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殷晩基(은만기) 기념관

admin 기자 입력 2013.04.26 13:21 수정 2013.04.27 01:21

↑↑ 왼쪽부터 조부 은만기, 조모 유성귀, 은영선.
ⓒ N군위신문
경북 군위군 소보면 위성리는 본적으로 저를 따라다녔다. 본적지는 고조부모(殷貞杓, 朴杜蓮) 증조부모(殷熙龍, 朴文喜) 조부모(殷晩基, 柳聖貴)께서 생을 보냈고, 저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다.

고조부께서는 박식하셨고, 선견지명도 있으셔서 한해의 풍작작물을 골라내셨다고 한다. 당시 군위에 들어서면 은정표 땅을 밟지 않고는 나가지 못한다는 말이 있었다. 고조부의 땀으로 맺어진 결과물은 아직도 후손들이 군위와 맺어지는 동아줄이 되고 있다.

고조부께서는 뛰어난 자질의 친인척에게는 도움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이유는 공직생활과 삼국유사 같은 위대한 작품을 남기는 자손을 소망하셨기 때문이다.

고조부께서는 총명한 맏손자(殷晩基)에게 기대를 거셨는데 병약(病弱)이 문제였다. 맏손자에게 기대하는 공직생활과 위대한 작품을 고조부께서는 임종순간까지 저버리지 않았다.

그런 까닭이었을까, 조부께서는 조상제사만큼 학문 집착이 유별나셨다. 귀한 서책은 웃돈을 주고 구해 읽으셨고, 암기 후에는 나누어주셨다.

저는 조부의 서책봉사에 불평을 쏟았고, 조부는 자손을 위한 자신만의 기도방법이라 했다. 조부께서는 중국역사에 조예가 깊으셨고, 역학을 통달하셨고, 결함의 풍수를 보완하는데 탁월하셨다. 삼국유사에 대한 애정은 상상 초월로 막강했다. 그런 조부께서 한때 도박에 빠지셨다.

“도박의 이치를 세상에 공개하고 싶었다. 그런데 도박은 한 번도 이기지 못하는 거야”라고 조부께서 말씀하셨다.

“예수님, 부처님, 공자님도 도박은 파악하지 못해요. 풍수, 토정비결 등 선견(先見)이 들어간 학문은 정도(正道)에서 출발하는데 도박은 속임수잖아요. 할아버지는 간단한 것도 모르시면서 무슨 풍수를 하신다고요” 저의 쏘아부침에 조부께서는 환한 웃음을 지었다.

“네가 나보다 낫다. 그런 네가 환쟁이가 하는 그림을 좋아하는지, 너의 근본은 문학이다. 내가 군위에 있으면 10년은 더 살 수 있다. 기관지가 약한 내가 서울로 왔을 때는 목숨을 걸은 거다. 내가 서울로 온 것은 네 아버지의 강요도 있지만 너를 가르치기 위해서다. 김영삼이 똑똑하다 해서 연설문, 글을 읽어 보았는데 김대중이 한수 위라. 내가 100년大計를 위한 경제, 교육, 외교 정책을 써서 보내줄까 하다가 참았다. 잠을 잊고 재산을 쏟으며 학문에 매진하여 세상을 통달한건 조부의 소망 때문이지 나의 영달이 아니라. 조부께서 나에게 유언서찰을 남기셨는데 공직보다 삼국유사가 우선이라 하셨다. 너는 지금부터 삼국유사를 외워라. 삼국사기를 체재나 문장에서 낫다하는데 삼국유사의 깊이를 숙지(熟知) 못한 소리다. 정감록이 비기(秘記)라지만 삼국유사에 비하면 어린애라. 펄벅이 위대한 문학가라 해서 웃돈을 주고 ‘대지’를 구해 읽어 보았다. 한글 대지가 문장(번역가)실력이 모자라 그런지, 영어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일본말, 중국말의 높고 낮음도 어렵지 않은데 영어는 꼬부랑해서 다음날이면 잊어. 영어 대지는 잘 썼는지 모르지만 한글 대지는 읽는 시간이 아깝다. 사람들이 예수를 찾는 이유가 궁금해서 성경책을 5번 읽으니 암기가 되었다. 그런데 그 이후 보려니 지루하더라. 삼국유사는 앞으로 뒤로 모두 외워도 매일 읽는데, 지루함이란 없다. 내가 삼국유사에 숨겨진 엄청난 에너지(energy)를 통달했고 그것을 전수받을 사람은 네가 유일하다. 학교를 쉬어도 좋으니 나와 소보로 가서 삼국유사를 공부하자.”

저는 조부의 말을 개똥으로 몰았고, 얼마나 지긋지긋했으면 조부임종에 시원함을 생각했겠는가? 조부의 임종에 눈물을 쏟은 사람은 오빠(은상화)가 유일했다.

조부께서는 조모(柳聖貴)에게 주님에게 올리는 자손기도에서 오빠이름은 빼고 대신 부뚜막에 밥으로 명하셨다. 조상제사도 미신으로 몰았던 조모께서는 오빠를 위해 부뚜막에 밥을 올려놓았는데, 그것은 고조모 증조모의 장손을 향한 기도 법이었다.

조상기도 법을 따랐던 맏며느리의 특혜인지, 조모께서는 증조부 조부와는 달리 소보면 자택에서 임종을 맞으시는 복을 누리셨다.

이제, 저는 몇 편의 저서를 가진 작가가 되었고, 그 공은 조부님의 은덕일 것이다. 더 늦기 전에 생전 조부의 바람, 개똥잔소리를 실천해야겠다.

조부께서는 ‘남인도(일설에는 페르시아) 출신의 달마가 중국으로 간 까닭처럼, 상나라 왕족의 은씨가 중국을 떠나 한반도로 온 이유부터 시작하라’고 하셨다.(기록에는 신라가 당나라에 주청하여 8학사의 한 사람으로 건너와서 태자태사(太子太師) 보문각대제학이 되신 殷洪悅이시다.)

저는 조부 의문에 ‘중국보다 한반도가 풍수적으로 우월하기 때문’이라고 즉답했었다.

“그게 정답인데 남들은 내가 대한민국 여행을 못했고 중국 땅도 밟지 못했으니 한반도 우월풍수를 믿지 않을 거야. 나는 밟지 않고도 알 수 있는 풍수기법을 터득했는데 말이다. 풍수가 대지(大地)이기도 하지만 한문처럼 바람(風)과 물(水)이라. 바람과 물은 갇힌 게 아니라 세상 우주를 떠돈다. 우주가 머니(멀다) 떨어진 것 같지만 아니라. 대지든 공간(空間)이건 한곳을 두드리면 그 소리는 진동(메아리)이 되어 되돌아온다. 되돌아온 진동을 살펴보면 아무리 먼 거리의 풍수라도 발밑의 땅처럼 알 수 있다. 그 원리를 믿고 파악하고 느끼면 시간과 거리는 존재하지 않는 걸 깨달게 된다.”

저는 아직도 조부의 개똥말씀을 깨달지 못하지만 살아계셨다면 심오한 정신세계를 가진 학인(學人)으로 대접받았을 것이다.

제가 조부의 학문에는 근접도 못하지만 ‘殷晩基 어록(語錄)’은 기억하고, ‘은씨와 남양 홍씨의 결혼불가 사연, 전국최고의 유과(油菓)솜씨 작은할머니(李奉泰), 열녀 작은어머니(朴楅子)의 남편사랑’같은 소박한 집안 이야기들은 적을 수 있다.

오빠는 기념관 운영을 위해 공직경험을 쌓아가고, 동생(은상현)은 기념관을 꾸미는 재료에 해박한 경력을 갖추고 있다.

저는 95년부터 고조부모, 증조부모, 조부모 존함을 명산대찰(진도 쌍계사, 봉화 청량사 축서사, 희방사, 불영사, 선본산 갓바위, 경기도 광덕사 망월사 용주사 봉림사, 휴휴암, 삼화사, 삼척 천은사, 법흥사, 하동 쌍계사, 군위 삼존석굴, 서울 봉은사)에 올렸다.

그럴 때면 어르신들이 ‘고매한 조상 덕분에 명산을 찾는 행운을 가졌다’는 조언을 주셨다. 몇 년 전부터는 부모님의 지원에 장영대아제(고모할머니(殷玉姬)아들), 작은아버지(殷鐘杰), 작은할머니 존함도 넣어드렸다. 돌이켜보니, 불심도 없는 제가 명산대찰의 기운을 얻은 것은 기념관 내공쌓기였나 보다.

저의 부족함이 명산내공으로 채워지진 않을 테고, 작은할아버지(殷遠基), 殷鐘河아제, 효령고모(殷三淑), 군위군 사연을 꿰시는 사공화열 대표님까지 100세를 누리시며 은영선에게 조언을 주셔야합니다.

殷晩基기념관은 조부의 학문을 세계에 알리는 공간이고 싶다. 그것이 평생토록 은자(隱者)생활에 헌신하신 조부의 노고에 보답하는 길일테다.

글제공: 은영선(‘가이공주, 행복여행, 봉황의 나라’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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