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위군(군수 박영언)은 지난 13일 11시에 부계면 대율초등학교앞 솔밭에서 홍천뢰장군 후손대표(홍기흠)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홍천뢰장군추모비 건립 제36주년 추모식』을 가졌다.
이날 참석자들은 추모 헌화 분양을 하고 추모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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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뢰 장군 추모식 |
ⓒ 군위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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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식에 후손 대표 홍기흠 전 소보중교장은 홍천뢰 장군은 올해로 탄신 445주년이 되며 400년전 29세때 임진왜란 전쟁에 목숨을 나라에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의병을 일으켜 족질 혼암공 경승과 함께 지역과 국가를 위해 일어서 왜적을 물리치고 돌아와 함락된 영천성을 수복 한것은 누리역사에 길이 빛날 전공이 되었다고 했다.
한편 송강 홍천뢰장군의 양력은 1564년 3월23일 대율리에서 통정공 덕기선생의 남장으로 태어났다.
그후 1585년 21세에 別試 武科에 등과 하였으며 1592년 선조 25(29세) 4월13일 왜적 30만 대군이 부산 동래에 침입하여 동래가 함락되고 왜적이 경주, 영천, 신령, 의흥으로 몰려와 장군의 고장과 나라가 위급해짐에 4월19일 족질 혼암공 경승과 의병 300명을 일으켜 4월24일 의흥지방에 나타난 왜적을 무찔러 승리하였으며, 또 신령 의병장 권응수 장군과 합세하여 창의 정용군을 편성하고 5월22일 효령에 주둔한 왜적을 무찔러 큰 승리를 하였으며, 7월27일 함락된 영천성을 수복하는데 선봉장으로 활약하여 영천성을 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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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홍천뢰 장군 추모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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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세에 重試 급제하였으며, 32세에 훈련원 첨정, 34세때 훈련원 정으로 등용되었으나 3년만에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요양중 1597년 9월16일 정유재란때 마적산 전투에 나아가 큰 공을 세웠다.
1614년3월20일 향년 51세 되는 해에 세상을 떠나셨으며 그 후 1623년 인조 원년 통정대부 병조참의로 추증을 받았다.
군수는 인사말에서 오늘의 찬란한 역사와 번영의 밑바탕에는 많은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정신과 애국심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고장에서 임진왜란 당시 의병대장으로 활동하며 왜적을 크게 무찌르신 홍천뢰장군의 그 정신과 뜻을 가슴깊이 새기며 그 분의 높으신 애국심과 애향심을 본받아 살기좋은 삼국유사의 고장으로 거듭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