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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사라져가는 사랑방 문화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10.11.03 11:26 수정 2010.11.03 11:36

사랑방,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연상된다

↑↑ 김종오 부총재
ⓒ 군위신문
사랑방이라면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연상된다.
옛날 우리 집은 전형적인 시골 대가족제 가옥구조로서 위채(上屋), 아래채(下屋), 큰대문, 작은 대문(색대문)으로 구성되어 있어 외부 남자손님들은 대개 색대문으로 출입했다.
색대문으로 손님 들어오시는 소리가 나면 조금 후 할아버지께서 부르는 소리가 났다.

곧 뛰어 내려가 사랑방에 들어서면 “얘야 이 어른은 어디계시는 누구이시다. 인사드려라”는 말씀에 나는 정중하게 절을 올리고나면 할아버지는 손님께 손자 소개를 하셨다.
이렇게 평소 사랑방에서 절하는 자세, 무릎 꿇고 앉는 자세, 어른들에게 말하는 태도 또 어른들께서 손아래 사람들이라도 인사드리겠다면 옷매무세나 처신을 눈여겨보는 등 각종 예절을 익혔다. 사랑방은 이렇게 예절을 배우는 곳이기도 했다.

특히 요즈음은 어른 앞에서도 책상다리를 하는 정좌(正坐)를 하지만 옛날에는 어른들이 다른 말씀이 있을 때까지는 위좌(危坐:꿇어 앉는 것)가 기본 이었다.
또 아침 식전에 동네 젊은이들이 우리 사랑방에서 한학공부를 하고 옆 겨드랑이에 책을 끼고 가는 모습들이 매일 반복 되었으며 사랑방에는 항상 지필묵(紙筆墨)이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식사 때가 되면 정지(부엌)에서 상당한 거리의 안마당을 거처 사랑방까지 어머니들이 하루 세끼 밥상은 물론 손님들로 인해 여러번씩 나르는 일은 요즈음 부엌에서 식탁사용 하는 아파트 생활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였다.

또 사랑방 서제에서는 묘하고 독특한 냄새가 풍겼다. 이것은 문자향(文字香:글자의 향기) 서권기(書卷氣:책에서 풍겨나는 기운)였다.
농본사회에서 산업사회로 바뀌면서 점차 서양문물의 생활환경으로 시대가 변천함에 따라 생활구조도 대가족제에서 핵가족으로 바뀌면서 어릴때 의 사랑방문화도 차츰 퇴색 되어가는 느낌이다.

지난날을 생각해보니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어른들께 절을하는 횟수도 줄어들고 다른 사람들의 집을 방문해서도 절하는 경우는 좀처럼 보기 힘들다.

이렇게 된 것은 인사방법에 서양문물의 영향을 있지만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 공경보다는 “내가 누군데...”라는 교만함이 움터있기 때문이 아닐까. 예전에 사랑방에서 수양했던 어른들은‘내가’라는 그런 의식이 없었다.

요즈음 도시의 아파트는 하나는 안방, 나머지는 아이들의 방이나 옷방 또는 기타공간으로 쓴다.

집안의 어른이 자리하고 있던 사랑방 그곳에서 우리는 공부와 예절을 배우고 익혔다.
이렇게 어렸던 시절을 회상해 보노라면 일찍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더욱 흠모(欽慕)하게 되었다. 얼마 전, 우리 시골 집도 빈 가옥이 폐허되면서 부득히 윗채만 남기고 아랫채와 대문 두 채는 철거하였다.

특히 아래채 사랑방을 헐 때는 이제 그 사랑방 정신은 사라진 사랑방처럼 곰팡내 나는 그 추억처럼 사라지고 말 것이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쳐갔다.
나는 지금의 아파트 서제의 벽에 할아버지의 큰 사진을 액자에 모셔 걸어두고 옛날 사랑방 정신을 되새겨 보고 있다.

(사)충·효·예실천운동본부
부총재 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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