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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이목’이 뭐길래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08.11.19 13:03 수정 2008.11.19 01:06

‘남의 이목’이 뭐길래

↑↑ 재부경북대구향우회 박종영 총무국장
ⓒ 군위신문
자녀들을 결혼 시키려면 어려움이 많다. 여러 가지로 다른 점이 있을 수 밖에 없는 두 집이 결합하는 일이라 불가피한 면이 없지 않다. 그 가운데 서도 가장 많이 호소하는 문제가 혼수와 결혼 절차다.

처음에는 번거롭고 무의미한 절차를 간략하게 하여 낭비를 줄이자고 양가가 별 이의 없이 동의하나 막상 착수하고 보면 곳곳에서 문제가 드러난다.
검소, 간략 등에 대한 기분과 가치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아무리 검소하다 해도 남의 이목이 있는데...’하며 한쪽이 어떤 것을 상향조정하면 다른 쪽은 싫어도 야무지게 재동을 걸지 못하다. 심하면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우리 애가 어때서...’ ‘우리 딸이 뭐가 아쉬워서...’등 자칫 불편해지기 쉬운 말이 나와도 애들 장래를 생각해서 참으며 과소비쪽으로 상승작용을 한다. 이래저래 불필요한 거품이 잔뜩 생겨, 본래 의도가 많이 퇴색하는 것이 결혼이다.

조선 영·정조 시대 당대 제일의 재정관리로 나중에 좌의정까지 지낸 호천(瓠泉) 정홍순(鄭弘淳). 1720∼1784)이 딸의 결혼을 앞두고 비용이 얼마면 되겠느냐고 부인에게 물었다. 부인은 혼수 8백냥, 잔치비용 4백냥 등 1천2백냥이 필요하다고 했다. 호천은 며칠 내로 준비하겠다고 했는데 기일이 지나도 혼수품목이 오지 않았다.

호천은 상인들에게 주문했는데 그렇다며 ‘정승이 이런 일로 상인들을 처벌할 수 는 없으니 평소 입던 옷을 깨끗이 빨아서 시집보내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내일이면 결혼식인데 잔치비용도 준비되지 않았다. 호천은 같은 논리로 ‘술과 안주를 조금만 마련해 혼례를 치루자’고 했다.

사위도 명문 재상의 자제였는데 장인이 너무 인색하고 고집 센 것을 마땅치 않게 여기다가 어느 날 아침 장인을 찾아뵈었다. 마침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오천은 사위에게 삿갓과 나막신을 주면서 말했다.

“자네는 자네 집에 가서 밥을 먹게 우리는 자네 밥을 준비하지 못했네. 자네 집에는 이미 지어놓은 밥이 있을 텐데 있는 밥을 놔두고 새로 지은 밥을 기다릴 필요가 없지 않는가” 사위는 그 뒤로 처가에 발길을 끊었다. 몇 년 뒤 장인이 불러도 가지 않았다. 호천이 사돈에게 사위와 딸을 좀 보내달라고 편지를 하자 마지 못해 처가에 갔다.

장인은 그들에게 가재도구가 잘 갖춰진 집 한 채를 보여주면서 말했다.
“결혼비용이 당시 1천2백냥이나 되는 거액이었는데 그 내용을 보니 대부분 ‘남의 이목’때문이었다. 그거야말로 무의미한 낭비가 아니겠느냐. 그래서 내가 그 돈으로 이자를 늘려 이 집을 짓소 시골에 농토도 사 두었다 이정도면 일생동안 굶주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3백년전 일이지만 단순한 옛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보다도 ‘남의 이목’이 더 위세를 떨치던
시절, 결혼을 둘러싼 거품의 실체를 정확히 파악하고 과감히 제거한 호천의 지혜와 용기가 여간 탁월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 곰곰 돼새기고 음미해야 할 일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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