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마른가지에 잎마저 떨어지니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09.03.18 11:43 수정 2009.03.18 11:45

마른가지에 잎마저 떨어지니

↑↑ 재부군위군향우회
ⓒ 군위신문
“니, 인자 우짤래?” 요즘 나를 아끼는 친구들이 내게 하는 말이다. “너 이제 어떡할래”라는 이 말에 나는 아무 할말이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니 머 할래? 계속 그래 있을 꺼가?” 하던 말이 이렇게 달라진데 약간은 서글픔을 가질뿐, 대꾸할 말이 없다.
‘머 할래?’는 무엇을 하겠느냐는 말이고 ‘우짤래?’는 어떻게 하겠느냐?’는 말이다. 무엇(What)을 하려느냐는 할 일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겠고, 어찌할래(How)는 할 일이 있는데 그 일을 추진하는 방법을 일컫는 뜻일 게다. 그런데 친구들이 내게 “인자 우짤래?”하는 말 속에는 What과 How가 포함된 말이다. 무엇인가 네 일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걱정 어린 말이다.

젊은 날에는 ‘무엇할까’를 고민해 왔다. 이건 나만의 일이 아닐 것이다. 누구나 젊고 기운찬 날에는 앞으로 무얼 할까에 고뇌의 나날을 보내기 마련이지 않은가. 무한한 가능성이 펼쳐 있고 무얼 해도 해낼 힘이 있는 때이니까 당연한 심사이지 않은가.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다고 느껴질 때, 그때는 ‘무엇을 할까’보다 ‘어떻게 할까’를 더 생각하게 되는 게 인지상정이다. 무엇을 하겠다고 작심하고 일을 벌이고 엎치락뒤치락 그 일에 매달려 세월을 보내다 보면 어느새 살아갈 날이 살아온 날보다 적어지는 시기에 이른다. 그때쯤에는 벌여 놓은 일들을 수습하는 시기여서 ‘무엇’보다 ‘어떻게’에 더 마음을 써야 한다. 간단히 말하면 삶의 마무리를 하는 데는 ‘무엇’보다 ‘어떻게’를 더 챙겨야 한다는 뜻이다.

‘어떻게’에 신경 쓸 시기에 ‘무엇’에 신경 쓴다는 사실은 부러운 일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서글픈 일이기도 하다. 서글프다는 것은 여태껏 ‘무엇’을 두고 몸과 마음을 다해 일하지 못했다는 반증이기 때문이다. 한 삶을 살면서 ‘무엇’에 치열한 일생을 살았다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시기엔 ‘어떻게’로 마무리에 마음 써야 하겠기에 말이다.

내 주변엔 여생의 마무리를 잘하기 위해 마음쓰는 사람들이 많다. 새 일을 벌이기도 하고 벌여 놓은 일들을 정리하기도 한다. 이런때, 이런분들의 일은 What과 How의 개념이 젊은 날의 What과 How와는 그 격차가 하늘과 땅만큼 다르다고 해야 할것이다.
이런 경우엔 What이 How 이고 How가 곧 What이기에 그렇다는 말이다.
짧게 말해 보자, ‘죽을 때까지 이 걸음’이냐 아니면 ‘이제 모든 걸 접자’냐로 귀결된다고 하겠다. 한평생을 오로지 ‘이 한 걸음’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는 ‘죽을 때까지 이 걸음으로’가 적절하겠다. 그러나 그러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이제라도 ‘무엇을 어떻게’가 고민되지 않을 수 없을거다.

남 말할게 아니라 정작 내게 친구들이 물어온 ‘니 우쩔래?’에 대한 대답을 내놓아야겠는데 그게 ‘글쎄’다. 무언가 궁량이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도 이럴까 저럴까 선택을 하지 못해서다. 그러니 아무 할 말이 없을밖에는 그저 남들 하듯이 하면 되지 않겠나 싶은데 그마저 선뜻 결정이 나지 않는다. 무엇을 찾아 나아갈 거냐 이쯤에서 접고 물러날 것이냐의 선택이 어렵다는 말이다.

이럴때 쓰라고 ‘오라는 데는 없는데 갈데는 많다’는 말이 있나 보다. 아직도 하고 싶은일, 가고 싶은 곳이 많다. 욕심이라고 나무람을 받아도 당연지사로 받아들일 생각이다. 사실이 그러하니까. 그러나 나 혼자 마음먹은대로 할 수 없고 또 허락되지도 않는 게 요즘의 내 꼴이다.
결국 결단의 용기가 없어서 그렇다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 되겠다. 살면서 수시로 선택을 놓고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게 우리네 삶의 행태다.

‘세상사 한이 없고(此事無限) 도모하는 일이 끝없다(彼謀無際)’는 말을 새삼 곱씹는다.
자, 이젠 결택(決擇)을 해야 한다, 숲에서 배우기로 했다. 숲은 내게 이렇게 일러주고 있다. ‘수조엽락(樹凋葉落)에 체로금풍(體露金風)’이라고 나무가 마르고 잎이 다 떨어지면 본체가 여실이 드러난다고.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