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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향우소식

재부군위군향우회 가족 … 고향 문화유적 탐방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09.11.06 16:45 수정 2009.11.06 04:47

군위문화원, 주관 향우인 긍지와 자긍심 및 애향심 고취

정든 고향을 떠나 먼 타향에서 생활하고 있는 향우인의 긍지와 자긍심 및 애향심을 고취시키는 행사를 가져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군위문화원(원장 박수호)은 지난달 22일 부산 향우회 회원 80명을 대상으로 고향 군위의 문화유적을 되돌아 보는 뜻 깊은 시간을 가졌다.
↑↑ 김남학 회장 인사
ⓒ 군위신문

▶재부향우인 환영행사
박수호 군위문화원장은 재부군위군향우인의 고향방문을 환영하며, 군위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우리 고유 역사문화를 잘 알 수 있는 기회를 가질 것을 당부했다.
박영언 군수는 삼국유사교육문화회관에서 개최된 환영식에서 아침일찍 먼길을 달려오신 김남학 부산향우회장님을 비롯한 회원님들에게 고향 군위 방문에 대하여 감사와 격려의 말을 했다.

그리고 날로 발전하는 고향 군위에 대하여 간단한 소개와 더불어 앞으로 고향 발전을 위하여 향우회원님들의 많은 관심과 참여, 협조를 당부하였다.
박운표 의장은 고향을 떠나 있으면서 항상 고향을 그리워하고 군위인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행우인들의 고향방문을 환영하며, 고향의 향수를 담아가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에 김남학 회장은 답례사에서 이렇게 고향 기관단체 임직원, 유지인사 분들이 환영해 주어 감사며 고향을 떠나 있는 향우인은 언제나 고향을 생각하며 고향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싶어 하고 있다고 했다.
↑↑ 재부군위군향우회 회원들이 삼국유사문화회관 앞에서 군위교육발전기금을 전달했다.
ⓒ 군위신문

따라서 향우인은 고향사랑 운동을 전개하며 향우회가 날로 발전되어 가고 있다고 말했다.
부산 향우회원들은 대구사과연구소 방문을 시작으로 삼국유사의 산실인 인각사 탐방을 끝으로 하루 일정을 마치고 그 동안 한번도 돌아보지 못한 고향 군위의 소중한 문화유산에 대하여 소중함과 아울러 후손들에게 영원히 간직될 수 있길 희망하며 행사를 준비해 준 문화원 관계자에게 고마움을 표시하였으며, 삼국유사의 고장 군위를 알리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고자 다짐하였다.

그리고 김남학 회장은 고향후배인재육성을 위해 박영언 군수에게 군위군교육발전기금 1백만원을 전달했다.
↑↑ 사과전시장 방문
ⓒ 군위신문

▶소보사과연구소 탐방
재부군위군향우회원은 먼저 삼국유사문화예술회관을 출발하여 군위군소보면 농촌진흥청 원예 군위사과시험장을 방문했다.
사과연구소에서 탐스럽게 잘 익어가는 가을 능금농장을 둘러보고 사과연구관에서 우리나라 사과에 대한 역사, 사과품종, 영상관람과 가공사과 시식 시간을 가졌다.
↑↑ 소보면 사과연구소 방문
ⓒ 군위신문

▶군위친환경영농법인 방문
이어서 군위친환경영농조합(대표 고재훈)을 방문하여 친환경농산물로 만든 먹거리 오찬시간과 군위농산물 체험시간을 가졌다.
↑↑ 친환경영농조합법인 방문
ⓒ 군위신문

이날 군위향우인은 친환경 토마토 농장을 견학하고 농산물 선별 포장작업장을 견학했다.
그리고 군위군 부계면 대율리 부림홍씨 남천고택을 둘러보고 전통마을, 돌담길을 걸으며 지역 옛 문화체험시간을 가졌다.
↑↑ 친환경유통센터 방문
ⓒ 군위신문

▶부계 삼존석굴 등 문화유적탐방
또 군위군 부계면 삼존석굴(국보 제109호) 문화타방을 했다.
삼존석굴은 군위군 부계면 남산리 양산 절벽 중턱에 천연 동굴이 뚫려 있는데 그곳을 조금 확장 정비하여 아미타 삼존불을 모셔 놓은 곳이다.
인공 석굴이 아니라는 점에서 인도의 석굴사원 형태를 계승한 진정한 의미의 석굴사원이라 할 수 있는 곳이다.

아미타삼존상 주불은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짓고 있는 것이 다른 것에 비하여 다르며 이것이 아미타불이 항마촉지인을 짓는 통일신라 특유의 조상 양식이 이로부터 비롯되는 듯하다.
↑↑ 재부군위군향우회 회원들이 부계면 제2석굴암 방문
ⓒ 군위신문

항마촉지인이란 석가 세존이 마왕(魔王) 파순(波旬)을 항복받고 대각(大覺)을 이루어 불타가 되는 순간에 짓고 잇는 손짓이다. 왼손을 왼쪽 무릎 위에 손바닥이 보이도록 위로 펼쳐서 편안히 놓은 항마인이다. 마왕을 항복받는 사실을 표시하는 손짓이다.
아미타불로 하여금 이런 항마촉지인을 짓게 한 것은 백제와 고구려를 항복 받은 것이 마왕을 황복 받는 것이라고 생각한 당시 신라인들의 사고를 그래도 반영한 듯하다.

그래서 항마촉지인을 지은 아미타불상이라는 독특한 불상양식이 출현하였고 이전 불상양식이 이후 아미타 신앙의 토착화와 더불어 우리 고유의 불상양식으로 자리잡아 나갔다고 보인다.

삼존석굴은 오랜 세월 페어에 묻혀 오다가 1927년 한밤마을의 최두선씨에 의하며 미타 삼존이 발견되어 1961년 초대 주지로 부임한 정혜담사(鄭慧潭師)가 임시 법당을 짓고 1962년 9월22일 황수영 선생을 비롯한 신라 오악 조사단에 의하여 조사된 석굴의 크기는 폭 380㎝, 높이 425, 깊이 430㎝, 주불높인 288㎝ 촤협시 보살상 높이 192㎝, 우협시보살상 높이 180㎝라는 것을 확인하고 우리나라 최초의 석굴사원임을 인정하여 국보 109호로 지정하였다.

▶군위댐 건설산업현장 방문
이어서 재부군위군향우회는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군위댐건설 현장을 들었다.
한국사자원공사 화북댐 건설단 관계자는 회의실에서 화북댐건설 현장 규모, 군위 미래 댐의 영향 등을 영상으로 보여주었다.
↑↑ 재부군위군향우회원들이 군위댐건설현장을 방문했다.
ⓒ 군위신문

▶화북리 인각사지 문화탐방
그리고 재부군위군향우인은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지(麟角寺地)를 방문했다.
고로면과 영천군 신령면을 남북으로 가르며, 동서로 길게 뻗어있는 해발 828m의 장엄하고 준사한 태산준령의 화산(華山)이다.

이 화산의 서쪽은 그 서기(瑞氣)와 정기(精氣)를 골고루 나누는 양, 서서히 완만한 능선을 이루며, 비단같이 깔리며서 위천 상류를 백옥같이 흐르는 개울가에 이르러 그 끝을 맺고 있다.
↑↑ 고로면 인각사 방문
ⓒ 군위신문

개울을 건너면 여기가 바로 군위군 고로면 화북동 인각 마을이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의하면 인각 마을의 내력을 기린이 노닐다가 뿔이 암벽(岩壁)에 걸려서 떨어진 곳이라고 한다.

또 일설에는 화산의 화려하고 기품이 있고 당당한 모습이 마치 기린의 형상을 닮았으며 인각 마을의 위치가 그 뿔의 지점에 해당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 구전되고 있으나 정확한 것은 알 길이 없다.

원래 기린이란 산천의 정기가 어리고 청정(淸淨)하고 아늑한 곳에 산다는 성스럽게 생각되는 우상(偶像)의 동물이다.
이 곳의 주위를 두루 살펴보면 과연 그 성스러운 기린이 살기 에 알맞은 곳이라 짐작이 간다.

이 와 같이 길지(吉地)에 「인각사」가 자리잡고 있다. 「인각사」는 신라 선덕여왕 11년(642)에 의상조사에 의하여 창건된 절이다.
「인각사」는 100여년의 긴 세월을 이곳에서 지내면서 많고 많은 선남 선녀(善女)의 가슴마다에 알뜰한 불심을 심어 주었을 뿐 아리나 천지간에 생존하는 모든 생물에 부처님의 자비를 베풀어 왔다.

보각국사비(普覺國師碑)와 정조지탑(靜照之塔)
인각사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보각국사, 보각 구사하면 인각사를 연상하게 된다.
이는 보각국사가 노년을 이 인각사에 한가롭게 지내면서 많은 업적을 남겼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를 기리는 유명한 보각국사비와 정조지탑이 있기 때문이다.

국사는 고려 희종 2년 태화 병인년(1206년) 경북 경산시 삼성산(三聖山)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속명은 견명(見明)이다. 태어나면서부터 모습이 단정 엄숙하였으며 큰 코에 모가난 입이며 범의 눈초리에 소의 걸음을 닮아, 보기에도 비범하고 위엄이 있었다 한다.

군위에서 일생을 마친 승일연(僧一然) 우리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책 중에서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되고 옥과같이 귀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두가지가 있는데 하나를 고려 인종때 김부식(金富軾)이 왕명을 받아 쓴 삼국사기(三國史記)요, 다른 하나는 고려 충렬왕때 명승 보각국사 일연(普覺國師, 一然)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5권이다.

이 책은 1284년 이후 인각사에서 저술하였으며 고구려, 신라, 백제 등 우리나라의 고대(古代)역사 그리고 향가, 전설, 민속 등 옛날의 귀중한 자료를 현대의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특히 우리의 국조(國祖)가 단군이었음을 전하는 것이 이 책 뿐이다.
이와 같은 귀중한 책을 써서 현재의 우리들에게 남기신 분이 바로 우리군(郡)에 계셨으며 우리군에 그 영혼이 잠들고 있음을 우리는 자랑으로 생각한다. 1284년 임금님이 직접 신하에 명하여 군위군의 인각사를 크게 수리케 하고 전답을 절에 하사하여 국사로 하여금 여기에 살게 하였다. 국사는 여기서 불교를 더욱 발전케하는 한편 여러 서책(書冊)을 저술(著述)하여 여생(餘生)을 보내다가 1289년 7월, 84세의 고령으로 빛나는 일생을 마치었다.

입적(入寂)한 후 시호를 보각(普覺)이라하고 사리를 보관하는 탑을 만들어 정조(靜照)라 하였다. 이 탑은 지금도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에 남아 있으며 보각 국사를 기린 비석은 그 일부만 남아있다.

승일연은 어릴 때부터 허튼 소리는 일체 없었고 꾸밈이 없는 진실 된 것을 좋아하는 성격을 가졌으며, 부모에 대한 효성 또한 남달리 많았다고 한다. 일생동안 수도를 하면서 지은 책이 100여권이나 되었으나 불행하게도 지금 남아 있는 것은 삼국유사 5권이니 안타까운 일이다.

▶향우인 대화시간 가져
한편 재부군위군향우회 김남학 회장과 회원들은 군위읍 소재 식당에서 박영언 군수를 비롯한 기관단체 임직원과 고향 문화탐방에 대한 소감을 피력하고 정나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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