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최씨 소보 관가정공파(觀稼亭公派) 종친회는 지난달 19일 땅재농원식당에서 종친회원 6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우의와 친목을 도모하는 화합 단합대회를 가졌다.
한편 한국성씨보감에 따르면 경주최씨는 시조 문창후 최치원은 신라의 전신인 사노(서라벌 기원전 50년경) 6촌중 돌산 고허촌(사랑부)의 촌장 소벌도리의 24세손으로 전해지고 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6촌장은 모두 천 강인으로 이, 최, 손, 정, 배, 설로 각각 사성 받았으니 소벌도리가 득성시조 이다.
그로부터 24세에 이르러 최치원이 869년(신라문경왕 9) 12살의 어린 나이로 당나라에 유학 5년후 17세에 과거에 급제하여 승무랑시어사 내공봉에 이르고 자금어의를 하사받았으며, 제도행영병마도총 고변의 종사관을 역임하고 환국 시독겸한 림학사수병 부시랑지서서감이 되었으나 외직을 청원하여 대산, 천령, 부성 등지의 태수를 지내고 시무 10여조를 상조소하여 시행케 하여 아손이 되었다.
그후 난세를 비판하여 전국을 유랑하다가 해인사로 들어가 은거하면서 수도하고 63세에 여생을 마쳤다. 고려 현종이 그의 조업에 밀찬한 공을 가히 잊지 못할 것이라 하여 1020년(현종 11) 내사령을 추증하였고 1022년 5월에 문창후를 추봉하였다. 그리고 득성시조로부터 대대로 경주(월성 계림)에 세거하였으므로 후손들이 본관을 경주로 하여 최치원을 시조로 하고 승습하였으며 그 후손으로 청(관가정공파), 단(광정공파), 호(정랑공파), 예(사성공파) 현우(화숙공파) 광위(충렬공파)등 6개 파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