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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완수 교수의 적라(赤羅) 이야기 - 연재(2)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09.03.18 11:52 수정 2009.03.18 12:01

(2)군위에도 나라가 있었나?

↑↑ 향토 사학자
ⓒ 군위신문
지금까지 우리 역사학계에서는 고대 군위에는 진한 12국의 하나인 여담국(如湛國)이 있었다고 비정(比定)하여 왔다.
이 여담국은 중국 서진(西晉)의 역사가인 진수(陣壽: AD233~297)의 「삼국지」권30 「위서(오환선비)동이전」에 소개되어 있는 한반도 동남부의 진한(辰韓) 12개국 중의 하나이다.

진한은 서기전 1세기 전반부터 서기 300년 무렵까지 주로 낙동강 동쪽 경상도 지역에 형성되어있던 소국(읍락국가: 거수국)들의 연맹체를 말한다. 이들 나라들은 처음에는 경제적으로 모였으나 점점 정치적 성격으로 바뀌어 나중에는 연맹체를 형성하였다. 이 가운데 사로국(신라)이 3세기부터 진한 12개국의 맹주가 되었다.

마한, 진한, 변한의 삼한에 있었다는 소국들의 명칭은「삼국지」의 저자인 진수가 당시의 낙랑군과 대방군에 관련된 행정가들이 제공한 견문록(이 책은 237년에서 239년 이후 작성되었다고 한다)등을 참고로 삼아서 저술한 것으로 후세의 사가들은 보고 있다.
진수가 이 책을 저술한 시기는 그가 저작랑직(著作郞職; 280~289)에 있었던 10년 동안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러한 소국들의 명칭은 3세기까지 한반도 남부에 있었던 소국들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 <그림>기원전후 이 지역에 있었다고 여겨지는 소국들
ⓒ 군위신문
단지 후세의 사가들이 이들 나라의 위치를 비정하는데 큰 어려움이 있어 지금까지 이들 소국의 위치가 확실하지 않은 곳이 많이 남아있다. 여담국도 그 중의 한 나라에 속한다.
제일 먼저 여담국을 군위라고 비정한 사람은 국사학자 이병도였으며 그 뒤를 이어 정인보, 천관우, 이형우 등도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들은 이병도와는 다른 여담국의 강역을 설정하고 있다. 단지 이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한 것은 이병도만의 탁견(卓見)이라고 평가하고 있는 음상사(音相似)법이다.

이병도는 군위의 옛 이름이 여두멱(如豆覓)인 것에 착안하여 여두멱이 여담으로 바뀌는 과정을 설명하였다. 즉 ‘두멱’이라는 한자(漢字)의 반절음(反切音)이 ‘담’이 되므로 (여-)두멱과 (여)담은 같은 글자라고 취급한 것이다.
따라서 군위(군위읍)의 지명은 ①여두멱(邑落)� ②여담국(國)� ③노동멱(縣)� ④군위(郡)의 순서로 변하여 왔다고 생각된다.
이러한 순서는 여두멱, 또는 여담국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을 서기전 1세기부터 767년의 ‘군위’라는 한자식 명칭을 얻을 때까지 거쳐 간 군위의 읍호(邑號)변화다.
물론 군위의 고호(古號)에 여두멱(「삼국사기」, ‘북한본’에서는 如臣覓이라고 한다) 외에 노동멱이라는 명칭도 있는데 양주동은 이들을 군위의 각각 다른 지역이라고 주장하는 반면에 이병도, 정인보, 천관우, 이형우 들은 같은 지역이라는 인식을 가진 듯하다.

어떻든 현재까지 여담국의 군위 비정설에 대하여 별다른 반론이 없어서인지 모르겠지만 아직까지는 그대로 인정하는 경향에 있다.
최근 구미 인동의 황상동고분의 발굴로 군미국(軍彌國)의 실체가 확인되고 있다. 이제까지 지역 역사학계에서는 구미의 옛 이름이 ‘군미’라는 인식을 가져 구미의 고대 소국이 군미국이라고 비정하여 왔는데 이번의 고분 발굴로 더욱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인동은 신라시대 선주(현재의 선산이다)에 속하여 군위와 같은 영현(領縣)으로 지리적으로 볼 때 인근의 지역이다.

‘군위’와 ‘군미’의 소리가 유사하고 또 군미국이 숭선군(일선군)의 옛 땅에 있었던 소국이므로 군위지역에도 어떤 형태로든지 소국(小國)이 있었을 확률은 매우 높다. 단지 어떤 이름의 나라가 있었는지가 오늘날의 연구대상이 될 것이다. 앞으로 이 분야에 대한 고고학적 유물발굴과 함께 고대 소국설에 대한 깊이 있는 토론과 분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현재 군위군 홈페이지에는 고대에 여담국과 소등붕국(小登崩國; 등붕국)이 있었다고 표기하고 있으며 <군위 마을지>에서는 두모국(斗毛國)과 서경국(西京國)의 설화를 소개하고 있다.

현재도 도들머리산의 산 이름과 토기(吐器)류, 그리고 두모뜰(두못들)에서 두모국의 전설이 묻어 나오고 있다고 한다.
현재 ‘두모’라는 이름은 한반도 여러 곳에 지명으로 남아있는데 한자로 頭毛, 斗毛, 斗母, 豆毛라고 표기하며 모두 탁수(   
水)계 지명으로 소보의 두모는 斗毛이다.
이러한 탁수( 水)계 지명은 김성호(金聖昊)에 의하여 진한인(辰韓人)들만이 사용하였던 지표지명(指標地名)이라고 정의되었다.
그리고 등붕국(登崩國)과 두모국(斗毛國)이라는 국명은 동일한 나라의 이름일 확률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한자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의 당시 음(音)이 나중에 한자로 음차(音借)되는 과정에서 기록한 글자의 혼돈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등붕’과 ‘두모’의 고대 소리는 같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자전(字典)에서 보면 등(登)과 붕(崩)의 뜻은 땅이 올라가고 내려 꺼진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것은 지진, 화산 등의 지각변동(地殼變動)에 의하여 등붕국의 역사가 땅속으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지질학적으로 경상누층군(慶尙累層群)으로 쌓인 경상 남, 북도의 경상분지(慶尙盆地)는 우리나라에서 지진활동이 가장 많았던 지역이라고 한다. 「삼국사기」와 「고려사」와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인용하면 서기 2년부터 조선시대까지 군위지방에는 약 1800회의 지진이 있었다고 하며, 특히 1551년 조선 명종임금 때 소보 칠천탄(漆遷灘)의 하천 물이 갑자기 끊어지는 이변이 있었다고 한다.
앞으로 군위지방 땅의 지구물리학적 특성을 연구하여 얻은 지형, 지질에 대한 정보를 군위의 역사 복원에 적용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말한 여담국, 소등붕국 등, 소국들의 존재 여부는 그들 지역에 남아있는 고인돌과 입석, 제단(祭壇) 등의 고고학적 유적과 유물로서 확인된다고 한다.
이러한 고인돌과 입석은 초기철기시대를 대표하는 유적인데 현재 소보, 우보, 효령, 부계, 의흥 등지에 남아있으며, 고분은 산성면을 제외한 전 지역에 있다고 한다. 이들 중 군위읍과 효령, 그리고 우보의 고분들은 숫자와 크기에 있어서 타 지역보다 우세하다. 또 이들 지역에서 발굴된 취락(聚落)유적은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밝혀져 이곳에 소국이 있었을 가능성을 더욱 높게 한다.
이미 조사 발표되어 있는 지표조사결과를 보면 군위는 앞으로 많은 역사학자와 고고학자들의 눈과 손을 유혹할 지역이 될 것임은 확실하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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