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땅심 깊은 고향 이야기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10.12.17 16:05 수정 2010.12.17 04:18

땅심 깊은 고향 이야기

↑↑ 오현섭 전교감
ⓒ 군위신문
늦가을 어느 날 시골에 가서 바쁜 일손 돕기를 잠시 했다.
가을걷이는 한꺼번에 몰린다. 벼와 콩 수확하기, 땅콩과 고구마 캐기, 사과 따기 등 눈 코 뜰새 없이 바쁘다보니 일손이 딸린다. 더구나 농촌에는 예순이면 청년이고 일흔 되어야 장년 일손들이다. 그나마 일흔 일손도 귀해 어디 가서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많은 농사일들로 인해 아플 겨를도 없다면서 밤이면 온 몸이 뻐근하고 허리가 아파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하고 끙끙거린다.

그들은 농부의 일을 천직으로 평생을 밭에서 보내고 일하는 재미로 산다고 한다. 그러면서 사람이 먹는 것이니 만큼 누구나 마음 놓고 먹을 수 있도록 친환경 저농약으로만 농사를 지어야 한다면서 우직스런 고집으로 억척스레 일하는 순박한 인심이 가득 펼쳐진다.
새참이라면서 말린 햇대추와 금방 딴 햇콩을 넣어 갓 찧은 햅찹쌀로 인절미 떡을 만들어 내 왔는데 구수하고 진득한 향기가 가히 일품이다.

어릴 때 정미소를 운영했던 부모님 덕에 춘궁기에도 밥은 굶지 않았지만 미리 손으로 벼를 손 타작하여 찐쌀을 만들어 주면 한 움큼 가득 호주머니에 넣고 골목길 돌아다니면서 개구쟁이들과 나누어 먹던 최고의 간식이 햅찐쌀이다.

콤바인으로 타작한 벼는 아침에 해가 뜨자 동네 구루마 길에 비닐을 깔아 말린다. 아직 건조가 덜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 부부가 콩 타작하러 뒷밭에 간 새에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가을볕에 말리던 벼가 생각나 부리나케 달려가 비닐로 덮어 간신히 비를 맞히지 않았다.

밤늦게야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그쳤다. 건너편 언덕 비탈 밭에 마늘을 심던 사람과 더불어 밤에 벼를 트럭에 싣고 와서 창고에 넣는다. 농촌 일은 밤낮이 구분되지 않는다.

타작하랴 말리랴 한 톨 한 톨 손이 가는 소중한 생명이나 다름없다. 그렇게 귀한 것이 농산물이다. 그래서 農者는 天下之大本이라면서 가장 소중한 근본으로 여겨 온 우리 조상들이다.

“첫 햅쌀 찧었는데 밥 한번 해 묵어라. 구수할 끼다.”
돌아올 때 가정용 정미기로 햅쌀과 햅찹쌀을 찧어 한 자루 가득 트렁크에 담아 준다. 갓 캔 땅콩과 고구마도 포대에 담고 앞개울에서 밤새도록 잡은 고둥 한 사발과 물고기 한사발도 잊지 않고 비닐봉지에 담아 준다. 그래도 모자랄까봐 밭에서 따온 햇콩과 무를 뽑아 담아 준다. 사과 포대도 잊지 않고 실어 준다.

이 모든 넉넉한 시골 인심을 아낌없이 풍요롭게 담아 건네는 시골집 부부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가득 넘쳐흐른다. 푸짐한 인심이 시골 구석구석 묻어난다. 맨 먼저 수확한 가을걷이를 챙겨 담아주는 인정이 초겨울 햇살보다 더 따뜻하다.

얼마 전에 3층 옥상에 직접 가꾼 배추와 소보 마실에서 얻어온 배추 등으로 김장을 했다. 올해는 특히 멀리 강경까지 가서 젓갈을 구입했다.

속이 꽉 찬 샛노란 속살 깊숙이 빨간 양념 버무림을 가득가득 집어넣었다. 내가 하는 일은 마님(아내)의 김장 버무리기의 잔심부름을 하는 돌쇠 역이다. 대략 50포기를 했다. 배추 속살에서 마늘 생강 젓갈 냄새와 더불어 정성이 가득가득 배어난다. 빨간색 고운빛깔의 양념으로 금방 버무려낸 맛있는 김장김치를 손으로 쭉쭉 찢어 햅쌀로 지은 구수한 밥에 휘둘러 얹어 한 입 가득 먹는 점심은 가히 임금님 수라상 부럽지 않다. 정성이 가득 담긴 김치를 4통이나 김치 통에 넣고도 이웃과 한 접시씩 나누어 먹는 맛은 우리 촌부들의 오랜 멋들어진 김장 문화 풍습이다.

시골 노부부들은 아픈 데가 많다. 관절염과 다리 통증으로 걸음을 제대로 걷지도 못하지만 해마다 온 가득 김장을 하여 먼 곳의 자식들과 손자들에게 넉넉하게 보낸다.

김장을 담글 때는 어디서 그런 힘이 솟아날까. 아마 당신 몸이 한없이 고달파도 자식들 생각하는 마음, 엄마라는 끈이 있기에 구부러진 허리에 그런 힘이 움실움실 솟아나는 모양이다.
아내도 먼 외국에 사는 자식을 위해 김장 한통을 우체국 택배로 보냈다. 보내는 비용만 해도 만만치 않은데도 아깝지 않다며 싱긋 웃는다. 가족이라는 의미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튼튼히 지켜나갈 수 있는 내리 사랑의 모정을 어찌 탓할 수 있으랴.

요즈음 김장을 할 줄 모르는 젊은 새댁들이 많다고 한다. 서른이 넘은 우리 딸도 김장이며 된장을 담글 줄 모른다고 한다. 친정과 시댁의 신세를 진다고 하니 이를 어찌하나 걱정이 된다.

며칠 후에 두 달 계획으로 외국에 사는 손녀도 만날 겸 유럽 여행을 떠나려고 한다. 아내는 몇 가지 반찬을 챙기고 있다. 그 중에서도 김치 재료를 꼭 가져간다고 한다. 세계화 음식 브랜드로 김치를 알리려 한다는 보도를 본 뒤에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젓갈 등 우리나라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재료를 가방 밑에 꼭꼭 챙겨 가서 며느리에게 김장하는 법을 기필코 전수하고 오겠다고 한다.

내가 어렸을 때는 김장하는 날 뒤꼍 담장 밑에 5~6개가량의 김장 독(항아리) 구덩이를 팠다. 김치통이 없던 시기라 땅에 묻어 시어지는 것을 막았는데 땅속에서 우러나는 김장의 깊은 맛을 요즈음 사람이 어찌 알랴.

겨울 지나 늦은 봄까지 시골 반찬의 으뜸은 오직 김치뿐이었다. 대가족인 우리 집의 긴 겨울밤의 야식은 식은 꽁당보리밥에 동치미와 김치를 얹어 때우던 기억이 오롯하다.
이제는 김장을 사각 통에 담아 김치 통에 넣는 수고뿐이니 김장독을 파고 묻던 추억은 까만 옛날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허리도 구부러진 동네 할머니들이 김장을 가득가득 한다. “왜 그렇게 많이 하냐?”고 물었더니 한결같이 자식들에게 보낸다고 한다.

여름 가을 내내 수고한 농사로 비닐봉지와 포대기 자루마다 고추랑 콩과 깨, 호박이며 고구마 등을 두루두루 챙겨 두었다가 자녀들에게 실어 보내는 낙으로 산다고 한다.

도회지의 자식들은 김장철이면 시골 골목길이 비좁도록 와서는 바리바리 싣고 떠난다. 시골 동네 어귀는 할머니들의 손 흔드는 모습이 겨울 추위보다 더 춥고 쓸쓸해 보인다. 담아 챙겨 부칠 거리가 있는 집은 덜하지만 시골 땅까지 깡그리 훑어가고 빚까지 부모에게 떠안기고 소식조차도 두절한 자식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떠날 때는 제발 겨우내 지낼 두둑한 용돈이라도 드리는 멋진 자식들이 되어야 하면서도 나도 어쩔 수 없이 생활에 쪼들리는 가엾은 속인이라 부끄럽기 그지없다.
농촌이 살아야 도회지도 산다. 땅심이 있는 고향을 풍요롭도록 할 수 있는 묘안과 대책이 무얼까?

이태 반을 살던 농촌 마을 소보들녘과 소보의 연인들을 지금도 찡하게 생각해 본다.
시골 고향 마실 속의 수많은 애잔한 이야기들은 옛 이야기로만 남고, 내일은 정녕 활기찬 농촌 고향 마실로 되살아나도록 묘안과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전 송원초등학교 교감 오현섭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