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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법삼장(約法三章)

admin 기자 입력 2013.06.10 14:13 수정 2013.06.10 02:13

↑↑ 박종영 사무처장
ⓒ N군위신문
진(秦) 2세 황제는 음탕하고 무도했으며 간신(환관) 조고는 충실들을 모함하여 해치고 자기 마음대로 정권을 전횡하여 백성들은 생활을 영위할 수 없을 정도로 천하가 어지러웠다.

이때 진승, 오광이 반란을 일으킨 것을 시작으로 강동의 항우, 풍패(豊沛)의 유방이 모병하여 거사를 하여 초왕(楚王) 손심(孫心)을 회왕(懷王)으로 옹립하고 우치(지금의 안휘성에 있음)를 수도로 정했다.

이때 초군의 상장군은 송의 이며 항우는 차장, 범증이 말장(末將)이었다. 유방의 풍패에서 군대를 일으켜 초 회왕에게 예속되어 있다가 오래 되지 않아 패공으로 봉해지고 항우는 노공(魯公)으로 봉해졌다. 당시 초군의 목표는 관중을 공략하는 것이었다. 이에 회왕은 항우와 유방이 있는 자리에서 누가 이 임무를 해낼 수 있는가 물었다. 그러자 항우와 유방은 앞을 다투어 서로 이 임무를 자기가 맡겠다고 했다. 이에 회왕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누구든 먼저 관중에 들어가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을 관중의 왕으로 삼겠소”라고 했다.

이에 즉시 출발 준비를 갖춘 항우는 북쪽길로 공격하고 유방은 참모 조삼(曹參), 소하, 장수 하우영, 번쾌, 주발 등과 함께 팽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서쪽으로 공격해 갔다. 유방은 창읍(昌邑: 지금의 동금향)을 지나면서 유격전술가 팽월을 얻고 그곳을 공략하기 못했기 때문에 진로를 바꾸어 고양(지금의 하남성)의 서쪽으로 진군을 했다.

그리고 다시 고양에서 모사 역식기를 합류시킴으로서 진류를 얻고 개봉을 공격하여 각지에서 진군을 대패시켰다. 또한 남양을 빼앗고 완성을 공격했으며 단수(丹水)를 지나고 호양을 거쳤다. 이렇게 지나온 곳마다 정벌을 하였으나 큰 싸움이 없었기에 항우보다 먼저 무관(武關)에 도착했다.

그들이 당도하자 그동안 진의 학정에 시달려온 백성들은 모두 길로 나와 그들을 환영했고 유방군을 본 진군들은 이미 대세가 기울었음을 깨닫고 감히 대항하지 못하고 도망을 가버려 유방군은 곧바로 함양성 밑에 이르렀다. 이것을 본 진황제 2세와 조고 등 많은 대신들은 기겁을 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겁이 난 승상 조고는 진황제로 영(嬰)을 세우고 진2세를 죽임으로써 다시 사태를 무마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조고에 의해 황제에 오른 영이 다시 승상 조고를 죽이고 흰 마차와 백마를 타고 나와 유방을 영접하고 항복했다.

진의 수도 함양으로 들어간 유방은 곧바로 궁 안에 머물며 좋은 음식과 미녀들에 둘러싸여 나올 줄 몰랐다. 유방은 원래 평민시절부터 술과 여자를 좋아했는데 궁궐에 들어가 갑자기 온갖 부귀영화를 마음껏 향유할 수 있게 되자 자기가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왔는지 조차 잊었다.

그의 행동을 못마땅하게 여긴 번쾌가 궁에 들어가 그에게 궁을 떠나라고 권했지만 유방은 듣지 않았다. 그러자 다시 장량이 궁에 들어가 그에게 말하길 “진황제가 무도하여 천하가 어지러워 졌고 이를 잡기 위해 당신께서 병사를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왔다. 천하를 위해 아직도 해야 할 일이 많고 당신은 큰 포부를 달성하려면 이제부터가 시작인데 이렇게 궁궐에 들어앉아 술과 여자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르니 이것이 ‘조걸위학’(助桀爲虐: 걸을 도와 잔악한 일을 함)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장량은 또 “당신은 아직 항우의 적수가 되지도 못하는데 이런 일로 그를 건드려서 좋을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장량의 말에 크게 깨달은 유방은 즉시 궁을 나와 패상으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관중의 노인들과 호걸들을 모아 회의를 열고 간단한 세 가지 법규를 선포한다.

첫째, 사람을 죽인 자는 사형을 시킨다(殺人者死). 둘째, 사람을 다치게 하거나 도둑질을 한 사람은 그에 상응하는 벌을 내린다. 셋째, 나머지 모든 진법(秦法)을 폐지하되 관리들은 옛날과 마찬가지로 맡은 직분을 다한다. 그리고 유방은 사람들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이번에 관중에 들어온 것은 진의 학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을 구하고자 함이지 여러분을 약탈하기 위한 것은 아니니 모두들 안심하십시오. 나는 궁중에 머무르지 아니하고 산동6국의 제후들과 합류하기 위해 패성으로 돌아가니 우리 후일을 기약합시다.” 그의 말을 들은 백성들은 크게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가 각자 형편이 되는 대로 소나 양을 끌고 나오고 술과 음식을 가지고 와서 유방군의 노고를 위로하고자 했다.

그러나 유방은 이를 사양하며 정중히 말하길 “우리의 군대에는 군량미가 있으니 여러분의 술과 양식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백성들의 식량과 돈을 쓰게 된다면 우리가 이곳으로 와서 여러분들을 구하고자 했던 뜻이 의미를 잃게 되니 여러분은 각자의 물건을 가지고 돌아가십시오. 우리는 여러분들의 마음을 충분히 알고 고마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의 이 같은 태도는 백성들의 고혈을 짜고 공포를 주던 진군과는 전혀 달랐다. 그래서 관중의 백성들은 감격하여 앞 다투어 말하길를 “만약 유패공께서 관중에 남아 우리의 왕이 되어주신다면 우리는 앞으로 좋은 세월을 맞아하게 될 것입니다.”

이같이 유방은 관중으로 들어가 간단하게 세 가지 법규를 반포함으로서 오랫동안 따뜻한 보살핌을 받아보지 못했던 백성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고사에서 유래 그 뜻이 확대 되어서 오늘날 다른 사람과 약속을 하여 서로 준수하는 것을 약법삼장(約法三章)이라고 한다. 이 고사는 <한서> ‘고제기(高帝紀)’에 기록되어 있다.

사단법인 국민행동본부
부산시 사무처장 박종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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