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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극필반(物極必反) ※사물의 발전이 극에 이르면 반전한다

admin 기자 입력 2012.11.22 10:59 수정 2012.11.22 10:59

↑↑ 박종영 사무국장
ⓒ N군위신문
무조(武조)는 문수(文水 : 산서성) 사람으로 태종의 후궁 가운데 한사람이 이었으며, 중국 역사상 유일하게 황제 자리에도 오르고 여황제가 되기도 한 인물이니 그녀가 바로 유명한 측천무후 황제이다.

흔히들 그녀가 여황제가 되기까지 온간 악독한 일을 눈 하나 깜짝 아니하고 저질러왔기에 그녀에 대한 대부분의 이야기가 악행에 관여한 일들만 알고 있고 다른 한편으로는 그녀가 뛰어난 여정치가임을 일부 사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그런 이유들로 인해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황제가 된 것이다. 태종의 후궁이었던 그녀는 태종이 죽자 후사가 없는 다른 후궁들과 함께 감업사(感業寺)에 들어가 비구니가 되었다 그런데 태종의 뒤를 이어 제위에 오른 고종 치(治)가 후궁을 총애하고 황후를 돌보지 않자 황후는 무조의 미모를 이용하여 고종과 후궁사이를 멀어지게 하였다.

그러자 평생 비구니로 꽃다운 청춘을 썩게 되리라 여겼던 무조는 새로운 기회를 얻어 고종과 황후에게 온갖 정성을 다했고 고종은 더 이상 다른 후궁들을 거들떠 보지 않고 그녀를 후궁으로 삼았다.

이것을 가장 기뻐한 사람은 황후였으나 그녀가 어찌 무조라는 아름다운 여자의 내면 깊숙이 숨겨진 권력욕을 눈치 챌 수가 있었으랴. 고종의 총애를 독점한 무조는 마침내 자기에게 새로운 기회를 주었던 황후조차 몰아내고 마침내 황후의 자리에 올랐다.

그녀는 병약한 고종을 대신하여 차츰 국정을 다스리기 시작하다 고종이 죽고 중종(中宗)이 즉위하자 섭정을 했다. 그러나 섭정만으로 만족하지 못한 그녀는 중종을 폐위시키고 자기가 황제의 제위를 차지하였다. 또한 그녀는 국호 도주(周)로 스스로 신성황제(神聖皇帝)또는 측천황제(則天皇帝)라고 칭하였다.

이 사건으로 황실은 무씨(武氏)의 천하로 바뀌었다. 측천황제는 처음 중종의 나이가 어려 국정을 처리하지 못한다 하여 섭정하였으나 중종이 이미 국가대사를 처리할 수 있는 나이에 이르렀음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때 대신 소안환(蘇安桓)이 그녀에게 상소를 올려 간언하였다. 태자(중종)의 나이가 이미 성년에 이르러 사리를 판단할 줄 알며 대덕 또한 훌륭하신데 아직 보좌를 탐하는 것은 모자의 정분을 잊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황제도 시간을 언제까지나 연장시킬 수는 없습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하늘의 뜻과 백성들의 마음은 모두 이 씨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아직까지 편안하게 황위에 있지만 모든 사물이 극에 달하면 반드시 반전하고 그릇에 물이 가득차면 쏟아진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제가 이렇게 생명의 위엄을 무릅쓰고 간언하는 것은 당의 천하를 위해서 생각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유래한 물극필반(物極必反)은 사람들이 일을 함에 너무나 지나치지 말라는 권고의 뜻이 포함되어 있다. 이 성어에는 역간의 발전에 대한 질투의 뜻도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가 있으니 사용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물극필반(物極必反):사물은 어느 정도까지 차면 본래로 돌아가는 법이다. 회남자(淮南子), 태족훈(泰族訓)편에 “이 세상 온갖 현상은 극점에 도달하면 원래의 상태로 되돌아가며 가득차면 줄어가는 것이 순리이며 사물에 있는 융성과 쇠약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재부군위군향우회 사무국장 박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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