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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곡에서 출발한 소보

admin 기자 입력 2013.07.23 10:40 수정 2013.07.23 10:40

↑↑ 김완수 소장
ⓒ N군위신문
⑴ 아, 소보의 왕국
현재의 소보(召保)는 신라 때의 소소보부곡(召召保部曲)에서 시작되었다고 해도 큰 잘못은 없을 것이다. 그 후 고려시대의 역사는 사료부족으로 알 수 없고 조선시대에는 소소본면, 석을본면(석본면), 화곡면에 산동면(선산군)의 신흥, 산개, 오류마을을 합하여 소보면이라 하고 군위군으로 편입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소보의 주요문화재는 위성동 석조약사여래입상, 법주사 왕맷돌, 법주사 5층석탑, 광석재, 양암정, 위성리 석불입상과 석불좌상, 위성리 사지, 군위 보현리사지와 요지, 법주사, 부황왕릉 등 여럿이 있다. 이들 가운데 단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눈길을 끌 수 있는 것은 부황왕릉일 것이다. 소보에도 고대에 왕국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소보에는 위천과 곡정천이 합류하고 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강이 합수(合水)되는 지형을 두물개 또는 두뭇개라고 부르며 대체로 호수처럼 잔잔한 물결과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다고 한다. 이러한 소보면의 위천 중류쯤에 칠탄천(일곱 고비를 가진 급류라는 뜻)이 흐르고 있으며 또 주위에 위성리와 알령과 봉황리와 봉소리가 인접해 있다.

이러한 지형은 옛날부터 이곳이 사람들이 살기에는 천혜의 조건을 갖춘 좋은 땅이라는 의미를 가진다. 그래서인지 봉황리에 등붕국(소등붕국)설화가 있고 또 봉소리에 두모국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그리고 위성리에는 황제의 골짜기를 뜻하는 황곡(한읍)이라는 명칭이 지금까지 남아전하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뛰어난 자연경관을 가진 이곳 소보에 그 옛날에 있었던 부황왕(夫皇王)이야기가 전설로 남아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는 것일까?

지금까지 이곳에 전해오는 설화를 모았다.
군위의 향맥(1983년)에서는 봉황2리에 있는 옛 봉의국민학교 자리(호암, 부황골)가 옛날 소왕국 등붕국(소등붕국)이 있던 곳이라고 하였다. 여러 촌로님들의 이야기를 모으면 이웃나라(소문국) 장수가 도망하는 등붕국의 부황왕을 이곳 부황골(부황리)에서 잡았기 때문에 지금도 왕릉이 이곳에 있다고 하였다. 현재 부형왕릉의 크기는 약 20m²정도라고 한다.

또 군위마을지(2007년)에 의하면 봉황1리에 연곡이라는 자연마을이 있는데 이 마을의 다른 이름이 부엉이마을이라고 하였다. 이런 별칭이 붙게 된 유래는 이곳 환심(皇心)고개에서 두모국 왕이 적국의 장수에게 붙잡혔는데 이때 적국 장수의 형상(기세와 용맹)이 꼭 부엉이 같아서 마을 이름을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그리고 같은 책에서 봉소리 하소의 두모들에는 삼한시대 두모국(斗毛國)이 있었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는데 이 신화는 이곳 두들머리산에서 출토되는 토기로서 짐작할 수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봉황1·2리는 옛날 군위현 소소본면에 속하였던 마을이다.

위 군위마을지(2007년)에는 옛날 위성리(군위현 화곡면)에 한읍(韓邑, 한골)이라는 큰 마을이 있었는데 나중에 이름이 황골(황곡)로 바뀌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단순히 글자만으로 보아서는 황골은 부황이란 왕이 살았다는 골짜기(마을)일 것이다. 왜 이렇게 엇비슷한 이야기가 바짝 붙어있는 마을에서 각각 다른 이름으로 전해오고 있는 것일까?

먼저 등붕국(登崩國)을 생각해보자, 국명의 붕(崩)은 임금의 죽음을 말하고 또 환심(皇心, 황심)고개에 부황왕(夫皇王)의 왕릉(王陵)이 있다고 하였음으로 등붕국은 두모들에서 흥기한 두모국(斗毛國)과 동일한 나라라고 생각하기에는 거리감이 있다. 그렇지만 국명만으로 생각한다면 등붕(登崩)과 두모(斗毛)가 모두 당시의 우리말을 한자로 차자(借字)하여 만든 국명이기 때문에 登崩과 斗毛가 서로 같은 소리, 또는 비슷한 소리일 수도 있다. 그리고 두모의 毛(모)는 고대 경상도에서는 쇠(鐵)를 가리키는 고어였기 때문에 비록 두뭇개에서 두모국이라는 국명이 나왔다하더라도 두모국이라는 국명은 이 지역에 철광산이 있기 때문에 생긴 명칭임에 틀림없으므로 같은 나라(등붕과 두모)를 다르게 부른 이칭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는 위성리(옛 화곡면)의 한읍이라는 명칭에서도 나라가 있었다는 암시를 느낄 수 있으므로 이 지역에 있었던 왕국을 두모국(=등붕국) 하나로 상정하고 또 마지막 왕은 부황고개에서 죽은 부황왕으로 부를 것을 제안한다. 즉 두모국의 부황왕이 될 것이다.

그런데 이웃 의성군 비안면에도 ‘두모장군’이야기가 전래되고 있어서 이 두모장군이 소보 두모국의 장수가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고 또 소보에 거주한 이수영씨(소보거주, 2002년 7월, 한국구비문학대계)의 증언을 읽으면 두모국을 두문국이라고 힘주어 말하는 듯해서 이 두모, 두문국이 어쩐지 탑리에 있었던 소문국(조문국)과 동일한 나라라는 감이 드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만은 아닐 것이다.

군위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
소장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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