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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묘(辛卯)년 한해가 저문다

군위신문 기자 입력 2011.12.23 09:28 수정 2011.12.23 08:54

↑↑ 군위농산 대표 황성창
ⓒ 군위신문
12월11일 일요일 아침 주섬주섬 배낭을 싸서 집을 나섰다. 앙상한 겨울의 하얀 향기가 코끝에 닿아 선다. 차가운 겨울이 하늘과 맞닿을 듯 새파랗게 얼어있다.

이제는 만추에서 초록빛 이파리도 빨간 낙엽도 떨어지고 겨울이다. 일 년 내내 여유로운 달이 있겠냐마는 12월만은 송년회다 동창모임, 단체모임 등의 약속들로 가장 바쁜 달이다.
이럴 때 훌쩍 떠나는 여행은 소박한 즐거움이다.

일상의 어지러이 헝클어진 마음을 차곡차곡 챙겨보는 여유도 필요하다. 서로의 마음을 쓰다듬는 다정한 사람끼리 떠나는 여행은 더욱 편안하다.

아침 10시 동래역에서 동해남부선 기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보니 불현듯 어릴 때 칙칙폭폭 거리며 달리던 시절의 증기기관열차가 생각이 났다. 근 50년 지나서 오늘 중앙선 동해남부선 열차가 달리는 길이 중학생 시절 방학 때 마다 외가가 있는 부산을 엄마와 함께 타고 다니던 그 기찻길이다.

청량리역을 출발 고향 의흥면이 가까운 우보역에서 승차. 화본역을 지나 영천, 경주, 울산, 남창, 월내, 좌천, 해운대를 지나서 부산 종착역을 왕복하던 3등 열차다.

기차가 영천역부터 정차하는 역마다 능금, 김밥, 삶은 계란을 차창 밖에서 들이미는 아주머니들의 ‘사이소!’ 전쟁이 벌어진다. 찐 고구마도 있었고 울산과 서생역은 ‘내 배 사이소!’ 아우성도 잊을 수 없다.

그때마다 엄마가 먹거리를 싸 주시던 시절이 갑자기 이토록 그리울 수 있을까 어릴 적 기찻길 추억이 아련히 떠오른다.

포항으로 달리는 기차가 산모퉁이를 지날 때 마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마구 흔들린다. 나도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처럼 지난 초여름 갑작스러운 건강 이상에 당황하여 중심을 잃고 몇 개월 허둥댈 때가 있었다.

좀 더 냉정하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한 후회와 자책을 느낀다. 다행히도 건강이 많이 회복되어 큰 염려는 없을 것 같다.

이런저런 생각에 들쑥날쑥 거리다 동해바다가 보이는 포항역에 낮 12시반경 도착했다. 1918년에 세워진 포항역은 처음 와봤다. 역에서 바로 보이는 대로를 15분 정도 걷다보니 죽도시장입구를 표시하는 아치형 간판이 보였다. 깨끗하게 단장한 재래시장이 반듯하고 농산물 코너마다 풍성했다. 해산물 센터에는 신선한 대게들이 넘쳐났고 북적거리는 관광객들 표정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어느 가게 앞에 이르니 이명박 대통령께서 죽도시장을 방문하던 중 점심을 맛있게 드셨다는 영상물과 큰 현수막이 눈에 띄어 우리 일행도 현수막을 따라 식당에 들어갔다. 포항이 자랑하는 물회와 소주로 점심을 푸짐하게 먹었다.

하루의 해가 조금씩 기울어져 가고 있다. 모두가 최선을 다하여 열심히 살아온 한해가 아니던가. 부산으로 되돌아오는 차창의 저무는 해가 아쉬운 이유는 지나간 시간의 추억과 미련때문이 아닐까.

올해의 마지막 여행에서 사라지는 것들의 소중함을 일일이 기억하고 싶다. 신묘년의 빛과 그림자를 담은 추억들이 저물어 간다.
12월엔 크리스마스가 기다려지고 한달음에 달려온 일 년의 발밑에 마지막으로 밟고 갈 몇 날의 긴 겨울밤만 남았다.

지금부터 새로운 희망 임진년의 반짝반짝 빛날 새해 아침을 맞이할 준비를 할 때다. 떠오르는 일출을 바라보면 힘찬 희망이 또다시 솟구칠 것이다.

군위농산 대표 황성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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