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부모님께 효도를 셀프라고…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11.09.03 10:12 수정 2011.09.03 10:05

ⓒ 군위신문
창밖에 부는 세찬 바람이 매섭다.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을 삶의 터로 떠나보낸 노부모의 마음은 허전하다 못해 외롭기 그지없다.

자식들이 바쁜 줄 알면서도 전화 한통을 기다리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며 별일 없이 오순도순 살기를 바라는 것이 끝없는 자식걱정의 어버이의 마음이다.

그런데 지금 일부 젊은이들 사이에 효도(孝道)는 셀프라는 의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아 심히 걱정된다.
고령화로 인한 노인들의 삶의 문제를 자기들과 상관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젊은이들.

부모가 욕먹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자신이 욕먹는 것은 참을 수 없다는 일부 젊은 층의 의식이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아무리 세상이 달라져도 변할 수 없는 것이 부모와 자식과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저출산 고령화 문제는 노인들의 장수 때문만은 아니다. 젊은이들의 효심과도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노인문제를 노인들에게만 돌려서는 안 된다. 우리 모두가 어렵고 힘들더라도 함께 풀어야 한다.

정부와 사회가 해야 할 일 있고 자식으로서 해야 할 의무와 책임이 있다. 그런데 효도를 기호에 따라 먹고 안 먹는 커피처럼 병들고 나이든 부모 봉양을 셀프라는 젊은이들의 생각이 정말로 한심스럽다.

노인에게 물어볼 말이 없는 시대는 엉터리다. 노인을 지나쳐 버리는 시대도 엉터리다. 부모를 내다 버리는 시대는 더욱 더 엉터리라고 한 어느 작가의 글이 떠오른다.

기력 떨어지고 거동 불편한 늙은 부모, 기억력 저하와 건망증이 심하고 질병에 시달리는 어버이를 봉양하고 돌봐야 하는 것은 자식의 도리요 의무다.

효도는 셀프가 아니다. 열 달 동안 배 아파 낳은 자식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시며 손발이 다 닳도록 고생하신 게 부모다.

그러나 건강하게 애지중지 키운 자식들이 소가 아파 병들면 소침쟁이 찾아가고 자식위해 사탕봉지는 사면서 부모위해 고시 한 근 사올 줄 모른다. 또 시끄러운 아이소리 듣기 좋다 즐기면서 부모 말은 잔소리라 빈정댄다. 자식들의 오줌똥은 손으로 주무르며 부모의 가래침은 비위 상해 밥 못 먹고 자식위해 쓰는 돈은 계산 않고 쓰면서도 부모위해 쓰는 돈은 인색한 젊은이들의 행동이 다음 자식에게 대물림 될까 심히 걱정된다.

형편이 좋아지고 성공하면 효도하겠다는 생각을 하다보면 효도의 길은 더욱 더 멀어지며 부모와의 관계도 소원해진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정성껏 모시고 보살피는 것이 부모에게 보답하는 효성(孝誠)이 아니겠는가.

부모는 자식이 입신출세(立身出世)하기보다는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지 않는 성실한 사람이 되기를 원한다. 그리고 가족끼리 오순도순 부모걱정 끼치지 않고 사는 것을 바란다.

이 핑계 저 핑계로 부모의 외로움과 질병을 무관심 하는 사이에 부모는 영영 되돌아 올 수 없는 길을 가고 만다. 돌아가신 뒤 불러보고 울어 봐도 못 오시는 부모…후회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살아생전 정성과 치성을 다하여 모심이 효도(孝道)이고 자식이 해야 할 당연한 도리(道里)다.
있을 때 잘해라는 유행가사말도 있지 않는가? 인류학자 아놀드토인비는 장차 한국이 인류에 기여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孝사상일 것이다고 했다.

‘만약 지구가 멸망하고 인류가 새로운 별로 이주한다면 지구에서 꼭 가지고 가야할 제일의 문화는 한국의 효! 문화이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효는 우리나라와 동양을 넘어 인류보편적인 덕목이다.

그러나 만행의 근본인 효(孝)와 경로정신이 퇴색되어 가정과 사회의 도덕성은 물론 우리 민족의 정신문화 퇴폐가 심히 염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리 개인주의와 황금만능에 살아도 부모은혜만큼은 정말 잊어서는 안 된다.

(사)부산시노인복지봉사회 사무처장 박종영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