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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우리 곁의 아름다운 효부열전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09.02.10 10:02 수정 2009.02.10 10:09

“셈 연습한 학원비 낸 셈이죠” (2편)

↑↑ 송원초등학교 오현섭 교감선생님
ⓒ 군위신문
그네는 작은 식당을 하면서 자폐증을 앓고 있는 막내를 데리고 늙으신 시어머님을 모시고 있다. 방 두개에 시어머님을 모시면서 해장국이랑, 추어탕 등 닥치는 대로 일손을 한다. 주변 아파트 건설업체 인부들의 점심이랑 새참을 하여 주면서 조금씩 하루 벌이를 한다. 큰 아들과 딸은 서울에 가서 조그만 사업을 한다. 벤처 사업 창업을 한다면서 가져가기만 했지 한 번도 돈을 벌었다고 어미한테 준 적이 없다고 한다. 그게 벌써 십 여 년이 넘는다.

제 먹기 살기도 어렵다보니 마흔이 다된 큰 놈은 아직 장가도 들지 않고 있다. 막내딸은 서울의 좋은 대학을 졸업했지만 변변한 직장도 없이 오빠 일을 거들고 있었다. 며칠 전에 낭보를 들었다. 막내 딸이 경기도와 서울, 두 군데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고 한다. 착한 어미의 정성이 있었기에 딸에게 복을 주었다고 혼자 생각을 했다.

그네 집 사정은 나와 고향이라 속속들이 알고 지낸다. 당시 대구의 K여고를 나온 수재다. 얼마 후 중매로 시골의 제법 부잣집으로 시집을 갔다. 자식을 셋이나 낳았다. 남편은 당시 잘 나가는 직장을 나와 개인 사업을 했다.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런데 돈을 좀 벌자 외도를 시작했다. 30여 년 이상 부모를 버리고 객지로 떠돌기만 했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그 후로 그네는 시부모님을 모시고 온갖 일을 하면서 3남매를 키웠다.

그런 충격으로 둘째 아들은 자폐증에 걸렸다. 평생을 어미가 돌봐야 할 상태라 싶어서 이 병원 저 병원도 다녀보고 온갖 좋다는 민간요법과 치료도 했다. 절에도 다녀보고 교회에도 다녀보았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 언제 어미 곁을 떠나면 저 혼자 먹고 살 수 있도록 해주려고 하는 어미의 일념뿐으로 오늘을 살고 있을 뿐이다. 남편의 외도로 평생을 고생길로 들어설 줄 어찌 알랴마는 한번도 원망하지 않고 기다리고 기다리며 청춘을 보냈다.

자식들 바라지로 많던 재산도 다 까먹고 겨우 집 한 칸만 남았다. 그리고 온갖 일을 하면서 시부모님을 모시고 자식들 학비를 벌어야 했다. 처음에는 레스토랑도 경영해보고 노래방도 운영해 보았다. 본디 착한 천성이라 남에게 퍼주는 일은 좋아했지 돈을 벌 줄 몰랐다. 그러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집을 개조해 조그만 식당을 차렸다. 주변의 아파트 재개발로 공사 인부들의 점심과 새참을 해주기 시작했다. 혼자 하는 일이라 벅차기만 했다.

아들 녀석이 인부들의 외상 점심 값의 장부를 적는다고 했지만 늘 틀리게 적고 또 잊어버리곤 했다. 그래서 제대로 돈도 받지 못하고 헛장사를 한 적도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럴 때면 그네는 아들의 “셈 연습하는 학원비 낸 셈치지” 하면서 원망도 미움도 없이 살았다. 그냥 편한 마음을 가진다고 했다. 말은 그렇지만 그 속이야 얼마나 타고 안스러웠으랴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그네의 시부모님을 모신 삶을 돌아보면 처절하기만 하다. 지난 해 여름 그네 집을 찾아 화장실 물통이랑 수도 시설을 고쳐 준 적이 있다. 시어머님을 안방에 모신 채 아들과 장사하는 모습에 눈물이 그렁하다. 틈나면 시어어니 병 수발과 잔병을 감당하면서 이 병원 저병원도 모셔 다니면서 고생을 하는 그네의 모습을 보았다. 떠난 사람 생각하면 한없는 원망 가득하랴만 그냥 순종으로 평생을 헌신하는 그네의 모습은 꽃보다 아름답다는 사람의 모습이 아닐 수 없다.

효부 며느리의 정성을 알았는지 착한 며느리에게 짐이라도 덜어 주려는 생각으로 올 봄 시어머니는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는 자는 둥 하면서 조용히 저 세상으로 떠났다.
그네의 한 평생을 우리 곁의 평범한 아름다운 효부이야기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까닭은 무엇일까 하고 되돌아본다. 어찌 그네의 삶을 미련하다고만 할 것인가.

착하고 티없이 맑게 살아가는 아름다운 이야기로 감정이 메말라가는 우리 이웃의 정겨운 이야기로 감동을 주고도 남는다. 험한 세상살이에 무의미하게 살아가는 우리들 곁에 남아있는 소박한 효부열전의 작은 귀감이라 할 수 있어 마음이 흐뭇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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