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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사지 비로자나불상 유감

이채근 기자 입력 2007.04.22 16:09 수정 0000.00.00 00:00

문화재란 원래의 위치에

이거사지 비로자나불상 유감


문화재란 원래의 위치에 본래의 모습으로 보존되어야 그 역사적 문화적 예술적 가치가 더 높아진다고 한다.
ⓒ 경주신문사


그런 점에서 불국사 역 앞의 3층 석탑은 하루빨리 해체되어 남산 염불사지로 가고 일부는 도지동 이거사지로 옮겨져야 한다고 본다. 문화재 산책을 많이 다녀 보지만 성덕왕릉 북쪽 800여 미터 쯤에 있는 이거사지 만큼 많은 것을 생각게 하는 곳도 드물다. 일제시대 총독관저로 옮겨져 지금도 청와대 정원내 침류각이란 정자에 있다는 이거사지 출토 불상은 언제나 원래로 돌아 올지 기약이 없다.

절터에 남아있는 기단부나 옥개석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면 불국사 석가탑과 크기와 조각기법 그리고 제작 연대도 거의 비슷한 느낌이 들었다. 내친김에 차를 몰아 4천원의 입장료를 내고 불국사로 뛰어가 석가탑을 다시 보았다. 길이 재는 자를 준비하지 않아 기단부의 폭을 걸음걸이로 재어 보았더니 네 걸음 반이고, 1층 옥개석의 폭을 재어보았더니 내 손으로 대충 열한 뼘 길이가 되었다.

다시 차를 몰아 불국사역앞 삼거리 삼층석탑의 1층옥개석(이거사지에서 옮겨온 것)의 폭을 눈 짐작으로 지상으로 추정하여 손으로 재었더니 열 한 뼘 정도였고, 다시 도지동 이거사지로 가서 기단부의 폭을 재었더니 역시 내 걸음으로 네 걸음 반 정도 되었다.

이거사지 주변 마을 이름은 ‘대기실’이고, 이 부근을 일명 유득골들이라고 불린다. 마침 만난 노인 한 분에게 여쭈어 보았더니 옛날 성덕대왕이 행차할 때 이곳에서 쉬었다 가는 곳이라 하여 ‘대기실’ 즉 ‘쉬고 기다리는 마을’이라는 전설이 있다 한다. 임금님이 행차하는 수레가 이곳에 쉬었다 다시 움직였으니 수레를 움직이는 뜻의 ‘이거(移車)’란 뜻으로 이거사 란 절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되고, 불교에서 말하는 법륜의 수레를 움직인다는 뜻으로도 이거사의 사찰명을 해석할 수도 있다.

ⓒ 경주신문사

그런데 수 차례 가 보았지만 오늘은 노인에게 중요한 이여기를 들었다. 원래 이곳엔 3개의 불상이 있었는데, 하나는 조선총독관저로 옮겨져 현재 청와대에 있고, 하나는 일본인들이 근처에 묻어버렸다는 이야기와 또 하나는 현재의 이거사지 폐사지 동편에 모셔져 있다길래 깜짝놀라 흩어진 탑재의 동편 150여미터 산속으로 뛰어 갔더니 정말 통일신라시대의 것으로 어림짐작되는 목이없는 비로자나불상이 작은 시멘트 건물 속에 모셔져 있었다. 그런데 어느 분이 친절하게 시멘트로 두상을 대충 만들어 놓았는데 보기 흉측했다. 조심스럽게 사진을 수 차례 찍어서 사무실로 돌아와 나중에 시멘트로 붙인 얼굴부분을 포토샵으로 오려내었더니 정말 멋있고 아름다운 원래의 모습이 되살아 났다. 하루빨리 이 불상은 보존처리되어야 할 소중한 문화유산이 아닌가 ?

하루빨리 이거사지의 탑이 복원되고 청와대에 있는 불상도 돌려받고 또 일본인들이 묻었다는 불상도 발굴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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