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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기화가거(奇貨可居)

admin 기자 입력 2012.12.04 19:36 수정 2012.12.04 07:36

↑↑ 박종영 사무국장
ⓒ N군위신문
여불위(呂不韋)는 전국시대 위(韋)나라 복양(濮陽: 지금의 하남성 복양 서남) 사람으로 양적(陽翟)의 대상인이었다.

그는 당시 각국을 다니면서 장사를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조(趙)의 수도 한단에 갔을 때에 진 소양왕(昭襄王)의 손자인 이인(異人)이 조나라의 인질이 되어 총대(叢臺)라는 곳에 갇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고국에서 지원도 끊어지고 가지고 온 은자와 패물도 다 써버린 이인은 생활용품을 살 돈마저 없어 아주 궁색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여불위는 ‘이것은 간직해 둘 만한 값어치가 있는 진기한 물건이다’이라며 혼자 중얼 거렸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자마자 부친에게 물었다.

“밭을 갈아서 생기는 이익은 몇 배나 되겠습니까?”
“열배는 되겠지.”
“그럼 주보(珠寶)를 팔아서 생기는 이익은요?”
“아마 백배는 되겠지.”
“만약 왕이 될 사람을 도와 천하를 장악케 된다면 이런 일은 몇 배의 이익을 보겠습니까?”

그의 부친은 웃으며 말했다. “어떻게 그런 사람을 얻어 왕이 되게 도와줄 수 있겠느냐? 그러나 만약 그러한 기회를 얻게 된다면 그 이익은 천만배가 되겠지. 아마도 계산할 수 없을 것이다.”

그 후 여불위는 돈을 가지고 가 이인을 감독하고 있는 조나라의 대부 공손건(公孫乾)에게 접근하여 그와 교류했다. 그리고 그의 집에 자주 드나들면서 그의 소개로 이인과 서로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그때부터 여불위는 이인의 처지를 동정하는 척하며 경제적인 도움을 주었으며 자주 이인을 찾아 그의 신임을 얻었다.

이인이 자기에게 진심으로 고마움을 느낀다는 것을 안 여불위는 어느 날 이인을 찾아가서 조용히 말했다. “천금을 가지고 진나라에 가서 태자와 태자의 총희 화양(華陽)부인을 찾아가 조나라의 인질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 달라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인은 당연히 그렇게 하고 싶었으나 어디 가서 천금이라는 돈을 마련하겠는가하며 한숨 쉬자 여불위가 말했다.
“제게 돈이 있으니 걱정 마시고 공자님은 태자와 화양부인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간절한 내용의 편지를 한통 써 주십시오. 그러면 제가 두 분을 만나서 설득해 보겠습니다.”

이 같은 여불위의 말을 들은 이인은 크게 감격하여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여불위에게 큰 절을 올리며 이다음에 그의 은혜를 반드시 잊지 않고 갚겠다고 말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여불위는 이인이 쓴 편지와 자신이 준비한 귀한 보물과 돈을 가지고 태자와 슬하에 자식이 없는 화양부인을 찾아가 설득했다. 이러한 여불위의 계획은 성공하게 되고 이인은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귀국한 이인은 태자와 화양부인에게 지극한 효심을 다하여 화양부인의 환심을 샀고 마침내 화양부인은 이인을 자신의 양자로 삼았으며 태자 안국군(安國君)은 이인의 이름을 개명시켜 자초(子楚)라 했다.

훗날 진나라 소양왕(昭襄王)과 효문왕(孝文王: 태자)이 연달아 서거하여 자초가 왕위를 계승하여 장양왕(庄襄王)이 되었다.

이 장양왕의 아들이 바로 중국 천하통일의 위업을 달성한 ‘진시황제’이다. 장양왕은 오랜 세월 그를 도와준 여불위의 공로를 인정하여 그를 승상으로 삼고 문신후(文信侯)로 봉했다.
이 고사에서 여불위는 이인을 처음 본 그때부터 그의 약삭빠른 장삿속으로 계산하여 이인이라는 물건을 손에 넣었다가 가격이 오르기를 기다린 다음 막대한 재물을 벌어들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여불위가 이인을 처음 보았을 때 했던 기화가거(奇貨可居)라는 말을 어떤 물건 또는 재능과 학식 기능을 쌓아 두었다가 가격이 좋거나 좋은 기회가 있을 때 까지 기다린다는 뜻으로 사용한다.

기화가거: 진기한 물건을 사 두었다가 훗날 큰 이익을 얻게 한다는 뜻으로 곧 좋은 기회를 기다려 큰 이익을 얻음. 훗날 이용할 수 있는 사람을 돌봐주며 기회가 오기를 기다린다 등으로 널리 사용됨.

재부군위군향우회 사무국장 박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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