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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일연선사 표준진영 이대로 안 된다

admin 기자 입력 2012.08.10 15:04 수정 2012.08.10 03:04

↑↑ 상인 스님
ⓒ N군위신문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최고의 한국고대 역사서로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일연선사의 <삼국유사>를 들 수 있다. 앞의 <삼국사기>는 당대의 관료였던 김부식이 쓴 것으로 ‘정사’적이고, 왕권중심의 역사서다. 반면 <삼국유사>는 ‘야사’와 ‘설화’ 등 지역에서 전해지는 민족문화적 성격이 강한 역사서라 할 수 있다.

또 이해관계가 걸린 정략적인 측면이 있는 <삼국사기>와 달리 <삼국유사>는 내용이 자유롭고, 막힘이 없는 살아있는 역사서라 할 수 있다. 고조선의 개국과 단군신화가 공식적으로 기록돼 있어 우리 민족 중심의 역사인식을 엿볼 수 있으며, 향찰로 표기된 신라 향가와 민간에 내려오는 설화, 전설을 통해 수많은 고대사료를 수록하고 있는 생생한 타임머신이 곧 <삼국유사>다.

<삼국유사>는 그런 가치로 인해 고대사는 물론 고대문학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널리 활용이 되고 있다. 근대문학의 선구자인 육당 최남선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가운데 책의 가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기꺼이 <삼국유사>를 택하겠다고 말할 정도로 객관적인 위상도가 높은 역사서다.

역사적으로나 민족문화사에서 큰 족적을 남긴 일연선사의 위대한 삶은 아무리 칭송해도 후학으로서 아무런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일연선사의 진영이 잘못 전해지고 있다는 점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현재 일연선사 진영을 모시고 있는 곳은 경북 군위군 인각사와 경북 경산시 박물관이다. 1996년 문화체육관광부는 이달의 문화인물로 일연선사를 지정하면서 스님의 표준진영을 지정해 공식화 했다. 그때 지정된 표준진영이 문화관광부, 경산시를 비롯해 주요 기관에서 버젓이 통용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전문가들은 스님의 진영에 현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가사와 장삼이다. 고려시대 인물인 일연스님의 가사와 장삼이 조선시대 스님들의 복제로 돼 있다. 1996년 일연선사 진영 조성에 참여했던 경산대 조춘호 교수는 이와 관련해 수년전 현창산업 자문위원회의에서 이를 인정한 바 있으며, 동국대 문명대 명예교수 역시 같은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이에 2005년 문화관광부에 이의를 제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한 인물과 역사에 대한 중대한 오류는 반드시 수정돼야 한다. 잘못된 자료로 인해 후세에 혼돈과 왜곡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몇 백 년 전 과거를 온전하게 복원하기는 불가능한 일이지만, 최대한 오류를 줄여가는 작업을 회피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역사와 민족문화를 후세에 전달하기 위해 선조들이 노력한 결과가 지금의 우리 문화가 아닌가. 정치와 역사는 끝없는 부침을 거듭하지만, 삶과 의식에 축척된 정신적 지혜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 가치가 명료하기 빛난다.

온고지신, 법고창신이 전가(傳家) 보도(寶刀)는 절대 아니다. 관심과 애정으로 우리 문화와 역사, 불교를 지켜보는 수많은 사람들의 조용한 눈길을 나는 항상 느끼고 있다. 그런 까닭에 제대로 된 스승의 진영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우리의 왜소한 역사인식과 문화인식이 더욱 안타깝다.

문화사와 복식에 관련된 분야의 전문가들을 통해 철저한 고증과 검증, 학문적 성찰을 토대로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일연선사의 진영을 만들어 봉안하는 것은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될 과제다. 우리의 문화를 세계에 내놓기 위해서는 오류를 반드시 고치고, 최소화하려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중국은 지금 동북아공정을 통해 우리의 역사성마저 짓밟으려고 하고 있다. 아리랑을 중국의 문화로 소개하고,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 역사에 편입하려고 하고 있다.

몽고의 침입에 맞서 민족의 자존을 세우고자 했던 일연스님이 본다면 매우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일연스님의 진영을 제대로 복원하는 것은 그 정신을 되찾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의 찬란한 문화가 오늘날 마음껏 꽃피우기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들의 정성을 결집해, 제대로 된 일연선사 진영이 만들어지기를 발원한다.

제천 정방사 주지 상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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