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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독자마당

부곡에서 출발한 소보

admin 기자 입력 2013.08.16 11:37 수정 2013.08.16 11:37

지난호에 이어서

⑶철의 땅, 소보
사람들의 생활에 요긴하게 쓰이고 있는 철(쇠)은 2가지 원료가 있는데 그 첫 번째는 산(광산)에서 채광된 산철(山鐵, 鐵鑛石)이고 두 번째는 강물에서 얻어내는 사철(砂鐵, 沙鐵)이다.

이 재료 철을 녹여서 선철이나 해면철을 만들고 다시 무기나 농기구를 만들기 위하여서는 거푸집을 사용하는 주조와 그리고 두들겨서 형을 만드는 단조기술을 사용하여야 한다.

한반도에서 철기를 제작한 시기는 대개 서기전 5세기경부터라고 말하지만 우리 군위(군)는 내륙의 오지(奧地)라는 지리적 환경 때문에 몇 세기 늦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현재 군내곳곳에서 이러한 철과 관계되는 유적이 여러 곳 남아 있는데 특히 소보에는 면 이름이 쇠를 암시하는 것과 같이 달산리와 보현리의 철산(鐵山, 광산)과 함께 여러 사철지(沙鐵地)가 있었음이 확인되고 있음으로 옛날부터 철을 다루는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이주해 왔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인구유입은 이곳에 나라(소왕국)가 발생하는 원인제공이 된다. 그래서인지 소보에는 소등붕국(등붕국), 두모국, 서경국과 같은 소국명이 설화로 이어져오고 있다.

현재 소보(면)는 14개의 행정리(내의, 달산, 도산, 보현, 복성, 봉소, 봉황, 사리, 산법, 서경, 송원, 신계, 위성, 평호)가 있는데 이 가운데 위성리의 백현마을과 사촌마을, 달산리의 수철마을, 평호리의 개겸마을, 신계리의 두개실마을과 우무실마을 등은 골짜기를 따라 발달한 취락들이고 봉소리, 사리리, 보현리, 복성리, 봉황리와 내의리는 낮은 구릉지에 발달한 읍락으로 분류되고 있다.

이 가운데 달산2리의 수철마을과 또 보현1리의 보촌과 시팡이(쇠팽이)곡, 그리고 보현2리의 백현(白峴, 흰티)과 같은 이름은 모두 철(쇠)과 떼래야 뙬 수 없는 특별한 관계를 가지는 명칭이므로 앞으로 철과 관련되는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특히 소보(면)에서 눈여겨 볼 것은 복성리의 ‘집리’라는 자연마을 명칭인데. 이 ‘집리’라는 마을명칭에는 한자가 없다. 아니 한자 명칭을 사용할 수 없는 마을이다. 이 지역에 남아있는 조선시대 문집에는 ‘집리’의 ‘집’을 楫(즙), 集(집), 什(집), 汁(즙), 汴(변)과 叶(협) 등으로 혼란스럽게 사용해오고 있었지만 이들 모두가 후손들의 잘못된 쓰임이다.

그 까닭은 ‘집리’라는 명칭의 집은 집(家, house)이기 때문에 한자가 있을 수 없으며 그 어원을 찾아가면 결국 흉노(匈奴)의 말까지 이른다. 그렇지만 이 마을사람들은 옛날부터 마을지형이 가는 배(行舟尾)로 보아서 배 젓는 노(櫓)의 楫(즙)을 사용하여 집리(楫里)라 통칭하고 있다.

옛날 ‘집리’마을은 위천 강물(달천)에서 철 알갱이를 모아서 제철(製鐵)하거나 또는 야철(冶鐵)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던 집단촌으로 부곡인(部曲人)들이 살고 있었다.

이러한 추정은 소보의 두모들에 있었던 소소보부곡에서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이곳 집리에는 많은 집(家屋)들이 모여 군락을 이룰 수밖에 없었던 곳으로 여기서 ‘집리’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

일반적으로 강모래 속에서 채집한 사철(沙鐵)에서는 양질의 철, 10%정도를 정련해 낼 수 있다고 하며 그 품질은 좋지 않다고 한다. 이러한 사철알맹이를 녹여서 덩어리 쇠를 만드는 데에는 많은 소나무가 땔감으로 필요하다.

따라서 철을 만들기 위하여서는 몇 년이 지나면 그 인근 산의 소나무는 모두 용광로의 연료로 사용되어 벌거숭이산(백현)으로 바뀌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보현2리 마을에 남아있는 백현(白峴)으로 보면 틀림없을 것이다.

글제공: 군위문화원 부설 향토사연구소 소장 김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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