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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어느 시어머니의 고백

admin 기자 입력 2012.10.15 16:45 수정 2012.10.15 04:45

↑↑ 김종오 부총재
ⓒ N군위신문
저는 얼마 전까지는 그래도 하루하루 사는 기대를 가졌었답니다. 차마 제 주위에 아는 사람들에겐 부끄러워 말할 수 없었던 한 달 여 동안의 내 가슴속 멍을 털어 보고자 이렇게 어렵게 글을 적어 봅니다.

내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 고등학교 때 남편을 잃고 혼자 몸으로 대학 보내고 집장만해서 장가를 보냈죠. 이만큼이 부모로써 할 역할이라고 생각 했습니다.
이제 아들놈 장가보내 놓았으니 효도 한 번 받아보자 싶은 욕심에 아들놈 내외를 끼고 살고 있습니다. 집 장만 따로 해 줄 형편이 안 되어 내 명의로 있던 집을 아들명의로 바꿔 놓고는 함께 살고 있지요.

남편 먼저 세상 떠난 후 아들 대학까지 공부 가르치느라 공장일이며, 때밀이며, 파출부며, 안 해 본 일이 없이 고생을 해서인지 몸이 성한 데가 없어도 어쩐지 아들 내외한테는 쉽게 어디 아프다고 말하기가 왜 그렇게 눈치가 보이는지…

무릎관절이 안 좋아서 매번 며느리한테 병원비 타서 병원 다니는 내 신세가 왜 그렇게 한스럽던지. 참, 모든 시어머니들이 이렇게 며느리랑 함께 살면서 눈치 보면서 알게 모르게 병들고 있을 겁니다.

어디 식당에 일이라도 다니고 싶어도 다리가 아파서 서서 일을 할 수가 없으니 아들한테 짐만 된 거 같은 생각마저 듭니다. 며느리가 용돈을 처음엔 꼬박 잘 챙겨 주더니 이년 전 다리가 아파서 병원을 다니면서부터는 제 병원비 탓인지 용돈도 뜸해지더라고요. 그래도 이따금씩 아들놈이 지 용돈 쪼개서 꼬깃꼬깃 주는 그 만 원짜리 서너 장에 내가 아들놈은 잘 키웠지 하며 스스로를 달래며 살았지요.

그런데 이따금씩 만나는 초등학교 친구들한테 밥 한 끼 사주지 못하고 얻어만 먹는 게 너무 미안해서 용돈을 조금씩 모았는데 간혹 며느리한테 미안해서 병원비 달라 소리 못할 때마다 그 모아둔 용돈 다 들어 쓰고 또 빈털터리가 되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친구들한테 맘먹고 밥한 번 사야겠단 생각에 아들놈 퇴근 길목을 지키고 서 있다가 “야야, 용돈 좀 다오. 엄마 친구들한테 매번 밥 얻어먹기 미안해서 조만간 밥 한 끼 꼭 좀 사야 안 되겠나” 어렵게 말을 꺼냈더니만 아들놈 하는 말이 “엄마, 집사람한테 이야기할게요” 그러곤 들어가지 뭐예요. 내가 괜히 말을 꺼냈는가 싶기도 하고 며느리 눈치 볼 일이 또 까마득했어요.

그렇게 아들놈한테 용돈 이야길 한지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답이 없길래 직접 며느리한테 “아가야, 내 용돈 쫌만 다오. 친구들한테 하도 밥을 얻어먹었더니 미안해서 밥 한끼 살라한다” 했더니 며느리 아무 표정도 없이 4만원을 챙겨 들고 와서는 내밀더라고요. 4만원 가지고는 15명이나 되는 모임친구들 5000원짜리 국밥 한 그릇도 못 먹이겠다 싶어서 다음날 또 며느리를 붙들고 용돈 좀 다오 했더니 2만원을 챙겨 주었어요. 그렇게 세 차례나 용돈 이야길 꺼내서 받은 돈이 채 10만원이 안되었지요. 그래서 어차피 내가 밥 사긴 틀렸다 싶어서 괜한 짓을 했나 후회도 되고 가만 생각해 보니깐 괜히 돈을 달랬나 싶어지기에 며느리한테 세 번에 거쳐 받은 10만원 안 되는 돈을 들고 며느리 방으로 가서 화장대 서랍에 돈을 넣어 뒀지요. 그런데 그 서랍 속에 며느리 가계부가 있더라고요.

난 그냥 우리 며느리가 알뜰살뜰 가계부도 다 쓰는구나 싶은 생각에 가계부를 열어 읽어 나가기 시작을 했는데 그 순간이 지금까지 평생 후회할 순간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글쎄, 9월14일 왠수 40,000원 9월15일 왠수 20,000원 9월17일 또 왠수 20,000원 처음엔 이 글이 뭔가 한참을 들여다봤는데 날짜며 금액이 내가 며느리한테 용돈을 달래서 받아 간 걸 적어 둔 거였어요.

나는 그 순간 하늘이 노랗고 숨이 탁 막혀서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남편 생각에 아니, 인생 헛살았구나 싶은 생각에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한참을 멍하니 있다가 들고 들어갔던 돈을 다시 집어 들고 나와서 이걸 아들한테 이야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는가 생각을 했는데 차마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이 이야길 하면 난 다시는 며느리랑 아들 얼굴을 보고 함께 한집에서 살 수가 없을 거 같았으니까요. 그런 생각에 더 비참해지더라고요. 그렇게 한 달 전 내 가슴속에 멍이 들어 한 10년은 더 늙은 듯 하네요.

얼마 전 들은 그 90대 노부부의 기사를 듣고 나니깐 그 노부부의 심정이 이해가 가더군요. 아마도 자식들 짐 덜어 주고자 자살을 선택하지 않았나 싶어요. 며느리랑 아들한테 평생의 짐이 된 단 생각이 들 때면 가끔 더 추해지기 전에 죽어야 할 텐데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도 이제 곧 손자 녀석도 태어 날 텐데 자꾸 그때 그 며느리의 가계부 한마디 때문에 이렇게 멍들어서 더 늙어 가면 안 되지 싶은 생각에 오늘도 수십 번도 더 마음을 달래며 고치며 그 가계부의 왠수란 두 글자를 잊어보려 합니다.

이젠 자식 뒷바라지에 다 늙고 몸 어디 성한데도 없고 일거리도 없이 이렇게 하루하루를 무의미 하게 지내는 일이 얼마나 힘든 일과 인지 모르시죠?
이 세상 부모로서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자식한테 받는 소외감은 사는 의미뿐만 아니라 지금껏 살아 왔던 의미까지도 무의미해진다고 말입니다.

며느리 눈치 안보고 곧 태어날 손주 녀석만 생각하렵니다. 요즘은 내가 혹시 치매에 걸리지나 않을까 싶은 두려움에 책도 읽고 인터넷 고스톱도 치면서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옮긴글 (사)충·효·예실천운동본부 부총재 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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