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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우리 곁의 아름다운 효부열전(1편)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09.01.05 14:05 수정 2009.01.05 02:11

“고미 벌써 간냐?”

↑↑ 오현섭 송원초등학교 교감
ⓒ 군위신문
그네는 양조장을 운영하는 집의 6남매 막내딸로 태어나 온통 귀여움을 받고 자랐다. 여고 시절엔 학생 대대장과 선도부장을 역임하는 등 최고 베스트였다. 여고 졸업 후 곧 바로 직장에 취직하는 등 읍내에서는 일등 규수 감으로 손 꼽혔다. 출중한 총각들의 연정으로 읍내 삼거리까지 긴 줄이 이어졌다고 한다. 그 중 후배 학생의 짝사랑을 받았고, 끝내 6년을 기다려 준 연하 총각의 청혼을 받아들였다. 26살에 삼형제의 막내 집 아들인 지금의 남편을 만나 시집살이 겪으며 보낸 세월이 낼 모레면 쉰을 바라보게 된다고 한다.

신접살림을 시댁의 건너편 방에 차렸고 그 후 십여 년을 시부모를 모시면서 함께 살았다. 천성이 서글서글하고 곱고 고운데다 붙임성 좋은 그네는 저녁마다 시부모님의 발을 주물러 드리는 등 효성이 극진하였다. 시아버지는 그런 막내며느리를 늘 상 고미(곰이)라고 부르며 내리 사랑으로 끔찍하게도 귀여워했다. 그네가 발을 주물러 드리면 어느새 잠이 들곤 했었다. 잠든 줄 알고 살며시 건너 방으로 건너갈라 치면 아버님은 어느 새 “고미 벌써 간냐(갔는냐)?”하고 나지막하게 어머님께 말하곤 했다. 시아버지는 외출했다가 돌아올 때면 빈손으로 오지 않고 먹을거리를 가져와서는 몰래 며느리의 방 앞에 살며시 챙겨 주곤 했다. 옥수수라도 얻어 오시면 “이거, 고미 먹그래이” 하면서 방문 앞에 놓아 주던 시아버님의 그리움이 한없다고 한다.

그 후 시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까지 병수발을 했으며, 똥오줌도 가려 받는 등 극진한 보살핌을 했다. 항상 타고난 천성으로 손발을 주물러 드렸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스포츠 맛사지사 못잖은 실력을 쌓게 되었다고 한다. 가끔 이웃 사람들이 체하거나 아플 때 맥을 짚고 주물러서 소화 장애도 잘 고치는 명의(?)로 직장 동료들의 사랑을 받기도 한다. 그래서 손아귀 힘도 넘친다고 하면서 손을 한번 불끈 쥐어보기도 한다. 작지만 억센 힘이 가득하다. 시아버님이 돌아가신지 10년 세월이 지나도 그리움은 여전하다고 한다. 살아생전에 어느 자식, 며느리가 효자 효부 아니랴마는 시아버지의 똥오줌 가려 받은 며느리가 우리 곁에 흔치 않은 게 현실이다. “고미 벌써 간냐?”하고 잔정을 주시던 음성이 지금도 쟁 하게 들려오는 듯 하다는 그네의 눈시울엔 이슬이 돈다.

여느 가정 마냥 그네도 알콩 달콩 남매를 키우면서 매사 긍정적으로 삶을 이어왔다. 자칭 바르게살기 본부장 쯤 된다고 한다. 삶의 굴곡을 되짚어 봐도 그네 말마따나 바르게살기 본부장으로 불러도 흠이 될 것 같잖다. 요즈음 시부모의 똥오줌 병 수발하는 일이 과연 흔한 일이던가, 더구나 시아버지라 생각해 보면 존경과 흠모를 받을 만 하다. 그래서 우리 곁의 평범한 촌부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로 거듭 날 수 있음에 주저하지 않는다.

6남매 막내딸 최고의 귀염둥이로 자란 그네의 이야기를 들을라치면 못다 한 정에 살 부대낀 그리움이 정곡을 찔러 눈물 맺혀 마감하기 어렵다. 어찌 보면 참 미련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정말 따뜻한 미담 사례로 꼽아도 지나치지 않다. 지금은 머잖은 읍내서 칠순 훨씬 넘긴 시어머님이 손윗동서와 함께 살고 있다고 한다.

“지금도 자주 시어른 집에 가나요?” 넌짓 말을 건넸다.
“자주 못가요. 사는 게 바빠서 가지 못해 늘 미안함에 전화는 가끔 드리지만…….”
더 이상 물어 무삼 하랴.
친정 피붙이들은 서울 울산 부산 대구 등지로 모두 흩어져 살고 있다. 가끔 위로 언니가 “니는 착하게 살아 복 받을 끼라. 지금 아니라도, 언젠가는 그럴 끼구만”한다면서 배시시 웃는다. 지난 세월을 더듬는 그네의 모습에 한없는 정겨움이 묻어난다. 가장 가슴 아픈 일은 교직에 근무하다 요절한 친정 오빠 이야기였다. 오빠의 귀여움도 독차지 했는데……. 가끔 그 조카들을 보살펴 주고 정을 나누고 있다고 한다. 한없이 정을 줄줄만 알지 되받지 않으려는 듯이 보였다. 이런 그네의 모습을 보고 억척 삶을 즐겁게 산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삶의 여울에서 오아시스 같은 내일을 견뎌내는 마음을 보게 된다.

이런 저런 걱정거리 없는 집이 어디 있으랴마는 긍정적인 삶의 단면을 우리 곁에서 다정한 이웃으로 보게 되는 듯 하다. 마치 큰 누나 팔 베고 이야기 듣고픈 포근함이 내린다. 올 여름 유난히 더운 날 삼계탕 집에 들렀다가 반가운 정으로 값도 셈하지 못했다. 밝고 환한 미소와 함께 긍정적으로 삶을 보는 자세가 너무도 아름답다. 나 같이 속 좁은 밴댕이 같은 맘으로야 그네의 반듯한 삶의 정연함에 고개 숙여질 따름이다.
“고미 벌써 간냐?”

쟁 하게 들려오는 말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 우리 곁의 따쓰한 마음이 느껴지는 작은 귀감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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