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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糟糠之妻(조강지처)

admin 기자 입력 2012.09.09 22:27 수정 2012.09.09 10:27

↑↑ 박종영 사무국장
ⓒ N군위신문
송홍(宋弘)은 광무제 때, 대사공(大司公)으로 정직하고 온후한 성품으로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었다.
당시 광무제는 송홍에게 자기를 곁에서 보좌해 줄 박학다식하고 재능 있는 사람을 추천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송홍은 그 자리에서 환담(桓譚)을 천거하면 이렇게 말하였다.

“환담의 학문은 전한(前漢)때의 양웅(揚雄)이나 유향(劉向)과 견줄만한 인물입니다. 그 사람이라면 폐하를 잘 보필할 수 있으리라 사려 되옵니다.”

송홍의 말을 들은 광무제는 즉시 환담을 불러서 사중(事中)에 임명하여 자신의 주변에서 일하게 하였다. 또한 연회가 베풀어질 때마다 그에게 거문고를 타게 하였다. 환담은 그때마다 정나라의 음악을 연주하여 광무제를 즐겁게 하였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송홍은 크게 노하여 사람을 시켜 환담을 불러 “정나라의 음악은 음탕하여 예로부터 성현들도 이를 듣기를 꺼려하였거늘 그때는 어찌 그런 음악을 황제께 들려 드리는가? 그것이 황제를 보필하는 자로서 할 행동인가?”라며 꾸짖었다.

또 송홍은 곧바로 입궐하여 광무제에게 사죄하며 말하기를 “제가 환담을 천거 드린 것은 그가 충성스러운 마음으로 황실을 바로잡기를 바랐기 때문이나 오늘 궁중에서는 정성(鄭聲)을 즐겨 듣고 그 소리가 끊이지 않으니 모두 저의 불찰입니다. 저를 벌해 주십시오.”

스스로 벌을 청하는 송홍의 말을 듣자, 광무제는 내심 부끄러움을 느끼며 말하기를 “아닐세. 이 모든 것은 내 잘못으로 누구의 죄도 아니네.”라고 하였다.

이 사건으로 황제는 환담을 파직시키고 송홍의 사람됨에 더욱 더 탄복하였다.
당시 광무제에게는 손위 누이인 호양공주(湖陽公主)가 있었는데 남편을 일찍 여의고 과부가 되었다. 광무제는 누이가 혼자 몸이 된 것을 안타깝게 여겨 은밀히 신하들 가운데 배필이 될 만한 사람을 물색하고 있었다.

한 번은 광무제와 호양공주가 담론하던 중 신하들의 됨됨이에 대한 이야기가 거론되었다. 이 때 호양공주가 “인품이나 기량 어느 면으로 보아도 송홍을 따를 사람이 없어요”라고 말했다.
그녀의 말을 들은 광무제는 누이가 송홍에게 마음이 있음을 알고 조용히 송홍을 불러 물었다.

“속담에 이르기를 사람이 지위가 높아지면 옛 친구를 버리고 지위가 높은 다른 사람들을 사귀려 하고 부자가 되면 아내를 새로 바꾸려 한다는데… 그대는 그것이 인지상정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송홍은 정색을 하면서 대답하였다.
“신은 어려울 때 사귄 친구를 결코 잊어서는 안 되고 함께 환난을 겪은 아내는 환경이 어떻게 바뀌든 간에 절대 버려서는 안 된다고 들었습니다(貧賤支交不可忘 糟糠之妻不可堂).”
그의 말을 들은 광무제는 호양공주를 그에게 시집보내려던 계획을 포기하였다.

이 고사는 <후한서>‘송홍전(宋弘傳)’에 기록되어 있으며 이때부터 송홍이 말한 조강지처(糟糠之妻)를 가난할 때 얻은 아내는 함께 환난을 겪었으니 고관대작이 되었다 해서 그녀를 버릴 수 없다는 뜻으로 비유하고 있다. 또 가난을 함께 헤쳐 나온 아내를 뜻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조강’은 술지게미와 쌀겨로 가난하여 보잘 것 없는 것을 먹으며 고생을 함께 하면서 살아온 아내를 말한다.
지금 우리들의 세대에서도 ‘조강지처’라는 옛 성현들의 말씀이 삶에 대한 지혜와 덕목으로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이혼율이 급격히 늘어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부부간에 서로의 잘잘못을 용서하고 양보도 하면서 “미워도 한 세상 좋아도 한 세상 마음을 달래며 웃으며 살리라” 나훈아 노랫말처럼 항상 즐겁고 행복한 생활을 영위하시길 빌어 봅니다.

재부군위군향우회 사무국장 박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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