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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자랑스런 우리 대한민국의 발전상

admin 기자 입력 2012.10.26 19:14 수정 2012.10.26 07:14

↑↑ 김종오 부총재
ⓒ N군위신문
우리나라는 6·25사변 직후만 해도 세계에서 끝에서 두 번째로 못사는 후진국이었다. 그런 가난한 나라가 이제 당당히 세계 강대국들과 같이 나란히 우뚝 서게 되었으니 누구나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우리나라는 정말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놀랄만큼 성장했다. 우리가 이런 자랑스러운 나라를 우리 후세에 물려주게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하고 다행한 일인가?

0. 선진국 대열에 들어선 대한민국

“명태와 조선 사람은 그저 두들겨야 해” 그리고 “엽전이하는 게 다 그렇지 뭐” 이렇게 일본사람들이 우리를 입버릇처럼 깎아내려 말하던 때도 있었다. 정말 우리는 그랬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더 이상 후진국도 개발도상국도 아니다. 이제 나도 모르는 사이에 꿈에도 그리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다.

과거 우리나라는 미국이나 일본 등 선진국으로부터 자기들의 특허를 훔쳐 갔다고 고소를 당하거나 벌금을 물어오던 처지였는데, 지금은 오히려 우리의 특허를 그들이 훔쳐 갔다고 선진국을 향해 당당하게 국제 재판소에 맞고소하는 입장이 되어버렸다.

2차 대전 후 우리나라처럼 외국의 원조를 받아 겨우 살아오던 많은 나라들이 그 나라의 부패한 정치인에 의해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꼴이 된 나라가 수두룩하다.

선진국의 식민지였다가 2차 대전이 끝난 다음 자립능력도 없는 상태에서 독립했던 저 남태평양이나 아프리카의 나라들 대부분은 지금까지도 가난과 내전에 시달리고 있다. 오히려 식민지 상태로 그냥 남아있는 나라들은 거의가 다잘 살고 있다.

이와 같이, 만약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독립 후 지금까지 북한처럼 굶어죽고 못 사는 나라로 남아 있었더라면, 일본의 기만적 한일합방은 일본 주장대로 정당화 되어 일본사람들로부터 “거봐라” 라고 조롱받을 뻔 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새로이 탄생하거나 식민지로 있다가 독립한 나라가 85개국이다. 이 85개국 가운데 산업화와 민주화에 모두 성공한 나라는 유일하게 우리 대한민국뿐이다.
경제대국인 일본이, 한때 “한국의 삼성, LG, 현대, 포스코가 우리 뒤를 바짝 쫓아온다”고 경계 하더니, 지금은 “더 이상 밀리면 안 돼”로 구호가 바뀌었다고 한다.

한때, SONY를 포함한 일본의 세계적인 전자회사 10개사가 낸 흑자를 합한 것 보다 삼성SDI 한 회사가 낸 흑자가 더 많다고 한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지만 사실이란다.

1950년대에 일본 마쯔시다 전자회사 사장이 미국에 가서 어느 대학생이 써낸 트렌지스터 논문을 헐값에 사들여 아주 작은 휴대용 트랜지스타를 개발해서 크게 재미를 봤다. 이것이 시발점이 되어 각종 전자 제품을 세계시장에 내다팔아 수십 년 동안 호황을 누리면서 많은 돈을 긁어모았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삼성 이건희 회장이 모험을 무릅쓰고 IT산업에 뛰어들어 시작한 것이 오늘날 한국이 세계 IT강국으로 우뚝 솟은 계기가 되었다.

오늘날 중국이 놀라운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은 등소평이 한국의 박정희식 단축 경제 정책을 그대로 복사해서 실천에 옮겨 성공한 첫 번째 성공한 사례다. 중국은 하나부터 열 가지 그대로 우리 것을 모방했다.

중국에는 한국을 연구하는 박사급 인사 3천여 명이 한국을 집중 연구하고 있다고 한다.
역사상 중국은 대국으로 우리는 소국으로 지내왔다. 그들은 우리를 별 볼일 없는 변방 소국으로 여겨왔다. 그러던 우리나라를 기를 쓰고 배우려하고 있으니 이게 얼마나 자랑스러운가.

지금으로부터 꼭 100년 전, 이준 열사가 고종황제의 지시에 따라 네덜란드 헤이그 만국 평화회의에 가서 우리가 일본에 당한 억울함을 전 세계에 호소하려 했지만 회의장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수모를 당했다.

참가국 명단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없다는 이유였다. 회의에 참석조차 못하게 되자 이준 열사는 그 자리에서 할복자살 했다. 그랬던 우리나라가 오늘날 G20국제회의의 의장국으로 우뚝 섰다. 그리고 우리나라 대통령이 선진국 정상들을 향해 이래라 저래라 훈수까지 하고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세계역사상 이런 나라가 우리 말고 또 어디 있나. 라스베가스와 독일 등지에서 열린 전세계 전자 제품 전시장에서 우리나라의 삼성과 LG가 판을 치고 있다. 그 많은 선진국들을 다 제치고 말이다.

또 세계 유명백화점 전자제품 코너 진열대에 단연 한국제품이 맨 앞줄에 진열 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도 명품으로 제일 비싼 값에 팔리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직업 축구단 첼시의 후원 회사가 삼성이고, 전 세계가 보는 그 유니폼에 SAMSUNG마크가 나온다.

한때 일본·미국 사람들이 SONY를 미국회사로 잘못 알고 있었듯이, 우리나라 SAMSUNG이 너무 엄청 큰 회사가 되다보니 일본 브랜드로 잘못 알고 있는 사람들이 허다하다고 한다. 삼성, LG전자는 전세계TV판매에서 1, 2위를 차치지했으며 세계 TV 3대중 1대는 한국 것이고 미국에서는 2대중 1대가 한국 것이다.

과거에는 한국 의사들이 미국에 가서 간 이식 수술 연수를 받아 왔는데, 10여년이 지난 오늘 날에는 미국 교수와 의료진이 오히려 한국에 와서 간 이식 수술 연수를 받고 있다. 연수를 받던 나라에서 가르쳐주는 나라로 바뀐 것이다.

또 우리나라의 대형 병원들의 각종 암 수술 성적이 이미 세계적인 수준급이란 것은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가령 미국 오바마 대통령이 여행 중 급하게 병원 갈 일이 생겼을 때, 백악관에서 공식으로 지정한 병원이 첫째는 독일의 마이츠 미국 공군기지 병원이고 두번째가 우리나라 삼성 서울병원이다. 일본, 싱가포르, 홍콩의 병원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의료기술, 의료보험, 아동·노인복지, 연금 제도 등은 모두 세계 수준급이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나라는 70년대부터 2010년까지 10년씩 무려 네 번이나 쉬지 않고 계속 전국 곳곳을 뒤집어엎고 또 뒤집어엎었다. 손 안댄 곳이 거의 없을 정도다. 그러니 문자 그대로 천지개벽한 나라가 됐다.

우리나라의 지방을 자동차로 달리다 보면, 어느 북유럽 선진국에 온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있다. 쭉쭉 뻗은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가는 곳 마다 우뚝 서있는 고층 아파트군, 잘 정리된 하천과 논밭 등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예전의 자갈 길, 초라한 초가집, 달구지, 소가 밭을 가는 모습, 지개를 진 모습 등은 볼 수가 없다.

이민 갔다가 오랜만에 고국에 돌아온 친지들에게 이런 것들을 마치 내 것이 이렇게 변한 것처럼 신나게 보여 주며 자랑도 할 수 있는 우리지만, 만약 우리나라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옛 그대로라면 얼굴을 들지도 못하는 처량한 모습일 것을 한번 상상해 본다. 오랜만에 돌아온 그들의 눈에는 모두가 놀랍게 보일 뿐이다. 후일 통일이 되면 북한에 남아 있는 우리 친척, 친지에게도 이것을 보여 주자.

20여년 전 미국이 일본에 무역 역조로 어려운 상황일 때, 일본 사람보고 왜 우리 물건을 안 팔아 주느냐고 하니까, 너희 것이 우리 제품보다 더 좋게 만들었다면 왜 안 팔아 주겠냐고 역으로 대들었다고 했다. 이걸 보고 우리는 얼마나 일본을 부러워했는가.

그 때만 해도 Made in USA가 세계 최고였는데… 지금 우리나라가 그렇게 되었다. 우리 것이 세계 최고다. 굳이 미제, 일제 조금도 부럽지 않다. 이것은 꿈이 아니다. 아직도 미제, 일제만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과거 수십년간 UN기구에서 후진국의 발가벗은 산을 녹화시키기 위해 해마다 막대한 자금을 퍼부었다. 하지만, 지원받은 나라 중 유일하게 산림녹화에 성공한 나라는 한국뿐이다. 우린 모범 국가요 또 모범 민족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한강물을 식수로 마셨다. 그러나 산업이 발달하면서 한강물은 구정물로 변했다. 물고기들이 다 죽었다. 인구 천만이 넘는 대도시, 거기에다 공장 폐수가 마구 흘러나오니 어찌할 수 없는 현실이라고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영국 런던의 템스 강에도 우리와 똑같은 현상이 벌어졌는데, 끈질긴 노력 끝에 강물이 맑아지고 물고기가 다시 살게 되고, 식수로도 쓸 수 있도록 강을 새로이 살려 냈다. 우리는 이 기적 같은 현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다시 한강 물을 식수로 사용하게 되었다. 낚시도 한다.
한강의 기적, 그것은 한국의 경제 발전만을 상징하는 구호만은 아니었다.

1997년 우리나라는 달러 부족으로 국가 부도가 날 뻔 한 적이 있었다. 할 수 없이 IMF의 신세를 지게 됐다. 그 때 우리 국민은 너도 나도 금반지 목걸이 등을 아낌없이 갖고 나와 짧은 기간에 IMF의 늪에서 거뜬히 빠져 나왔다. 조국이 도탄에 빠졌을 때 해외에 나가있던 교포들까지 총동원 되었다. 이런 나라가 대한민국 말고 또 어디에 있단 말인가, 지금은 외환 보유고가 3,000억 불이 넘는 외환 보유 강국으로 보란 듯이 우뚝 서게 됐다.

영국 어느 대학과 자매결연을 맺은 성균관대학교에서 있었던 일이다. 영국에서 우리나라를 방문한 교수진에게 민속촌을 구경시켰는데, 옛날 우리나라 풍속인 대장간, 달구지, 지게, 집신, 초가집 등을 다 둘러보고 이런 때가 몇 백년 전의 모습이냐고 하는 질문에, 약 30년 전의 모습이라고 설명하니, 300년을 30년으로 잘못 통역하는 줄 알고, three hundred냐, thirty냐고 반문하며 믿기 어렵다는 듯이 고개를 갸우뚱했다고 한다. 불과 30년 이라는 짧은 세월에 이렇게 급변한 것은 기적에 가깝다고 감탄했다고 한다.

이와같은 발전의 동기는 1970년대 박정희 대통령의 새마을운동과 산업화 정책을 온 국민들의 근면정신으로 이어져 획기적으로 발전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다음호에 계속-----

충·효·예 실천운동본부 부총재 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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