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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위이야기-(4편)

admin 기자 입력 2013.06.30 20:11 수정 2013.06.30 08:11

↑↑ 김완수 소장
ⓒ N군위신문
지난호에 이어…

⑷ 여두멱과 군위
『삼국사기』에는 옛 군위의 고호가 노동멱현(奴同覓縣, 一云 如豆覓)임을 천명하고 있다.
곧 서기 757년에 신라의 경덕왕이 처음으로 군위로 개명한 사실을 사서에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軍威縣, 本奴同覓縣(一云如豆覓), 景德王改名, 今因之〕

필자는 앞에서 기고한 것과 같이 奴同覓縣(노동멱현)의 奴(노)는 흉노, 同(동)은 함께의 의미가 있어 노동멱은 흉노가 무리를 지어 살았던 멱(覓) 즉 흉노의 집성촌을 말한다.
다시 한 번 ‘흉노’란 어휘를 살펴보면 오랑캐를 뜻하는 ‘흉’과 노비를 나타내는 ‘노’가 합쳐진 말이 되어 부족을 멸시하는 의미가 들어가 있다.

또 흉을 몽골어로 생각하면 ‘입심이 좋다’란 뜻이기 때문에 흉노의 뜻은 ‘시끄러운 노예’가 된다. 어느 것이든 ‘흉노’라는 명칭은 부족을 나타내는 이름으로 사용하기에는 좋은 말이 아닌 것 같다.

이와 같이 다른 부족을 존숭하지 못하고 깔보는 투의 뜻이 들어있는 노동멱(奴同覓)이라는 이름이 우리나라 다른 도시에는 없고 오직 군위에서만 지역명칭으로 남게 된 것은 특별한 사연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이러한 옳지 못한 의도는 적라산이 후대에 와서 한적산(韓敵山)이라는 산 이름을 갖게 된 것과 같은 맥락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동멱에 대하여 또 다른 해석이 있다. 노동이 ‘놋동’에서 유래되었다는 대구대학교 정호완 명예교수의 견해로 놋동을 놋쇠(구리와 아연의 합금)와 같은 말로 생각한 경우이다. 즉 군위군 소보면 달산리의 청화산 인근에 있는 동광(銅鑛)과 아연광(亞鉛鑛)이 있는 것을 근거로 이곳이 노동멱이 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필자는 이 고견이 노동멱이 있었다고 추정하는 군위읍과는 꽤 먼 거리에 있으므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음은 ‘本奴同覓縣(一云如豆覓)’에서 일운여두멱(一云如豆覓)의 뜻을 생각해보자. 여기서 일운(一云)은 ‘또는’, ‘혹은’, ‘일설에’ 그리고 ‘애칭으로’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으므로 一云如豆覓은 첫째는 ‘일설에 여두멱이라고도 한다’라는 것과 둘째는 ‘애칭을 여두멱이라고 한다’라는 두 가지 해석이 있을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고찰에서 여두멱은 노동멱현 이전의 명칭이 되거나 또는 같은 시기에 사용했던 별칭일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18세기 중엽에 군위현감 남태보가 편찬한 적라지에 ‘노동멱 강기청’이라는 관청이 설치되었던 사실로 보아 이 지역이 과거 노동멱이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현재의 군위읍이 노동멱현이었다라는 사실이 확실해지므로 여두멱은 여두멱현이 될 수 없으므로 여두멱은 노동멱현 이전에 사용하였던 명칭인 것이다. 이러한 추정에서 여두멱은 여담국이라는 국명에서 비롯된 명칭일 수밖에 없다. 즉 군위읍이 한때는 여담국의 강역이었다는 또 하나의 방증이 되는 셈이다.

(註1) 覓은 물건을 손에 넣으려고 눈을 가늘게 뜨고 본다는 뜻으로 사용 지명은 경기도 여주군 여주읍의 멱곡리, 화성시 우정읍의 멱우리, 서울 남산의 이칭-목멱산 들이 있다.

(註2) 개성반상코스에 제공되는 ‘설야멱(雪夜覓)’은 개성의 명물로서, 소갈비나 등심을 굽다가 반쯤 익으면 찬물 또는 눈 속에 넣어 식혔다가 센 숯불에 다시 굽는 음식이다. 돼지고기를 넓적하고 두툼하게 썰어 양념에 재운 다음 굽는 전통음식을 맥적이라고 하는데, 고려시대 불교의 영향으로 소의 도살법이나 요리법이 잠시 사라졌다가 개성에서 설야멱이란 명칭으로 되살아나게 된 음식이다. 송남잡식(松南雜識)에는 송(宋) 태조가 설야(雪夜)에 보(普)를 찾아가니 숯불에다 고기를 굽고 있더라는 내용이 있어, 눈 오는 밤에 찾아갔다는 뜻으로 설야멱(覓; 구할 멱, 찾을 멱)이라 하였다고 하는 설도 있다.

※ 위 註1의 눈뜨는 모양이나 註2의 고기 굽는 법 등에서 ‘멱’은 유목민족과 상관성이 있는 말이다.

(註3) 여담국은 중국인 진수가 편찬한 삼국지에 나오는 국명으로 현재까지 국내외 학자들은 군위, 의성(탑리)에 있었던 나라로 비정하고 있다.

군위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
소장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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