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처럼
3월이면 학교는 신학기가 시작되고 입학하고 한 학년씩 등급이 된다. 우리말에 ‘어떤 일이나 행동을 처음으로 하거나 쉬었다가 다시 함’을 가리켜 ‘시작(始作)’이라한다. 무슨 일이던 시작한다는 것은 어렵고, 두렵고 신경이 쓰인다. 사람은 산다는 것조차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가는 끊임없는 도전이요 때로는 당황스럽다. 옛 선현들은 불안한 마음에 위안을 주고 시작하면 인내심을 가지고 끝을 보라는 뜻으로 시작이 반(半)이라고 하기도 했다. 우리가 시작을 준비하기 위해서 마음가짐도 가지고 스스로에게 약속도 하며 성공을 전제로 하여 각오와 맹세도 한다.
직장에 입사했을때도 상사들은 언제나 시작을 염두에 두어 시종일관(始終一貫)이라 하여 처음부터 끝까지 한결같이 마음과 행동을 함께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사업을 시작할때도 신중을 기하고 앞뒤를 잘 견주어 빈틈없는 기획속에 시작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래서 첫 단추를 잘 끼워야 한다고 하고 처음을 나중과 결부시켜 쓰는 말들이 더러있다. 그 중에 ‘세살적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는 뜻으로 어릴적 몸에 밴 버릇은 늙도록 고치기가 어렵다(三歲之習 至于八十)는 말이다. 처음으로 하는 언행이 늙어 죽을때까지 못고친다는 뜻과 사람이 잘못되므로해서 빚어지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한번 후천적으로 길들여진 잘못은 고치기 힘들다고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 밖에 ‘어릴때 굽은 길맛가지’, ‘제 버릇 개 줄까’, ‘낙숫물은 떨어지는데 또 떨어진다’, ‘들어서 죽 쑨 놈 나가도 죽 쑨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육상경기에 선수로 나간적이 있다. 100미터 경주는 출발이 참 중요하다. 출발의 감각은 기민성에 있지만 순발력이 뛰어나지 못하면 1등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대개 선수들의 실력이 불과 10여초만에 판가름이 나기 때문에 시작(출발)의 중요성은 대단하다. 그야말로 초(秒)를 다투는 경기에 100분의 1 까지 측정하고 요즘 일각(一刻)으로 판정된다.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선수의 마음은 초조하고 불안하며 전신에 전율을 느끼며 선상에 서서 결승점을 바라보는 마음은 긴장뿐이다. 그런 경험도 여러번 겪어보면 요령을 터득하게 되고 시작의 방법도 익히게 된다. 어르들이 아랫사람에게 ‘시작처럼’하라고 하는 것은 초심(初心)으로 돌아가 변치말고 꾸준하게 일을 처리해 줄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사람들의 마음은 간사하여 쉽게 변하고 약간의 경험에서 꾀를 부리는 변절된 마음이 다반사이기 때문이다.
살아가면서 어릴때의 순진성이 희석되고 마음도 성격도 퇴락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입은 은혜를 버리는 경우가 허다하며 이해와 이윤을 따지고 남을 흉보고 자기를 주장하는 나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
그러면은 안하무인(眼下無人)격이 되고 존경과 예의는 없어지고 어릴때 착한마음 순진성을 상실하게 된다.
어떻게 하면 처음때처럼 시작처럼 인간의 본성에서 살 수 없을까 사람마다 고민하고 깊은 성찰에 빠지지만 남이 사회가 그것을 붙들어 주지 아니한다고 많은 심리학자들은 대변한다.
세상 모든일이 시작때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남의 탓으로 돌리지 말고 내잘못을 회개하고 부단히 노력하지 않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그 일에는 종교적 신앙이 뒷받침되기도 한다.
시작때처럼 처음으로 돌아가자는 생각 그것은 정말 순전(純全)한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