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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귀농 10년을 돌아본다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10.12.03 13:45 수정 2010.12.03 01:57

양봉·옥수수 등 복합영농 부농의 꿈 실현

↑↑ 손태원 씨
ⓒ 군위신문
1998년 귀농을 결심했다.
잘나가던 사업체가 언제부터인가 어려워지기 시작하면서 내 마음도 병들어가고 있었다.

어린 시절 고생 모르고 자란 탓일까 잘되던 사업이 어려워지면서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애써 이루어놓은 사업장을 헐값에 남의 손에 넘겨주고 조그마한 식당을 마련해 아내에게 세 자녀를 맡기고 홀연히 고향으로 귀농한지 어언 10년. 금의환향이 아닌 사업실패와 우울증까지 병약한 몸으로 고향에 왔을 때 내 마음은 더 고독했고 고향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은 죽기보다 더 어려웠다.

주민들이 어울려 서로정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 가까이 가기가 두렵고 객지에서 사업 실패하고 고향에 농사지으러 왔다고 흉보는 것 같아 혼자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그렇게 심각한 기로에 처해있을 때 주위에서 양봉을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무척 고마웠다.
하고 싶은 일이라 즉석에서 하겠다고 하고 벌 10통을 사서 구미로 상주로 이동양봉가의 일손도 덜어주면서 양봉체험을 하면서 기술을 익혔다. 그해는 아카시아 꿀이 풍작이라 재미가 있었다.

벌의 습성은 부지런하지만 역할분담이 확실하게 구분되어 수많은 일벌들은 여왕을 중심으로 질서정연하게 움직이지만 여왕벌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일벌들은 스스로 새 여왕을 만들어 늙은 여왕을 제거하는 것을 보고 그 곳에 몰입하다보니 더위와 배고픔도 잊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생활했다.

나 자신을 그렇게 괴롭혔던 우울증과 대인기피가 깨끗이 사라졌다. 양봉산업이 내가 할일이라고 생각하고 전국을 다니면서 양봉기술교육을 익혔다. 지역양봉산업을 발전시키고자 작목반을 만들어 지역 양봉인들에게 기술을 전수하고 군위지역 양봉협회를 튼튼한 반석위에 올려놓았다고 스스로 만족할 때였다.

이제 농사일도 조금씩 재미가 있고 자신감이 생겨서 삶의 보람을 느낄 때 구미에 있는 아내에게 고향에 가서 농사를 짓자고 얘기했다. 반대 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뜻밖에 말이 나왔다.

당신을 끈질기게 괴롭혔던 우울증도 낫게 해준 고향으로 가겠다고 허락해주었을 때 아내가 정말 그때만큼 고마울 수가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식당이 제법 재미는 있었지만 아내에겐 힘들었던 것 같았다.

팔순이 넘은 노모와 아내는 농사일을 힘들어 했지만 나 자신은 즐거움의 연속이었다.
나는 농사꾼 체질인 것 같았다. 도시생활의 거짓 속에서 벗어나 고향의 정, 가식 없는 인심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항상 신바람 나는 농사를 짓고 있다고 자랑하며 다녔다.
힘들어하는 아내의 모습을 볼 때 애처로운 생각이 들어 나도 모르게 자연스레 고생 많이 한다, 수고했다 격려와 칭찬의 말이 절로 나왔다.

어느 무더운 여름날 경운기를 몰고 가다가 운전 미숙으로 오르막길에서 기어 변속을 하고 출발하다가 아내가 경운기에서 떨어진 지도 모르고 목적지에 와서야 경운기 뒤에 아내가 없는 것을 확인하는 순간 기어 변속한 오르막까지의 200m 정도 되는 거리가 그렇게 멀리 느껴질 수가 없었다.

끔찍한 생각이 교차하면서 현장에 도착하니 아내는 넋 나간 사람처럼 먼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너무 반갑고 고마워서 첫말이 괜찮아? 이 말 뿐이었다.
결과는 심한 골절상으로 한 달반 무더운 여름을 병원에서 보내게 되었다.

귀농한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아직 지역민을 모르는 분이 많아 어디 사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위성2리 이장이라고 하면 경운기에 마누라 떨어뜨리고 도망간 사람이다며 웃곤 한다.
이제는 양봉뿐만 아니라 복합영농으로 부농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양봉에서 새끼 벌(유봉)먹이 화분구입비용을 줄이기 위해 옥수수재배를 지난 2005년 처음 시작했다.
작목반에서 영농법인으로 성장하여 군위찰옥수수가 전국적으로 잘 팔려 2009년산 옥수수는 공급이 주문을 다해주지 못했다. 올해는 재배면적이 많이 늘어나 많은 수익이 창출되었다.

벼 재배보다 2배 이상 수입이 나 내년에는 재배면적이 더 많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양봉보다 옥수수 수입이 늘어나 부농의 꿈을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
세월이 흘러 강산이 한번 변하고 보니 나도 이제 고향지킴이가 되어있다는 자신감과 고향 어르신들께서 따뜻하게 감싸주시고 열심히 사는 모습이 아름답다는 칭찬을 아끼지 않으실 때 귀농한 보람을 느끼고 오늘도 아내와 함께 활짝 웃으며 일터로 향한다.

<손태원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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