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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부곡에서 출발한 소보

admin 기자 입력 2013.08.02 10:43 수정 2013.08.02 10:43

↑↑ 김완수 소장
ⓒ N군위신문
지난호에 이어서

⑵소보의 알령
군위마을지에 의하면 소보면 송원1리에는 ‘안령’이라는 자연마을이 있다고 한다. 이 안령은 송원리에서 제일 으뜸가는 마을로 1514년에 홍라호 선생이 처음 개척하였다고 전한다. 옛날에는 마을주위가 마치 말이 달리는 것과 같아서 주마현곡(走馬峴谷)이라고 불렀다고 하며 또 마을 동편 고갯길이 말이나 소의 등에 짐을 싣기 위해 사용한 길마(질매)와 같이 생겼다 하여 안령(鞍嶺, 질매재, 길마재)이라고도 불렀다고 한다.(주1) 이상이 21세기 초에 조사한 이 마을의 내력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안령’이라는 마을 명칭이 처음에 알영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왜냐하면 주마현곡, 마암산, 질매재 같은 지명이 모두 후대에 와서 한자를 빌려서 만든 명칭일 것이고 또 마을의 형상(지세)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감입곡류하천(嵌入曲流河川)인 영월의 청령포(靑怜浦)나 예천의 회룡포(回龍浦)처럼 물길이 휘돌아 나있어 땅모양이 알(卵)과 같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지명이 만들어지고 난 다음에 이야기(전설)가 만들어졌는지 그렇지 않으면 전설에 따라 지명이 만들어졌는지를 확실히 규명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현재까지 필자가 조사한 결과는 지형에 따라 지명이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

그러나 우리 땅에 살아왔던 고대인들은 철이나 금 알갱이를 모두 알(卵)이라고 표현해 왔으므로 이러한 사상을 가진 고대의 소보인들도 이곳을 ‘알령’이라고 불러왔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앞에서 먼저 소개한 내용과 같이 이곳 소보에 등붕국(소등붕국)이라는 소국이 있었다고 전해오고 있고 또 부황왕이라는 왕 이름이 각각 봉황리와 봉소리마을에 남아있다. 이러한 전승과 함께 이 소국의 관한 다른 이야기(건국신화)가 어딘가에 남아있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그러한 이야기(전설, 신화)가 응축되어 있는 곳이 안령 곧 알령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소보의 안령은 신라시조 박혁거세의 출생과 함께 출현하는 알영(閼英)과 차별화되어 알령이 안령(鞍嶺)으로 바뀌어 쓰여 졌을 가능성도 있다.

우리나라에서의 알(閼)은 어려가지 뜻을 가지고 있는데 오랜 옛날에 사용된 것은 신라 때에 쓰인 알영(閼英), 알지(閼智), 알천공(閼川公)과 경주 북천(北川)인 알천(閼川) 등이 있으며 또한 흉노 김일제의 부인을 일컫는 알지(閼氏)가 있다. 이러한 알(閼)은 분명히 기원전시기(초기철기시대)부터 북쪽 대륙에서부터 사용되어온 말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글자의 시원은 어디서부터일까? 아마도 새의 둥근 알(卵)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우리민족의 토템이 새(鳥)이고 여기서 난생신화가 비롯되었을 것으로 생각한다면 분명히 소보 안령(알령)에도 난생으로 등붕국을 세운 이야기가 남아있을 법한데 지금은 환심고개, 부황왕의 죽음에 대한 설화만이 남아있다. 나라를 세운 그 모든 것이 등붕(登崩)으로, 땅이 솟아오르고 산이 무너지면서 모든 게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러나 송원리 바위 위 고누판에서 고누놀이를 즐기던 사람들은 그러한 이야기를 알고 있었음 직하다.

영월 청령포에는 왕관을 벗어놓고 영월 땅이 왼 말이냐, 두견새 벗을 삼고 슬픈 노래 부르며…라는 단종임금님의 소식만 남아있으며 소보 달천포에는 환심고개의 부황왕이 두모국 봉황의 울음소리를 듣고 묻혀 진 전설이 깨어나기를 바라는 알령이 있다.

(주1) 질매재(鞍嶺)는 질매꼴의 고개를 말한다. 질매는 ‘길마’의 경상도 사투리로 짐을 싣거나 달구지를 채울 수 있도록 마소(馬牛)의 등에 얹어 쓰는 운반구를 말하며 또한 안(鞍)은 말(馬) 등에 얹어서 사람을 편하게 하는 안장을 가리킨다.

군위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 소장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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