고 했다. 삽실과 심방골의 중간에 있었던 마을로 안계댐에 수몰되었다.

심동(深洞) 옛날 이곳에 승방(僧房)이 있었다고 하여 ‘승방골’, ‘심방골’이라 불렀으며, 안계의 중심에 있다고 하여 ‘심동’이라고도 불렀다. 안계댐에 수몰되었다.

위엄 있는 원만한 불상
 
ⓒ 경주신문사 


석조 석가여래좌상(石造釋迦如來坐像) 이 마을 어귀에는 돌로 만든 석가여래좌상이 있다. 머리와 가슴, 팔, 손, 무릎 등에 부분적으로 깨어진 손상을 입었지만 대체로 상태가 좋은 편이다. 이 불상은 목주름 3개가 뚜렷하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낸 채 결가부좌를 하고 있으며, 왼손은 단전에 붙이고,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 아래로 내린 상태(항마촉지인)로 연화대좌에 앉아 있는 위엄이 저절로 베어나는 원만한 모습이다.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92호로 지정된 이 불상은 2002년에 발굴조사를 실시해 원형대로 복원하기 전까지는 좌대는 땅속에 묻혀 있었고, 불상은 자연석 돌 위에 모셔져 있었으며, 불상 머리에는 50여 년 전 주민들이 인근 도랑에서 옮겨온 탑 지붕돌을 올려놓아 마치 갓을 쓴 것처럼 하고 있었다. 천년 전 웅장했던 안계사의 위용을 웅변하듯 이 주변에서 발굴된 탑재들을 비롯한 석조유물들이 불상 부근에 진열되어 있다.

추모재(追慕齋) 월성손씨의 재사인데 현판 외엔 기문이 없어 언제 누가 무슨 연유로 지은 재사인지 알 길이 없다. 이외에도 이 마을에는 재사가 2채가 더 있지만 현판조차도 없는 상태라 기록할 수 없음이 안타깝다.

몽암정(蒙庵亭) 여주인(驪州人) 몽암(蒙庵) 이채(李埰)가 조선 숙종 때 절골에 세운 안계초당(安溪草堂)이었으나, 고종 때 장기현감으로 있던 그의 후손 이매구(李邁久)가 중건하면서 몽암정(蒙庵亭)으로 고쳤다. 몽암공은 회재(晦齎)선생의 현손으로 사마시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았다. 경주부사 민주면(閔周冕), 진사 김건준(金建準)과 함께 『동경잡기(東京雜記)』 3책을 편찬하였고, 문집으로 『몽암집(蒙庵集)』이 있다. 본래 마을 가운데 있던 것을 70여 년 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이곳에는 몽암집 목판본 14장이 보관되어 있었으나 지난해 10월에 모두 도둑맞았다.

청도재(靑桃齋) 월성손씨 우제공 후손들의 제사로 정면 4칸을 둥근기둥과 맞배지붕이다. 양쪽에 방을 배치하고 가운데 마루를 두는 방식으로 지어졌으며 4년 전에 목재와 기와를 수리하여 깔끔하게 단장한 상태다.

척기재 여강이씨 재사이다. 회재선생의 현손으로 증 사복시정(贈 司僕侍正)하신 분을 기려 1984년에 그 후손들이 사골에 세웠다. 기문은 강재(江齋) 김형진(金亨鎭)선생이 썼다. 정면 5칸의 맞배지붕이다.

명당이라 묘 많고 재실도 6개나

안계리 고분군(安溪里 古墳群) 구경리에 있었는데 일찍이 도굴되었으며 안계저수지 축조로 인해 대부분 수몰되고 일부가 발굴·조사되었다.

안계저수지(安溪貯水池) 안계리에 있는 큰못으로 안계못이라 하였는데, 포항지역에 생활용수와 포항제철 및 포항철강공단의 공업용수를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 안계천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었다. 1971년에 이 저수지를 만듦으로써 안계리 중심 마을인 심동·구경은 수몰되고, 삽실·사골은 일부가 수몰되었다.

매봉산 옛날 해일 때 산이 다 잠기고 매 한 마리가 앉을 만큼만 남아있었다고 해서 ‘매봉산’이라고 했다. 마을 동쪽에 있는 산이다.

솔모랑산 소나무가 많았던 산모랑이라고 해서 ‘솔모랑산’이라고 한다. 윗마을과 아랫마을의 경계지점에 있는 산이다.

평지산 산이 평평하게 평지처럼 생겼다.
두루봉 북쪽에 제일 높은 산봉우리로 위가 평평하다고 해서 붙인 이름이다.

서낭고개 사골에서 온정마을로 넘어가는 고개로 60년대에 길을 내면서 없어졌다. 서낭당이 있었던 고개로 큰 돌무더기가 최근까지 있었다고 한다.
예수구미 여우가 많이 나타났다고 해서 ‘예수구미’라고 한다.

해일로 물에 다 잠기고

감장골 물이 잠길 때 감하나 놓일 만큼만 남아있어서 ‘감장골’이라고 했다고 한다.
물레장골 물이 잠길 때 물레하나 남을 정도로 남아 있었다고 한다.
북녘골 마을 북쪽에 있는 골짜기라고 ‘북녘골’이라고 했다.
못골 안에 못이 있어 ‘못골’이라고 한다.
못안골 사곡지 못 안에 있는 골짜기
무첨바위 물이 시원하고 맛이 좋다. 문천(문지방, 문턱)처럼 깎아지른 듯이 낭떠러지가 된 바위로 폭포가 되어 있다.

온정마을 2006년 6월에 개원한 중증장애우를 위한 복지시설로 마을 동쪽 골짜기에 있다.
사곡지 일제시대 때 막은 못으로 청도밭골 안쪽 골짜기에 있다.

하수종말처리장 설치해야

상수도보호구역에 살기 때문에 지난해 낙동강수계에서 연간 1억원씩 지원받은 자금으로 수세식 화장실을 설치했다. 그 물이 안계댐으로 흘러들어 가기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다고 한다. 하수종말처리장을 설치했으면 한다.

마을의 절반은 상수도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신규주택 허가가 난다. 그런데 그 지역의 수계도 안계댐으로 흘러들어온다. 이 마을의 수계는 모두 안계댐으로 흘러드는데 마을 아래쪽 절반은 상수원보호구역이지만 그 위쪽 절반은 아니다. 아래쪽은 건축행위는 물론 증개축도 안 되지만 그 위쪽은 새로 집들을 짓고 있다. 따라서 길을 사이에 두고 땅값이 2배 차이가 난다. 한 마을에서 수계가 같은데도 불구하고 길 이쪽은 상수원보호구역, 저쪽은 아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주민들조차 이 부분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기준 없는 행정처분에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다.

지금도 집짓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미나리 비빔밥

이 마을 최고령자는 올해 86세 이춘원(육통어른)할아버지와 이정교(산대댁)할머니이다. 할머니는 먼저 보내고 혼자서 생활하고 계신다는 이 할아버지는 70대 초반으로 보일만큼 아주 건강하시다. 이 할머니는 눈이 많이 어두워 사람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였다. 이 마을 출신으로는 이성원(52 미국 LA)씨가 있다.
마을주민들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미나리밭에서는 마을주민들이 미나리 출하작업을 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로 만든 공동작업장에서 갓 베어낸 미나리를 삼겹살과 함께 구워 점심을 먹었다. 부드럽고 향기로운 미나리와 된장을 넣고 비벼먹은 점심 맛은 정말이지 기가 막혔다.
최원달 이장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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