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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향우소식

하달호 작가 「한국문인』 신인문학상 당선작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09.03.02 17:40 수정 2009.03.02 05:40

촌지寸志 외 1편

예나 지금이나 권력의 주변에는 검은돈의 거래가 비밀리에 이루어지고 있다. 요즈음 전직 대통령 친인척비리가 신문이나 방송에 연일 크게 보도되어 국민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다.
이들 비리의 핵심에는 ‘뇌물’이 자리 잡고 있다.
처음에는 촌지, 사례금, 떡값 등으로 포장되기도 하지만 뇌물의 크기도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로 커지고 들통이 나는 날이면, 폐가망신, 철창신세를 면치 못하고 심지어는 목숨을 끊기도 한다. 대기업 오너(Owner)들은 비자금을 조성하며 로비를 통한 검은 거래로 지탄을 받기도 한다.

이권을 쟁취하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정·관계 실권자들에게 은밀히 건네는 부적절한 금품을 ‘뇌물’이라고 정의한다면, 아주 적은 순수한 의미의 아무탈도 있을 수 없는 정이담긴 부담 없는 금품을 ‘떡값’혹은 ‘촌지’, ‘사례금’이라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부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거래상의 이익이나 인사상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실권자들에게 줄을 서고 은밀히 뇌물성의 금품을 상납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사람이 사는 사회에서는 있어 온 일이기도 하다.

떡값이나 촌지문제는 크든 작든 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관련됨 경험이 있고 앞으로도 관련될 수도 있어 나만 깨끗하다고 주장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다.
이 문제와 관련지어 ‘촌지寸志’라는 말이 생각난다. 국어사전에는 촌지라는 말이 촌심, 촌성과 함께 ‘속으로 품은 작은 뜻’, ‘자그마한 뜻을 나타내는 작은 선물’로 설명되어 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촌지의 순수한 의미보다는 금품의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이 또한 요즈음의 떡값과 같은 의미로 쓰여진 것 같다.

내게도 촌지에 얽힌 사연이 있다. 이사를 여러 군데 다니면서도 조상들의 손때가 묻은 가재도구 몇 가지는 버릴 수가 없어서 지금 사는 곳까지 가져왔다. 그 중에 할어버지께서 애지중지 하시던 서책 상자가 있는데 그 상자에 담긴 한 권의 책 속에 ‘촌지寸志’라고 쓰인 흰 봉투 하나가 끼어 있었다.

봉투 속의 내용물을 보니 은행에서 쓰던 사무용지에 ‘할아버지, 생신을 축하드리며 만수무강을 기원 드립니다. 손자 달호 드림 이란 글이 적혀 있었다. 아마도 1969년 초, 군대에서 제대를 하고 은행에 복직을 하여 대구에 근무할 때였던 것 같다. 시골 할아버지 생신 당일은 근무 때문에 찾아 뵐 수 없어서 생신 며칠 전 일요일에 가면서 정성을 담은 글과 신권지폐로 5,000원을 넣고 겉봉에는 ‘촌지’라고 쓴 것은 아무래도 격에 맞지 않은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왜 그 봉투를 버리지 않고 책갈피 속에 넣어 두셨을까? 봉투 속에 든 돈으로는 동리 사람들에게 막걸리 잔치라도 벌이셨을까? 당신 손자가 이렇게 많은 돈을 주는 효손(孝孫)이라고 동네방내에 자랑이라도 하신 것은 아닐까. 어머니에게 다시 그 돈을 주시면서 내게 보약이라도 지어 먹이라고 하시지나 않을까. 별의별 상상을 다해 보았다.

최근에 ‘촌지寸志’라는 글이 그 봉투에 그렇게 써도 되는 적합한 문자인지 어느 학식이 많은 분께 여쭈어 보았더니 그것은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줄 때 그렇게 쓰는 것이 적합한 글이라고 하여 얼마나 얼굴이 화끈거리고 당황스러웠는지 모른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유식한 척 짧은 상식으로 우(愚)를 범한 내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도 이렇게 잘못 사용한 말과 글이 또 얼마나 많았을까.

그 당시 할아버지는 손자인 나에게 이때는 이렇게 쓰는 거라고 왜 가르쳐 주시지 않았을까. 할아버지도 그 당시 그 글이 겸손을 내포한 겸양어로 알았을지도 모른다. 뇌물의 의미를 간직한 요즈음의 떡값이나 촌지도 그 옛날에는 인간미 풍기는 격식 있는 말로 쓰기도 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할아버지께 드린 촌지 봉투! 사소한 실수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나에게는 많은 생각과 깨우침을 준 기억이 되었다.

최근 미국 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 경제를 공황으로 몰아넣고 은행과 기업의 도·파산 등으로 대규모 실업과 마이너스 경제 성장을 예고하는 심각한 생황이지만, 최근의 보도에 의하면 세밑 구세군 자선냄비에는 전년도보다 많은 수의 사람이 온정을 쏟고 있고, 불우이웃돕기 성금을 내는 사람 수가 훨씬 많아지고 금액도 크게 증가하고 있다니, 너무나 희망적인 현상이다.
앞으로 닥칠 불황의 한파 속에서도 온정이 담긴 촌지 떡값이 넘쳐나는 방송과 신문을 날마다 보고 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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