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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부부는, 하늘이 정한 인연이다

admin 기자 입력 2013.06.19 10:22 수정 2013.06.30 10:22

↑↑ 황성창 수필가
ⓒ N군위신문
단오도 지난 유월 하순이다. 몇 일전 인제대학교 백중앙의료원 주최 글로벌 포럼에 참가했다. “21세기 첨단의료 어디까지 왔나”를 주제로 미래치료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정립이라는 목적과 목표에 대한 특강이었다.

인간수명 100세 시대에 걸맞은 최고의 시설과 첨단 의료장비로 일반수술에서 내시경 점막술, 로봇수술까지 눈부시게 발전한 의학적 이슈를 설명하는 귀중하고 유익한 시간이었다. 십 수 년 전 내가 간암수술을 받을 때를 돌이켜 보니 까마득한 옛날이다. 오늘, 첨단 의료기술의 발전에 격세지감을 느낀다.

13년 전 초여름 이 때쯤이다. 예순 나이에 나는 말기 간암선고를 받았다. 암을 선고 받으면 심리적 공황상태에 빠져 평정심을 잃는다. 그 보다 더한 충격 어디 있을까. 전생의 업보일지도 몰라 절망에 빠졌다.

당시만 해도 말기 암의 경우 대략 6개월 시한부 생명을 선고한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다. 대개의 의사들은 차분하게 죽음을 받아드릴 것을 환자나 그 가족에게 권유한다. 죽음, 받아드릴 일인가. 기가 찰 일이지. 설령 수술을 한다 해도 환자가 기대하는 예후가 불확실한 게 의술의 한계였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수술을 해야 할지 일 년을 망설이는 갈등을 겪었다. 결국은 후회 없이 최선을 다 해보자는 가족들의 권유로 수술을 결심했다. 수술실로 옮기던 날 수술실 문이 열리고 닫히는 순간 어쩌면 돌아 올 수 없는 영영 이별이 될지도 몰라 아내에게 가슴 아린 눈빛만 보냈다. 인생은 이렇게 왔다 이렇게 가는구나. 뭉클한 마음에 눈물은 고이고 의식은 멀어졌다.

며칠이 지났는지 사람들 말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정신이 듭니까?’ 묻는 소리도 들렸다. 이승저승 두드리다 간암 한 덩어리 떼어내고서야 이 세상으로 돌아왔다. 만약 그 때 깨어나지 못했더라면 어땠을까. 죽고 사는 건, 하늘의 뜻인지 모를 일이지만. 내가 수술을 받은 햇수도 13년째이니 암을 이겨 냈다고 믿는다.

새롭게 태어난 인생, 내 것이 아닌 아내가 눈물로 만들어낸 생명이다. 수술 전 가족들에게 남길 유서를 마음속으로 썼다 지우길 수십 번 반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온 맘으로 나를 살려낸 아내를 위해 무엇이든 해주고 싶은 심정이다. 아내를 감싸고 진 빚을 갚으면서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조강지처만큼 편한 사람은 없다. 겪어봐서 안다. 그게 아내다. 아내란 세상에서 이해를 가장 잘해주고 아껴주는 둘도 없는 사람이다. 흉허물 덮어주는 막역한 사이다.

명리학에 의하면 “부처인연숙세래(夫妻因緣宿世來)”라 했다. 즉 부부의 인연은 전생에서 온 것으로 숙명처럼 정해져 왔다고 한다. 칡넝쿨 같이 얽힌 연줄 동아줄처럼 질기다.

스물 둘에 시집 온 아내가 시모(媤母) 모시랴, 자식 키우랴, 그 고생 어디에다 견주겠나. 그뿐인가 설상가상으로 간암까지 뒷바라지 했으니 까맣게 타버린 속 남기나 했겠나. 생각하면 고맙고, 미안하고, 부끄러워 가슴 먹먹할 뿐이다.

이젠 아내와 생각이 다르다고 염치없이 맞장 뜰 생각 아예 없다. 아내가 하는 말에 맞장구 쳐주는 부드러운 남자다. 부부싸움 하느냐고? 당치도 않는 소리. 물정 모르던 시절 철부지 같은 옛날 이바구다.

아내가 편해야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다. 몽딴 바꿔 버린 내 인생관이다.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산다는 것, 행복한 일이다. 부부의 정이란 가슴속으로 흐르는 잔잔한 강물 같은 것. 부부, 오죽하면 천정배필이라 했겠나.

글제공: 황성창 시인·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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