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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여행기➀ 바꾸기를 싫어하는 영국 문화의 특성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11.02.16 10:21 수정 2011.02.16 02:36

유럽여행기➀ 바꾸기를 싫어하는 영국 문화의 특성

↑↑ 오현섭 전 교감
ⓒ 군위신문
2010년 12월 중순, 대구에서 KAL기를 이용하여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예약해 둔 공항 옆에 있는 하얏트 호텔에서 1박을 하고 다음날 아시아나 항공편으로 런던 행 비행기에 올랐다.

런던 히드로 공항까지는 꼬박 12시간 정도 걸린다. 검은 피부의 여자 입국 심사원이 여권을 들여다보면서 “왜 오느냐, 언제 출국하느냐”고 묻는다. 방문의 목적과 출국 날짜를 이야기해주니 여권에 쿡! 도장을 찍고는 내밀어 준다.

런던에 도착하던 밤부터 내리던 눈이 다음날 아침까지 내린다. 약 7~8cm 눈으로 덮였다.
집은 런던에서 1시간 거리의 Aldermaston이라는 마을이다. 기차역이 있고 Alder Bridge School 이라는 대안학교도 있다. 마을 복판으로 운하(수로)가 있는데 뉴베리와 런던의 템스 강까지 연결된다고 한다. 겨울철에는 배들이 거의 운항을 하지 않고 있다.

런던에도 가끔 눈이 오지만 이번처럼 많이 내리기는 몇 년 만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차들이 스노어체인을 하지 않고 빙판 진 도로로 엉금엉금 간다. 노트북을 찾아 인터넷 뉴스를 보니 히드로 공항이 마비되어 비행기 이착륙이 금지되고 있다. 하루만 늦게 도착했다면 히드로 공항에 내리지 못하고 다른 유럽 어느 나라 공항에 착륙하여 유럽의 미아가 되는 어려움(?)을 겪었을지도 모른다.

영국의 도로시스템은 왼쪽 방향으로 달린다. 자동차의 운전석이 오른쪽에 있다. 그러다 보니 아들이 운전하는 차의 왼편에 앉은 나는 여러 번 깜짝깜짝 놀라기도 했다. 보행자를 최우선으로 하는 영국의 교통 법규가 우리에게는 낯설다.

신호등의 파란불을 기다리지 않고 빨간 불이 있어도 곧잘 건너간다. 그래도 느긋하게 기다려 주는 운전자들의 매너는 영국 신사라는 기품을 보여주는 것일까. 보행자가 길을 건너려는 눈치만 보여도 운전자는 차를 세우고 사람이 지나가도록 기다려준다.

도로의 교차로(Roundabout)는 라운드형으로 오른쪽으로 돌면서 자신이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돌아 나간다. 오른쪽에서 진입하는 차가 우선이다. 신호등이 없지만 매우 편리하다.
그러나 처음 경험하는 나는 익숙하지 않아 많이 놀라기도 했다. 영국의 문화는 한마디로 바꾸기를 싫어하고 전통적 문화를 아끼고 사랑하는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낡고 오래 된 건물을 부수기보다는 고쳐서 쓰는 전통 문화이다. 그런 탓인지 오래된 중세풍의 건물들이 많다. 영국에 10여 년 살았다는 전원경씨의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라는 책을 읽으면서 변화를 싫어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것에 동의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바꾸기를 싫어한다는 것은 그만큼 전통을 존중하는 것이리라. 오래된 전통 가옥을 부수고 신식 건물을 선호하는 우리네 문화습관과 비교된다.

영국은 약자가 대우 받는 나라, 여성과 어린이가 우선인 영국 문화를 익히는데 어찌 며칠간의 생활로 알 수 있으랴마는 좋은 것은 신속히 받아들이는 문화 마인드도 어쩌면 필요한지 모르겠다. 짧은 기간 동안의 피상적 관찰로 남의 나라의 오랜 전통 문화를 비교 논하는 것은 스스로의 주관적 판단의 교만과 자만심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흔히 교과서적인 선진국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일본 등을 꼽는다. 그리고는 미국 사회는 지나친 자본주의로, 일본은 관료주의로, 영국은 합리적이고 성숙한 사회 개념의 나라라고 비교하기도 한다. 나라마다 다른 독특한 문화의 특성을 미성숙한 주관적 판단에 의해서 비교하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에 나도 동조하면서 그냥 재미와 가벼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자 한다. 이 기회에 나의 속물적 좁아터진 성격도 돌아보고 이성적이고 합리적 문화를 향유하는 삶의 태도를 눈여겨본다.

사실 이 나라의 합리적 생각의 문화는 굳이 법을 만들지 않아도 되는, 불문법의 역사와 전통을 지닌 것만으로도 영국을 선진국으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며칠 동안 한파와 폭설로 차가 움직일 수 없다. 온 가족이 눈썰매를 타러 마을에서 제일 높은 언덕이 있는 곳으로 갔다. 작은 연못 주변의 5m도 높이도 안 되는 언덕에 마을 아이들 10여 명이 썰매를 타러 나왔다. 그 중에는 어린 아이를 위해 따라온 부모들도 더러 있다.

런던의 서쪽 뉴 몰든의 한국인이 운영하는 중국 식당에서 자장면과 짬뽕 등으로 점심을 먹었다. 코리아 Tesco 매장에서 몇 가지 반찬도 샀다. 한국의 이마트처럼 온갖 한국 식품이 가득 진열되어 있다. 이곳이 영국인지 한국인지 모르겠다. 매장 앞에 무료로 배부되는 한인신문 5~6종류를 얻어 왔다. 수십 년 만에 몰아친 이번 한파로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리는 영국 소매점들이 울상이라는 데일리 메일지의 보도와 런던의 한인 교포들의 뉴스를 접해볼 수 있었다.

히드로 공항이 폐쇄 되었다는 소식과 한인 단체 회장 선거에 따른 여러 가지 잡음에 대한 뉴스 꺼리도 읽으면서 어디를 가든 정치적 논쟁은 가관임을 느꼈다.
카드를 샀다. 노병석 교장선생님과 지인들에게 카드를 몇 장 보냈다. 연평도 포격 훈련 뉴스도 인터넷으로 보았다. 먼 나라 영국에서 고국의 뉴스를 보는 감회는 새롭다.

수로를 따라 걷기 운동을 했다. 수로는 작은 운하로 이어진다. 영국의 작은 운하는 오래 전부터 모든 도시로 연결되는 교통수단으로 이용되었다. 자동차가 없던 시대에 운하의 역할을 생각해보면 알 수 있다. 작은 배들이 곳곳에 정박해 있다. 이곳에서 아예 생활하는 사람도 있다.

선착장 옆에 작은 카페 레스토랑이 있다. 가끔씩 문을 열고 손님이 없으면 닫아버리는 작은 카페다. “open”, “close” 입간판을 대문 앞에 세워 둔다. “Open”으로 표시되어 있던 날 아내와 함께 들어갔다. 두어 평 남직한 작은 카페에는 몇 가지 학용품과 작은 선물용 물건들, 여행용 책자와 지도 책 등이 꽂혀 있다. 그리고 커피 믹서와 작은 케이크 및 과자 등이 카운터 앞에 놓여 있다. 카페 주인은 30대 후반 쯤 되어 보이는 금발의 여인이다.

커피와 간단한 빵을 하나 시켰다. 먼저 온 손님 세 사람은 왼쪽 창가에서 노트북으로 인터넷을 하고 있다가 낯선 동양 사람인 우리를 보자 하나 뿐인 테이블과 의자를 우리에게 양보를 해준다.

여름철에는 정원에 가득한 의자에 앉아 유람선을 보면서 차를 마시는 사람이 많겠지만 이 겨울에는 한적하다. 창가에 앉아 차를 마시면서 운하에 대해 아는 영어 단어를 이용하여 이것저것을 물어보기도 했다. 뉴베리와 레딩 그리고 런던의 템스 강으로 이어지는 작은 운하이고 이곳 매표소 근처에 선박 수리 센터도 있다고 한다.

고은기 저 <삼국유사>라는 책을 독파하다. 지은이는 일연의 삼국유사를 방금 캐낸 채소에 비유하면서 싱싱한 역사의 단면들을 적절한 비유와 표현으로 조명하고 있다.
삼국사기가 사대주의라는 방부제를 친 통조림이라면 삼국유사는 방금 딴 싱싱한 과일과 채소에 비유할 수 있다는 지은이의 재치 있는 표현이 재미있다.

삼국사기의 사는 史이고 삼국유사의 사는 事라는 사실과 史와 事의 차이에서 역사의 재조명과 선인들의 다듬어진 문체와 그 정갈한 내음이 고향산천과 다름 있으랴. 일연은 78세에 국사로 책봉되었다. 생애의 화려한 경력을 평가하려는 것이 아니라 고려조 무신정권기와 몽고 전란기를 헤쳐가면서 그가 보여준 삶의 궤적 때문이다. 역사의 흔적과 자취들을 군위 인각사에 머무르며 후대를 위하여 혼신의 필력으로 <삼국유사>를 표현하였을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옷깃을 여미며 역사 속을 되짚어 보는 하루를 보냈다. 군위 송원에서 보낸 이태반의 교직 생활기간 만이라도 삼국유사라는 그윽한 향기에 푹 젖었어야 했는데, 아아! 그 때는 왜 속살들이 그 향기를 음미치 못했을까.

그리고 이희수 교수의 <세계 문화 기행>을 읽었다. 세계 역사 문화에 대한 이해와 상식을 높이고 여행을 하기 위한 사전 문화 지식을 터득하는데 노력했다. ‘이희수 교수는 이슬람의 시각으로 세상을 열어가는 희귀한 학자’라고 소설가 이윤기는 평을 했다. 지은이는 한양대학교 문화인류학과 교수로 문화사를 연구하는 학자이다. 낯선 문화 속에서 과거사의 주요 문명과 현대의 문명을 넘나들며 체험하면서 시간 여행의 긴박감을 탄탄한 필치로 풀어가는 싱싱한 이슬람 문화를 맛볼 수 있는 책이다.

런던 시내 구경을 갔다. 런던까지는 M4 고속도로를 달려 1시간 정도 걸린다. 시내를 진입하여 국회의사당이 있는 다리 근처의 템스 강 유람선을 타는 주변에 주차를 했다. 크리스마스 휴일이라 기차와 버스, 지하철과 유람선도 운행하지 않는다.

그래서 자가용을 가져오지 않으면 먼 지방에서는 시내로 들어오기가 쉽지 않다. 복잡한 런던 시가지의 주차비는 엄청 비싸다고 한다. 휴일이라 주차비가 면제된다고 하니 다행이다.
템스 강을 따라 국회 의사당과 시계탑 빅벤, 런던브리지아이 등을 구경했다. 트라팔라 광장에서 오른 쪽으로 가니 현관 앞에 ‘Christx open day’이라고 써 붙여둔 이탈리아 식당 겸 와인 맥주를 파는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다. 하얀 피부와 파란 눈의 금발 미녀들이 상냥하게 손님을 맞이한다.

차 없는 보행자의 천국인 넓고 장대한 거리의 끝 지점에 위풍당당한 흰색의 버킹검 궁전 (Buckingham Palace)이 있다. 이 궁전은 원래 버킹검 공작의 저택이었으나 왕가에서 사들여 왕궁으로 사용했다. 18세의 젊은 빅토리아 여왕이 최초 거주한 이래 역대 왕들이 여기서 살았으며 현재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평일 집무실이라고 한다.

여왕이 이곳에 머물 때는 왕실의 깃발이 내걸리고, 부재 시는 유니온 잭이 게양된다. 궁전 앞 광장의 금색으로 빛나는 빅토리아 여왕의 기념탑은 높이가 25m되는 대리석 하나로 만들었다. 궁전 담장 안에는 근위병이 주변을 경계하고 있다.

템스 강 남쪽에 있는 런던탑(Tower of London)은 대영제국의 찬란한 역사를 반영하고 있다. 이 탑은 1066년 윌리엄 정복 왕이 영국에 상륙하여 시민들의 왕권에 대한 복종을 유지시키기 위한 요새로 건립했다.

왕권에 대한 상징의 궁전이었다. 그 후 감옥으로, 처형장으로 무기고와 조폐국, 동물원 등으로 역사의 분기점에 따라 달리 이용되었다고 한다. 높이가 135m가 되는 런던 대 관람차는 템스 강을 따라 런던 시가지를 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다. 캡슬의 전망대가 돌아가는 모습이 강 건너로 보인다.

<다음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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