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메뉴 바로가기 본문 바로가기

more
인물 독자마당

효령이 동해를 건너 일본에 정착하다

admin 기자 입력 2012.10.04 10:55 수정 2012.10.04 10:55

↑↑ 김완수 소장
ⓒ N군위신문
근래에 강원도 동해시에서 일본 돗토리현을 오고가는 선박관광길이 개발되어 많은 사람들이 저렴하게 일본을 관광할 수 있게 되었다. 동해를 바라보고 있는 돗토리현에는 조선시대 강원도 평해 사람 12명이 탄 배가 표류하여 이곳 고토우라정(琴浦町)해변에 도착한 것을 기념하여 만든 한일우호교류공원이 있으며 또 현립도서관에는 1819년에 표류하여 온 조선인 12명을 그린 족자가 남아있다. 그 그림 속에는 상투를 들어낸 남자 11명과 갓 쓴 남자 1인과 《죠션국 강원도……》라는 한글설명과 조선인 12명의 이름이 남아있다.

선사시대부터 우리조상들이 옮겨가 살았던 돗토리현(돗토리는 우리말의 도토리가 변한 말이다.)의 다이센정(大仙町)에는 유서 깊은 명산 3개가 있는데 다이센(大山), 코레이산(孝靈山), 센조산(船上山)을 말한다.

이들 가운데 가장 높은 다이센 기슭에는 야요이시대(弥生時代, 서기전 3세기에서 서기 3세기까지의 600년을 나타낸다)의 무키반다(妻木晩田)유적이 있는데 이곳은 170헥타르(1헥타르는 1만 제곱미터)로 야요이인이 대규모로 촌락을 이루었던 땅이다. 이러한 야요이시대는 시기적으로는 우리의 삼한시대에 해당되지만 문화적으로는 우리보다 훨씬 뒤떨어진 원시시대에 해당된다.

또 코레이산은 다이센정과 요나고시 경계에 있는 산으로 한반도(고구려)에서 옮겨왔다고 해서 고려산(高麗山, 瓦山, 韓山, 고마야마)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이 산에 얽힌 전설의 주인공이 孝靈(효령)이라는 이름을 가지는 ‘일본 결사8대왕(欠史八代王)’의 한 사람인 것이다.

이 결사8대왕은 ‘일본역사에서 누락된 왕’이라는 의미이지만 실제의 일본천황이 아닌 허구의 왕 8명(2대∼9대)을 말한다. 이러한 사실만으로도 일본은 스스로 역사왜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알 수 있다.

일본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사서 「기기」( 8세기 초에 완성된 고사기와 일본서기를 말한다)에서는 ‘결사8대왕’가운데 제7째 왕을 코레이(孝靈, 효령)천황이라 이름 짓고 서기전 290년 1월 12일에서 215년 2월 8일까지 75년간 재위하였다고 하며 또 다른 기록에서는 부여 왕 의려가 선비족 모용외에게 쫓기어 일본 땅에 와서 효령천황(261∼316년)이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어떻든 효령이라는 이름의 천황이야기는 돗토리현의 코레이산 설화를 빌려 쓴 것이다. 이것으로서 우리들은 일본역사가들이 다이센지방의 민화를 각색하여 일본역사에 효령(孝靈)을 천황으로 거짓부리한 것을 알 수 있다. 즉 다이센 주민들에게는 옛날부터 전승되어온 ‘효령신화’가 있었음이 확실하다.

그렇다면 다이센의 ‘효령’과 군위의 ‘효령’을 서로 비교하면 어떨까? 물론 이주시기와 이주경로가 확실하지 않아 명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의 모든 신화는 한반도에서 건너간 이주민들의 역사임이 확실하기 때문에 우리역사를 앞에 두고 일본신화를 재해석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현재 모든 역사가들이 공통으로 인식하고 있는 보편적인 사고이며 또 일본의 역사왜곡을 반박하고 물리치는 확실한 방법이 된다. 그렇지만 필자는 이러한 글이 또 다른 역사왜곡을 만드는 빌미가 될지 두려움이 앞선다.

이곳 돗도리현의 코레이산과 다이센에서 동쪽으로 비켜 떨어진 곳에 센조산(船上山)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산이 있다. 산 이름에서 풍기는 맛과 같이 센조산은 고대 한반도 사람들이 그들이 살던 곳의 산을 통째로 배에 옮겨 싣고 동해를 건너 왔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전승은 그들 부족이 이제까지 믿어오던 영산(靈山)이 천재지변으로 사라져버려(나라가 망하다) 새로운 영산을 찾아 일본으로 이주한 부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래서인지 현재도 이곳 사람들은 이 산을 신령스러운 산으로 숭배하고 있다.

군위읍 상곡리에도 돗토리현의 센조산(船上山)과 이름이 비슷한 선방산(船放山)이 있다. 아마 이러한 산 이름들은 같은 생각과 전통을 가진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언어활동이다.
이상과 같이 돗토리현의 명산들에 내려오고 있는 전승설화는 고대 한반도 사람들이 돗토리현으로 이주하였다는 역사적 사실을 증명하는 신화이다.

이러한 사실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돗토리현에는 한국에서 건너간 온돌과 숟가락이 이곳의 후니오까(不入岡)와 오미도(大御堂)폐사에서 각각 발굴되었다고 한다. 앞으로 더 많은 한반도계의 유물이 잇달아 발굴될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가야가 멸망하고 난 뒤 6∼7세기 효령에 살았던 가야계 난민들이 신라를 등지고 바다를 건너 일본 돗토리현으로 이주하였다고 가정한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이다.

정진홍선생은 ‘신화와 역사의 긴장’이라는 칼럼에서 사람들은 신화를 역사이전의 시대에 있었던 지어낸 이야기라고 단정하여왔거나, 또는 신화를 원시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유치한 이야기라고 말하여 왔지만 이제는 이러한 생각을 바꾸어 신화는 의미가 담겨있는 역사이고 또 역사를 도구로 삼아 쓴 시(詩)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고 하였다.

이제 우리는 신화의 형태로 나타나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이제는 신화라는 이야기가 아닌 ‘역사 이야기’로 인식하여 소중히 다루어야 할 때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군위문화원 향토사연구소장 赤羅 김완수


저작권자 N군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