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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젊은이들이여 노인(老人)들을 사지(死地)로 내몰지 마라

admin 기자 입력 2013.03.28 10:47 수정 2013.03.28 10:47

↑↑ 김종오 부총재
ⓒ N군위신문
이번 대통령 선거 결과를 보고 화가 난 일부 젊은이들이 “노인들 지하철 무임승차를 없애자”, “노령연금도 없애자”고 외처서 사회적인 이슈가 되기도 하고 심지어는 청원운동이 벌어져 몇 천 명의 서명이 이루어 졌다는 소식을 들은 지가 어느새 꽤나 지났다.
젊은이들의 절규하는 이유를 모르는바가 아니고, 얼마나 절망스러웠으면 그런 극언까지 했을까 하는 안쓰러운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번 일의 이면에는 그 젊은이들은 해당되지 않겠지만 약 25%정도 투표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에게 더 큰 책임이 있다는 생각을 하지는 않았는지 묻고 싶었다. 나는 이번선거를 앞두고 어느 신문의 기고문에서 특정인을 지지했지만 나중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나올 것 같아서 지난 뒤에 후회하지 말고, 반드시 자기의 뜻을 분명하게 표하라고 권했었다.

자신의 뜻을 표하지는 않고 나중에 선거 결과에 불평을 하지 않도록 반드시 자신의 선택을 분명하게 투표로 말하자는 주장이었다. 그렇지만 못할 사정이 있는 사람들도 다수 있었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선택대로 투표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선거에 참여하지 않은 젊은이들에게는 책임이 없는 것인지도 생각해 보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현재 노령인구에게 주어지는 사회 각종 복지혜택이나 노령인구 대책에 대해서 흔히 젊은이들의 생각으로는 ‘우리가 피땀 흘려 일해서 받은 봉급에 대한 세금 <우리가 낸 세금>으로 왜 노인들을 모셔야 하느냐?’고 한다는 말이 들리는데, 그것은 우리 사회에 대해서 잘 못 이해한 결과가 아닌지 묻고 싶다.

지금 갖 노령 인구가 된 이들이 태어난 시절은 전쟁 직후라서 얼마나 피폐한 사회이었는지 이해하지 못 할 것이다. 국민소득 몇 십 달러라는 요즘 아시아 최빈국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우리나라를 지금 이만큼 잘 살게 만든 것은 젊은이들이 원망하는 노령으로 지네는 그분들의 피땀 흘린 결과라는 것은 부정하지 못할 것이다. 알기 쉽게 우리나라가 수출 1억 달러를 달성했다고 온 국민들이 축하하고 온 나라가 들썩거릴 정도로 국가적인 행사를 치렀던 것이 1964년이었다. 이들이 초등학교를 다니거나 졸업을 할 무렵이었다. 세계경제 순위도 최하위 정도이었을 뿐이었다.

해방직후와 1950년대부터 그분 들이 태어나던 무렵의 우리나라는 전쟁중이였으며, 어린시절에 휴전협정이 체결이 되어서 겨우 화약 냄새가 걷힌 시대이었다. 이때 우리나라는 자급(自給)할 수 있는 능력이 전혀 없었다. 지금 아프리카의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가 많듯이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같이 굶어 죽어가는 어린이가 수두룩했다. 이렇게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서 주린 배를 움켜쥐고 우물물을 물바가지로 퍼 마시며 허기진 배를 채우면서 자랐었다. 어머니들은 식구들에게 나물밥이라도 먹이기 위해 새벽부터 산에 가서 나물을 캐고 해질무렵 머리에 이고 와서 밥상을 차렸다.. 또 미국에서 구호물자로 보내준 분유를 끓여 마시고는 배탈이 나서 뒹굴기도 했고, 사료로나 쓰이는 옥수수 가루를 수입 해다가 멀건죽을 쑤어서 학교 급식 대신 먹이기도 했다.

이렇게 보릿고개를 굶주림으로 이겨 내면서 자란 그들은 가난이 지긋지긋하여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린 나이에 대도시로 나와서 공장에서 밤을 새워가며 미싱을 돌리고, 머리카락을 이어 붙여 가발을 만들어서 수출하여 우리나라 수출액 1억불(1964년 이때 온 나라가 야단이었다) 달성에 주역이 되었고, 1977년에는 100억불을 달성하고, 1995년에는 무려1,000억달러를 달성했으며, 지난해에는 5,7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 되고 있어서 세계10위권 선진국 대열에 들게 하는 주인공이 되었다. 그리하여 이제 우리는 <국민소득 2만 달러 이상, 인구5천만 명 이상>의 세계 경제 대국으로 위상이 높이게 까지 되었다.

그러나 1960~70년대에 고통을 받으며 자라서 현재의 노령인구가 된 그들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대부분이 중·고등학교 진학도 못 한 채 사회생활을 시작하여 공장으로, 가정부로, 청계천의 재봉사로, 공순이라 불리는 것을 마다하지 않고, 하루10시간 이상의 고된 일을 이겨내면서 피땀을 흘렸었다.

요즘처럼 자기주장은커녕, 말 한마디만 대꾸를 하면 그날로 내몰리고 마는 하루살이의 생활이었던 때였다. 요즘 사람들처럼 노조도 없었고, 인권을 주장하고, 쉴 시간을 요구하는 것은 사치여서 생각 할 수 없는 시기였다. 화장실에 자주 다닌다고 목이 달아나는 일이 많아서 물이 많은 국물을 먹을 생각도 하지 못했고, 15~6시간을 기계 앞에 매달려서 돈을 벌었지만, 그것도 모자라서 특근 시간을 한 시간이라도 더 받기위해 간부들에게 알랑거려 가면서 더 많은 시간을 근무하려고 애를 썼다. 시간당 얼마씩 이라는 몇 푼의 추가 시간 봉급이 욕심이 났기 때문에 말이다.

그렇게 고된 생활을 하여서 벌어들인 돈으로 부모를 봉양했고 자식들 교육에 전념을 다했다. 자식들만은 나처럼 가난을 대물림 하지 않겠다는 집념 때문이었다. 이렇게 이 나라를 위해 온 몸을 바쳐온 그들에게 지하철 무임승차를 왜 시키느냐고 따질 수 있겠는가?

그들이 나라에 바친 세금으로 이만큼 잘 사는 나라를 이루어 놓았는데, 왜 우리 젊은이들이 부양을 해야 하느냐고 투정을 할 수 있겠는가? 다시한번 생각해 보자.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서 온갖 고생을 이겨내면서 부모 봉양하고 자식 교육을 시키느라 온 몸이 낡은 기계처럼 되어버린(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삶을 살아온 그들 노년시대에게 국가의 보호와 봉양은 당연한 의무라 생각하지 않는가? 그분들은 젊은 시절에 그 고생하여 벌어들인 돈에 대해서 세금을 안냈을까? 그분들의 피땀 흘린 노력으로 나라가 발전 했고, 그 고생한 봉급에서 나온 세금으로 나라를 번영 시키는데 이용되었다고 한다면 요즘 젊은이 들이 자기들만 세금을 내는 것처럼 생각하고, “내 세금으로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제발 사고(四苦)<경제적 어려움, 건강상의 어려움, 일거리 없어 할일이 없는 어려움, 돌보아줄 사람이 없어서 외로움>에 시달리다가 자살로 마지막 생을 마감하고 마는 노년이 더 이상 나오지 않게 하자. 당신의 부모가 이러한 처지라도 그렇게 말할 수 있겠는지 다시 번 생각해보자.

내 부모는 아니지만 그들의 덕분에 이 만큼 잘 사는 나라로 되었다는 생각을 한다면, 젊은이들이여! 과연 이 노령세대에게 무었을 해 주어야 하는 지도 생각해보자. 세대간 갈등을 일으키려 하지 말고 내 부모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한번 들여다 보자. 젊은 시절에 얼마나 고생을 하셨고,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그러고 나서 지하철에서 무임승차를 한 저 어르신들이 우리 부모와 같은 세대이고, 같은 고생을 했던 분들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생각해보자.

(사)충·효·예실천운동본부 부총재 김종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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