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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중국 泰山

admin 기자 입력 2013.04.05 14:53 수정 2013.04.05 02:53

ⓒ N군위신문
작년 9월 중국 청도 태산 곡부 제남 등 山東省 일대를 답사했다. 여행을 하기 전 가슴이 두근거리는 느낌은 책에서 느꼈던 것과는 사뭇 달랐다.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손으로 만져 보고 고대 사람들의 흔적을 가슴으로 느낄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천하제일의 집안인 孔子家 이야기며 곡부의 삼공인 곡부 공묘 공림과, 공자가 濟나라에 와서 舜임금이 지은 韶를 듣고 석 달 간 고기 맛을 잊었다는 孔子聞韶處, 일반인 관광코스에는 비인기 상품인 가상현에 무씨사당석실 화상석 그림에 단군신화와 흡사한 그림을 꼭 확인해야 한다. 삼국유사를 해설하는 나로서는 꼭 답사해야할 코스이다.

濟나라 남문에 있었던 학자들의 요람인 직하 학궁 자리는 어디일까? 춘추5패의 우두머리였으며 전국 7웅에 들어 있던 濟나라는 어디로 사라졌는지 맹자는 濟나라 직하학궁에서 펼친 학술은 뭘까? 궁금한 것이 많을수록 현장 유적지에서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 태산(泰山)을 오른 이야기부터 시작 하겠다.
학창시절 누구나 한번쯤 양사언의 시조인 태산을 읊조려 봤을 것이다. 도대체 태산이 얼마나 높기에 하늘아래 뫼였다고 하는지 그러면서 오르고 또 오르면 못 오를리 없다고 희망을 잔뜩 심어 주기도 하는 태산의 의미가 무엇인지, 태산에 오른 진시황을 비롯한 한무제 고종과 측천무후, 당 현종 송·명·청의 건륭제까지 수많은 왕들이 하늘에 뜻을 받는 의식을 거행 하였는지.

일반 백성들도 신령스런 태산에 오르면 10년은 장수 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영생을 얻을 수 있다 하니 누구나 태산등정에 대한 숙원을 이루고자 과거도 현제도 사람들은 한 계단 한 계단 정상을 향해 오른다.

중국 五岳의 지존 泰山
泰山을 바로 알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의 五岳을 이해해야 한다.
예로부터 중국에서는 5개의 명산을 정하고 중국의 5岳 큰산 岳이라 불었다.(신라 五岳도 그런 뜻을 담고 있다)

중국의 동악은 태산(泰山), 서악은 화산(華山), 남악은 형산(衡山), 북악은 항산(恒山), 중악은 숭산(嵩山)으로 泰山의 높이는 오악 중 세 번째이며 험하기론 화산, 아름답기론 황산을, 따르지 못하지만 중국 오악(五岳)의 첫 번째인 태산(泰山)은 예부터 영혼이 깃든 산이라 여겨져 중국인들에게 숭앙되고 있을 뿐 아니라 고대 제왕이 봉선 의식을 행한 신성한 산이다.

태산을 오르는 길
해발 약 1545m로 산동성 구릉에서 최고 높은 산으로 동부, 제남시, 태안 등 3개 현 사이에 자리 잡고 있다. 태산의 등산코스는 4가지가 있지만 고대 진시황이 오르던 길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7천개가 넘는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태산 정상을 오를 수 있다. 전통적이며 일반적인 코스는 홍문로(紅門路)를 이용하는 두 번째 코스로서 항상 관광객들로 붐비는 곳이다.

요즘은 중천문에서 남천문까지 케이블카를 이용하여 내리면 그 뒤로 식당과 여관이 있는 하늘거리(天街)를 지나 남천문 옥황정까지 오르는 길이 있어 우리들도 그걸 이용했다.

泰山이 있는 山東省은 어디일까!!
山東省은 춘추 전국시대(기원전770년~기원전221년)때에는 제나라와 노나라가 위치란 곳이어서 山東省을 濟魯대지라고도 한다. 제나라는 또한 山東省은 한반도와 마주한 중국에서 가장 가까운 지역이다 서해안에서 우는 닭 울음소리가 山東서 들린다는 우스개가 있을 정도 이다.

山東省은 일찍부터 중국문명이 탄생한 곳이다. 신석기 시대에 이곳에서 대문구 문화가 발생했고 이 문명은 같은 시기에 탄생한 왕조의 요하 하류의 홍산문화(홍산 문화는 고조선문화이다), 양자강 하류의 하모도 문화와 황하 상류의 앙소문화와 함께 중국 4대 문명중의 하나이다.

이후 대문구 문화와 산동 중산 문화로 발전 하면서 하·은·주 왕조가 성립되고 발전하는 토양이 된다.(중국4대 문명의 상세한 설명은 지면상 생략한다)

중국에서 가장먼저 해가 뜨는 성지이며 옥황상제를 모시는 중국 종교의 도교의 성지이다.

泰山과 낙양(落陽)에 얽힌 毛澤東의 이야기
모택동(毛擇東)은 현장지도를 강조 하고 중국의 산간벽지와 오지를 방문 했다. 당연히 해가 가장 먼저 뜨는 태산도 올랐었다.

하지만 은근히 미신을 쫓는 毛擇東은 유서 깊은 落陽을 방문 한 적이 없다고 한다. 落陽의 발음이 떨어지는 태양을 뜻하는 落陽과 같기 때문이다.

중국의 황하중심에 있는 낙양(落陽)은 동주(東周) 후한(後漢) 서진 (西晉)후당(後唐)등 9개의 유서 깊은 왕조의 수도였다.

태양이 떠오르는 泰山과 태양이 떨어지는 落陽을 두고 백성들로부터 추앙받던 毛擇東은 泰山만 택했다.

봉선제(封禪祭 )란,
전설속의 황제가 대신해서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제단을 만들고 자신이 천하통일의 하늘과 땅에 알리게 된다. 왕은 태산의 봉우리에서 의식을 치른데, 봉(封)이란 옥으로 만든 판에 소원을 적어 돌로 만든 상자에 봉하고 하늘의 신에게 봉제(封祭)를 올리고 부근의 양부(梁父)라는 작은 동산에서 선(禪)이란 토단을 만들어 땅의 신에게 선제(禪祭)를 올리는 일이다.

그 시기가 진(秦)나라가 통일을 하고 3년이 지난 기원전 219년으로 진시황이다.(기원전 221년 전국시대 한, 위, 조, 초, 연, 제 등 6국을 물리치고 중국을 처음으로 통일 했으며 스스로 삼황오제의 황제 칭호를 사용했다)

처음에는 불로장생을 기원하는 의식으로 태산은 신선을 모시고 있는 장생불사의 신선이 고대부터 숭배되어 왔기 때문이다. 일천문 마을에서 태산으로 올라가는 입구부터 돌계단을 진시황이 만든 것이며 태산과 양부는 모두 제(濟)나라 경내에 있었다.

역대 제왕들은 모두 봉선(封禪)의식을 행하고자 했지만 진시황 이전에는 여러 가지 이유로 아무도 실현하지 못했다.

춘추전국의 濟나라 환공이 패자가 된 뒤에 가장 하고 싶어 했던 일이 바로 태산과 양부에 봉선의식을 거행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상국(相國)관중(管仲)의 반대에 부딪히고 말았다.(기회가 있으면 管仲이 반대한 이유 중 아주 흥미로운 이야기와 진시황이 신선을 찾아 불로불사의 장생초를 찾으려 했을 때 서불(서복이라고도 함)외의 많은 방사들이 진시황을 속인 일들을 올려 드릴께요)

진시황 외에 전한의 무제(武帝)또한 대규모 봉선의식이 이루어 졌으며 秦나라부터 청나라 까지 72명의 왕들이 오른 태산이다.

태산에는 글을 새긴 돌이 2200여개나 있어 마애 석각 박물관 같아서 각종 서체를 집대성한 서예 전시회를 관람 하는 것 같다.

한무제는 태산에 본 감상을 글로 다 표현 할 수 없다 하여 아무글자도 새기지 않는 무자비를 세워 놓아 후대 사람들이 무엇을 느끼길 바랐을까.

공자가 태산을 올라 천하가 작아 보인다는 공자소천하처(孔子小天下處)와 공자가 올랐다는 공등암(孔登岩) 글귀도 있다.

공자, 이백, 사마천, 곽말약의 글귀가 새겨져 있어 서예가들은 수년을 태산에 머무르며 감상해도 못다 할 것 같았다.

666년 三國의 사신들도 봉선제에 참가 했다
고종과 측천무후도 태산에 封禪儀式을 치루기 위하여 長安에서 태산으로 향할 때 각국 외국 사신들도 참가했다. 신라· 백제·고구려 사신들도 참가 했는데 이때가 666년이다. 장안에서 출발한 화려한 封禪祭 행렬들이 수백리였다고 한다.

당과 신라가 백제를 660년에 함락 시키고 백제 부흥운동이 일어났으며 고구려는 대 막리지 연개소문이 죽고 장남인 남생이가 막리지가 되었지만 동생둘이 반란을 일으켜 고구려도 혼란의 시기였다.

당태종이 죽으면서 고구려와 전쟁을 하지 말라 했지만 당을 괴롭히던 돌궐인 동돌궐과 서돌궐이 싸워 동돌궐이 패하자 서돌궐을 지원했던 당나라로선 우선 한숨 돌리게 되자 끈질기게 唐에 군사를 요청했던 신라 김춘추의 외교 결실로서 당은 660년 3월에 13만 대군을 보내어 백제를 멸망 시켰지만 백제 부흥운동이 몇 년간 지속되어 혼란스럽자 당나라는 백제 땅에 도호부를 두어 백제 왕자가 관리토록 했다.

당나라는 동북아시아의 패권자로 태산에 봉선제를 올리게 되자 신라, 백제, 고구려 三國의 외교 사절단으로 참가했다. 2년 후 668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만주벌판을 호령했던 개마무사의 용맹한 700년 고구려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성스러운 태산과 상업화된 태산의 두 모습
도교의 옥황상제님을 모시는 옥황각과 관세음 보살전각 앞에는 건장한 남자들이 香을 권하며 전각 안으로 안내를 한다. 어쩜 이렇게 친절하지 감동이다 했는데 알고 보니 호객행위처럼 여행객들에게 향을 주고 돈을 내라고 하니 옥황상제님도, 대자대비 관세음보살님도 모두가 돈 벌이 상술 이다.

긴 香값이 더 비싼데 기도문엔 가족의 안녕과 건강을 기원한다. 나도 얼떨결에 긴 香값을 치렀다.

전각 앞에는 연인들이 헤어지지 말자는 약속의 징표로 자물쇠를 걸어 두었는데, 얼마나 많은지 겹겹이 자물쇠뿐이었다. 하늘에 약속을 하는 건지 두 사람이 약속을 나눈 건지 하여간 자물쇠를 잠그고는 열쇠는 버린다. 열쇠를 못 찾으니 절대 헤어질 수 없다는 믿음 인 것 같다.

태산에 모셔진 유·불·도 삼교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신화와 역사문화의 원형을 담고 있어서 세계문화유산이 되었나 보다.

태산 못지않게 신라 중악은(팔공산) 호국성신 오악의 하나인 중악으로 신라의 상징적인 존재로 국가적 차원에서 숭배되어온 영산(靈山)이며 비로봉에서 뻗어 내려진 산중턱에 자연석굴의 삼존미타사상은 삼국통일의 위령탑 역할로서 원효의 정토사상의 위대함을 태산에 앉아 느껴 본다.

태산 능선 아래 춘추전국시대 때 魯나라와 濟나라의 경계선이 보인다.
다음호엔 천하제일의 孔子家이야기를 실어 드리겠습니다.


글제공: 군위군 문화관광해설사 류미옥(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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